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희년

중앙일보 2011.07.25 00:01 종합 29면 지면보기








고대 이스라엘에는 희년(禧年)이란 것이 있었다. 안식년과 깊은 관계가 있다. ‘레위기’ 25장은, “안식년의 소출은……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居)하는 객(客)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6~7절)라고 안식년의 소출은 종과 나그네, 들짐승들과 나누라고 명하고 있다. 일곱 번째 안식년(49년) 다음해가 희년(禧年)인데,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는“여호와의 은혜의 해”(이사야 61:2)다.



 ‘레위기’ 25장 10절은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고 명했다. 희년에는 종들이 자유를 얻었다. ‘레위기’ 25장 26절은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라고 말해서 희년에는 모든 빚도 탕감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남으로부터 산 땅이나 노비의 가격이 희년이 얼마 남았는가에 따라서 달라졌다.



 신약인 ‘누가복음’ 4장의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구절처럼 예수의 공생애도 구약의 희년 이상 실현의 길과 다르지 않았다. 종들은 신체적 자유를 얻고 채무자는 빚이 탕감되는 사회 대통합의 해가 희년이었다. 이런 희년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유랑하면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극심한 사회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대한민국도 희년이 필요하다. 마침 올해가 5·16 군사정변 50주년이다. 거사 당일의 성격 규정과는 별개로 5·16이 절대빈곤의 농업국가를 산업국가로 탈바꿈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반면 경제성장의 과실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크레인에서 김진숙 위원이 비정규직 문제를 걸고 고공농성하고 있다. 희년 개념으로 사회 대통합에 나서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김진숙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같이 민족적 동질감이 강한 사회가 희년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성장의 열매를 소외된 이웃과 나누는 희년 사상을 실현할 때 5·16 군사쿠데타는 자연스레 혁명으로 승화될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