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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바람·돌 … 딸 품에 안겨 돌아보다 … 이타미 준, 그가 사랑한 제주

중앙일보 2011.07.25 00:04 종합 22면 지면보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도쿄서 지난달 타계
이타미 준 (1937~2011)



이타미 준이 설계한 포도호텔(2001)은 제주의 오름을 닮았으면서도 초가집 여러 채가 포도송이처럼 하나로 이어진 모습이다. 한국 건축가의 독창성을 추구한 그는 이 호텔 내부에도 한옥의 격자 창호와 서까래를 차용한 요소를 섬세하게 심어놓았다. [ITM건축연구소 제공]











이타미 준
한국 이름 유동룡




“백자에서 느껴지는 그 편안한 느낌은 중국 것도 일본 것도 아닌, 한국 만의 것이죠. 산의 봉우리, 보름달을 닮은 곡선…. 백자를 보면 옛날 한국 사람들이 본 자연의 모습,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사람들의 철학이 그대로 느껴져요.” (이타미 준, ‘백자’)



 한국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한국명 유동룡·1937~2011)이 항상 가슴에 품고 산 것은 ‘백자’였다. 달항아리 같은 건축을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에게 달항아리는 자연을 닮고, 몸의 온기가 묻어 있는 건축, 섬세한 손길로 작품을 빚어내는 장인정신의 또 다른 이미지였다.



 달이 지듯 그가 지난달 26일 일본 도쿄 시내의 한 시내병원에서 눈감았다. 일본에서 가족장을 치른 뒤 고인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맏딸 유이화씨(37·건축가·ITM건축연구소 한국지사장)가 19일 서울 방배동 ITM건축연구소에서 추모식을 연 데 이어, 일본에서 찾아온 고인의 여동생 유정자(70)·순자(66)씨 등과 함께 유해를 모시고 20일부터 2박3일간 제주도를 찾았다.









물(水) 미술관을 찾은 이타미 준의 맏딸 유이화씨(오른쪽)와 그의 남편 박수우씨.



 ◆대지 위에 작품 하듯=“제주도 자체가 아버지의 박물관인 셈이죠. 이곳의 빛과 바람, 물 것까지 세밀하게 담고 싶어하셨어요.”



 유족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핀크스 리조트 단지 내의 포도호텔이었다. 제주의 오름과 전통 초가집의 모양새를 닮고, 대지 위에 겸손한 자세로 한껏 몸을 낮춘 듯한 형상이다. 고인이 생전에 “지평선의 한 부분으로 녹아들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 그대로다. 포도호텔의 진면목은 바깥이 아니라 자연을 한껏 끌어들인 내부다. 눈부신 자연채광을 둥근 기둥처럼 끌어들인 로비 중정(中庭)과 삐쭉삐죽한 검은 자연석의 대비, 건물의 공간이 꺾이며 만들어내는 틈새로 들어오는 날카로운 빛 등 공간 구석구석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호텔과 핀크스 클럽하우스 복도와 방 등에는 격자 창호와 서까래를 차용한 천장이 보인다. 정교하게 ‘보일 듯 말 듯’ 매만진 전통이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어떻게 건축의 디테일로 표현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다.









방주교회. 건물 외부를 둘러싼 물과 유리벽과 금속지붕, 나무 등 각기 다른 재료가 조화를 이룬다.



 ◆물, 바람, 돌과 어우러지는 건축=유족들은 “자연을 컬렉팅(수집)한다는 개념을 담은 수(水), 풍(風), 석(石) 등 3개의 미술관과 두손 미술관, 방주 교회를 차례로 찾았다. 제주의 가장 흔하고도 중요한 요소인 물과 바람, 돌을 각각의 테마로 삼은 3개의 미술관은 미술품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빛과 바람, 물과 하늘이 주인공이 되는 명상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이다. 유씨는 아버지의 영정을 들고 텅빈 돌(石) 미술관에 서서 마치 넋을 잃은 듯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이튿 날, 유족들은 한국 폴로 클럽하우스에 이어 고인이 건축 총괄(마스터 아키텍트)을 맡고 있던 제주 영어교육도시 공사 현장을 찾았다. 유씨는 그의 유작이 된 상징탑 아래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이곳에서 만난 국순관씨(제인건축 상무)는 “현장 사람들과 대화가 통하는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오래오래 곁에서 일하며 많이 배우고 싶었는데 안타깝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씨는 “아버지는 제게 스승이자 선배, (프로젝트) 파트너이자 친구였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를 재일동포라고 부르는 게 가장 안타깝다. 프랑스에서 슈발리에 훈장을 받을 때 한국 건축가 후배들을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유해는 선산이 있는 경남 거창에 모시고, 아버지가 수집해온 국보급 달항아리 20점을 비롯, 건축 스케치와 그림을 한자리에 모아 제주도에 이타미 준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제주=이은주 기자



이타미 준의 삶과 예술



1937년




일본 도쿄 출생.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 슬하에 8남매 중 다섯째 . 한국 이름 ‘유동룡’을 버린 적이 없다. ‘이타미 준’은 필명(筆名)이다. 무사시(武藏) 공대 건축학과를 졸업( 64년).



1968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의 민화와 고건축의 매력에 빠진 것도 이때부터다. 조선 민화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이조민화』를 집필 . 이후 『이조의 건축』(81), 『조선의 건축과 문화』(83), 『한국의 공간』(85) 등을 냈다.



1988년



서울 방배동에 자신의 아틀리에 ‘각인의 탑’을 설계하면서 국내에서도 ‘스타 건축가’로 떠올랐다.



1998년



재일교포 사업가 김흥수 회장의 의뢰로 제주도 핀크스(PINX)클럽하우스를 설계하며 제주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2001년



핀크스 리조트 단지에 안에 있는 포도호텔(2001) 설계, 물·바람·돌 미술관(2004), 두손 미술관(2005), 비오토피아 타운 하우스(2008) 등 을 설계.



2003년



프랑스 국립미술관인 기메 동양미술관에서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라는 제목으로 개인전(2003).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수상(2005)·김수근 문화상 수상(2006). 2010년 일본 권위의 건축상인 무라노고도상 수상.



2011년 별세



아이티엠(ITM) 건축연구소 한국지사장인 유이화 소장이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그가 진행하던 아일랜드리조트(안산), 서원밸리 클럽하우스(파주) 등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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