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66) 부모의 길

중앙일보 2011.07.25 00:01 종합 22면 지면보기



스타 부모 탓에 아이들은 외출 꺼렸다



스타 부모와 아이들은 이래저래 서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 왼쪽부터 둘째 딸 수화, 아내 엄앵란, 첫째 딸 경아, 신성일, 아들 석현. [김한용 사진집 『꿈의 공장』 (눈빛·2011)에서]





우리 아이들은 스타 부모를 만난 탓에 남모르는 고통을 겪었다. 큰딸 경아(1965년 출생), 아들 석현(67년), 작은 딸 수화(70년)는 어린 시절부터 외출을 싫어했다. 우리 가족이 나서면 사람들은 항상 세 아이의 생김새를 비교했다. ‘누군 엄마 닮았네, 아빠 닮았네’ 하며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동물원의 동물 보듯, 무턱대고 껴안고 만지는 일도 잦았다.



 아이들에겐 이런 상황이 큰 부담이었다. 고급식당이 없던 시절이었다. 아이들과 갈 수 있는 곳은 종로 한일관 정도였다. 그것도 주변의 눈치를 봐야 했다. 오붓한 식사가 불가능했다. 아이들은 특히 초등학교 때 가장 곤욕을 치렀다. 아이들과 스킨십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아이들에겐 가부장적이고, 독선적인 아버지로 비춰졌던 것 같다. 내 판단이 서면 바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세 살배기 석현이에겐 그토록 좋아하는 아이스크림과 콜라를 빼앗아간 존재가 아버지였다. 문제가 있으면 그냥 두고 못 지나가는 성격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부성애를 표현하는 방식을 몰랐다. ‘내리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큰딸 경아와 석현이를 리라국민학교에 입학시킨 것도 내가 결정한 사항이다. 65년 개교한 리라국민학교는 당시만 해도 알음알음 들어가는 학교였다. 설립자인 권응팔 교장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남산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텐트 생활을 하다 성공했다. 그는 남산 언덕의 빈 땅을 개발해 리라국민학교를 지었다.



 아이들은 아무 결정권이 없었다. 아이들이 나와 엄앵란, 양쪽 입장을 이해하게 된 것은 철이 든 이후다. 부부간에 취미나 성격이 꼭 맞았던 것도 아니다. 나와 엄앵란은 한마디로 ‘엇박자 부부’다. 서로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새 47년 세월이 흘렀다.



 나는 보호자로서는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서로 껴안고, 뒹굴다가 함께 엎어지는 아버지를 그리워했다면 충분히 불만스러웠을 수 있다. 이 땅의 많은 아버지가 아마도 나 같은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감싸고 도는 외할머니도 나를 힘들게 했다. 우리 가족은 1971년 무렵 이태원 181번지를 떠나 한남동에 새 집을 지어 1년 살았다. 72년 1차 오일쇼크 영향으로 동부이촌동 삼익아파트로 이사했다. 같은 동네의 현대아파트 시절엔 우리 가족과 외할머니가 나란히 24동 1201호와 1202호를 썼다. 아이들은 집에서 밥을 먹고 나면, 외할머니에게 몰려갔다. 외할머니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혼날 것 같으면 거짓말을 해왔다. 속으로 무척 언짢았다.



 내가 만든 가풍이 있다. 아이들이 음식 가리지 않도록 하고, 알코올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해 13살이 되면 집에서 와인을 마시도록 가르친다. 대학교 때 술 때문에 사고 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들이든, 딸이든 마찬가지다. 부모로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하지만 인생 전체에서 보면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긍정적 사고를 가지면 모든 게 행복이다.



정리=장상용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