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거세

중앙일보 2011.07.25 00:01 종합 31면 지면보기








수컷의 기능을 박탈당한 내시는 한국·중국에만 있던 게 아니다. 이집트·로마·터키 등에서는 전쟁 포로들을 거세해 궁전 노예로 부렸다. 17·18세기 수백 명의 첩을 하렘에 가둬두고 즐겼던 오스만제국의 술탄은 누구보다 많은 내시가 절실했다. 당시엔 백인보다 흑인 내시가 선호돼 이집트 노예상인들은 수단 등지에서 붙잡은 흑인 아이들을 거세한 뒤 오스만제국에 팔아 넘겼다.



 중세 이탈리아에선 소프라노 못지않게 고음을 내는 ‘카스트라토(Castrato)’를 양산하기 위한 거세가 만연했다. 성경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구절이 있다고 여성의 성가대 참여를 금한 탓이었다. 미성의 변성기 전 소년을 거세하면 성인이 돼서도 성대가 자라지 않아 힘차면서도 아름다운 고음을 낼 수 있었다. 이 거세 가수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지 한 해 6000여 명의 소년이 희생됐다. 그의 삶이 영화화될 정도로 유명했던 최고의 가수 파리네리도 카스트라토 중 하나였다. 어릴 적 노래 잘했던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도 거세될 뻔하다 아버지 반대로 위기를 넘겼다. 중국에서는 거세를 사형과 맞먹는 중벌로 사용했다. 이를 ‘궁형(宮刑)’이라 했는데 사가 사마천은 궁형의 치욕 속에서 대표작 『사기』를 완성했다.



 때론 자발적으로 내시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극단적 금욕주의를 강조했던 초기 기독교인 중 일부는 욕정을 이기기 위해 스스로 죄악의 뿌리를 없앴다. 한국·중국에서도 가난을 견디다 못해 거세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는데 이를 ‘자궁(自宮)’이라 했다. 궁궐 내시라도 돼 연명하려는 눈물겨운 호구지책이었던 셈이다. 정약용의 『다산시문집』에는 자궁을 애달파하는 ‘애절양’이란 시가 보인다.



 한번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본인이 원하는 거세에도 신중을 기했다. 중국에서는 ‘도자장(刀子匠)’이라는 환관 전문 집도인이 수술을 했다. 수술 직전에 집도인은 “후회하지 않느냐”고 여러 번 묻도록 돼 있었다. 이때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수술은 보류됐다.



 24일부터 재범 우려가 높은 아동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한 화학적 거세가 시행된다. 일부에선 약물 투여의 강제성 때문에 인권침해라고 반발한다. 장기투여 시 신체의 여성화 등 후유증도 적잖다. 물리적 거세처럼 성적 기능이 영원히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만큼 대상 선정 등에 백번 만전을 기해야 할 일이다.



남정호 jTBC 특임위원



▶ [분수대] 더 보기

▶ [한·영 대역] 보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