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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史·哲에 골프 접목, 세계로 수출할 고급 콘텐트 나올 것”

중앙선데이 2011.07.23 22:00 228호 8면 지면보기
“골프는 활쏘기와 같습니다. 활쏘기를 일컬어 ‘고요한 동학(動學)’이라고 하는데 골프를 이것만큼 잘 표현한 건 없죠. 날뛰는 야생마 같은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골프를 할 수 있습니다.”

J골프서 ‘신개념 골프레슨’ 시도하는 김헌 마음골프학교장

마음골프학교 김헌(50·사진) 교장은 게릴라 같다. 그는 귀족적이고 배타적인 대한민국 골프문화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거리와 타수에 집착해 골프의 즐거움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골프가 얼마나 즐거운 놀이인가를 보여준다. 골프와 사회의 접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모색한다. 그가 이번에는 골프에 인문학을 끌어왔다. 골프전문채널 J골프와 함께 ‘최고경영자 과정-골프와 인문학의 만남’을 연다. “골프에서 스윙이나 샷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밖에 안 됩니다. 골프에는 전략과 전술, 룰과 매너, 심리학과 경영의 법칙 등이 다 녹아 있는데 골프의 콘텐트가 프로들의 레슨 정도라면 참 빈곤한 겁니다. 이제는 마이크를 인문학자들에게 내줄 때입니다. 그들이 골프를 통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는 뛰어난 콘텐트가 되어 우리나라 골프 수준을 높이고, 그 자체로 훌륭한 문화상품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지난 21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김 교장을 만났다. 굴곡진 그의 삶과 골프 이야기는 마음골프학교를 거쳐 인문학의 바다에까지 닿았다.
 
사업 망하고 공사판 다니면서 책 써
경기고를 졸업한 김 교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다닐 때 골수 운동권이었다. 졸업 후에는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이 그의 바로 위 선배, 송영길 인천시장이 후배였다.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노련)에서 그의 역할은 ‘돈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사업을 통해 조직운영 자금을 마련하고 카페·복사가게·출판사 등도 운영했다. 차츰 규모가 커지면서 ‘노동운동가 겸 비즈니스맨’이 됐고, 사업 파트너와 함께 하기 위해 골프를 배웠다. 노동의 새벽을 쓴 박노해 시인이 그의 자형(누나의 남편)이었는데 골프 때문에 “넌 도대체 뭐 하는 거냐”라는 힐난을 받기도 했다.

그가 사업수완을 발휘해 큰돈을 만지는 동안 소련이 몰락하고 노동운동 조직이 와해됐다. 40대 초반에 사업을 정리하면서 그는 남은 돈으로 골프 관련 회사를 차렸다. 인터넷으로 골프 레슨을 하는 ‘하우투골프’라는 업체였다. “회사를 차리면서 골프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어요. 프로들 개인레슨 하는 것도 눈여겨보고, 레슨 자료를 정리해 매뉴얼을 만들고…. 생각해 보니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야학·학생운동·노동운동 같은 게 다 교육 관련 일이더라고요. 남다르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올인했는데 쫄딱 망했죠.”

빚잔치를 끝내고 공사판 일용직으로 일했다. 힘들었지만 뱃속은 편했다. 그런데 하우투골프를 운영하면서 모아놓았던 레슨 관련 메모를 친구가 몰래 빼내 출판사에 선인세를 받고 팔아버렸다. 친구는 잠적을 했고 출판사의 독촉을 못 이겨 책을 냈다. 내 안의 골프본능(예문당, 2005)이 나오면서 심심찮게 독자들의 연락이 왔고, 이들을 상대로 개인레슨을 시작했다. 친구들이 얻어준 조그만 사무실에 연습타석을 한 개 꾸몄다. 매달 레슨비를 받기도 뭣해서 1년에 100만원을 내면 언제든 와서 연습을 하고 사랑방처럼 부담 없이 어울리자고 했다. 그런데 100만원 내는 회원이 금세 100명이 돼 버렸다.

“당시는 우리 사무실이 부흥회 장소 같았어요. 회원 한 명이 ‘이게 잘 안 돼요’라고 하면 제가 레슨을 해줍니다. 타석 주위를 열댓 명이 빙 둘러서서 구경하다가 그 회원의 스윙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모두들 ‘와∼’하고 박수를 치는 겁니다.”

2008년 3월 좁아터진 사무실을 벗어나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마음골프학교를 열었다. 벌써 12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스윙만 뜯어고치는 게 레슨인가”
마음골프학교는 기존 레슨 시스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대부분 골프 레슨은 프로가 회원을 일대일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프로가 맡은 회원이 수십 명이다 보니 한 명당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5분 안팎이다. 이래선 뭘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프로들이 불문곡직하고 수강생의 스윙을 뜯어고치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현상 뒤에는 늘 본질이 있습니다. 스윙은 몸 컨디션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순간순간 바뀝니다. 어제 멋진 샷을 했던 사람이 오늘 상사한테 깨지고 와서는 열 받아서 제멋대로 클럽을 휘두릅니다. 술 마신 다음날 스윙도 전날과 딴판인 경우가 많습니다. 현상을 쫓아갈 게 아니라 그 원인과 스윙의 원리를 가르쳐 줘야지요.”

기자가 “서양의학이 증세를 없애는 데 주력하는 반면에 동양의학은 원인을 치료하는 데 중점을 둔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논리 아닌가요”라고 아는 체를 했더니 그는 “맞습니다. 우리 회원들이 ‘마음골프가 한의학적 접근과 비슷하다’고 말을 합니다”라고 응답했다. 실제로 그는 한의학도 공부했다.

현상 너머 있는 근원적 문제를 들여다보니 답이 보였다. 그걸 프로그램화했더니 집단 교육이 가능하게 됐다. 마음골프학교는 8주 과정에 60명 정원인데 8~10명씩 반을 나눠 강의와 실습을 진행한다. 입학식, 수업과 숙제, 졸업여행, 졸업식 등 학교 시스템 그대로다. 졸업을 하면 동창회 같은 커뮤니티가 생긴다. 김 교장은 “집단교육의 장점은 옆 사람을 보면서 자극을 받는다는 겁니다. 분명히 그립 잡는 거나 질문하는 수준이 초보인데 2주 만에 드라이브샷을 펑펑 날리는 걸 보면서 ‘골프가 저런 거구나.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았구나’라는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풍성한 골프 담론 만들어내는 게 꿈”
김 교장이 골프와 인문학의 만남이라는 아이디어를 낸 것은 지난겨울이었다. ‘대한민국이 골프 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골프가 성행하고, LPGA 통산 100승이 눈앞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 고품격 골프 담론이 있는가. 인문학은 인간학인데, 인문학을 전공한 이야기꾼들이 골프와 연결된 무궁무진한 콘텐트를 엮어내고, 이를 잘 포장해 수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 교장의 아이디어는 J골프를 만나면서 급물살을 탔다. 최강의 교수진이 꾸려졌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은 왜 골프와 인문학이 만나야 하는지를 명쾌한 논리와 거침없는 달변으로 전해주기로 했다. 홍익대 총장을 역임한 권명광 교수는 골프에서 ‘그림 그리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줄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내가 칠 공의 궤적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박희정 부회장은 골프 라운드를 기억에 남을 이벤트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한다. 최소 5시간을 함께 운동하고, 목욕하고, 밥도 먹는 동반자를 어떤 자세와 매너로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배병우(사진)·이주헌(미술)·오동진(영화)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각자가 만난 골프와의 인연, 그 속에 담긴 스토리들을 실감나게 들려줄 준비를 마쳤다. 동양철학을 전공한 박재희 교수는 동양 최고의 전략서인 ‘손자병법’을 골프장으로 끌어올 것이다.

16주 과정의 J골프 CEO 프로그램은 9월에 1기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주 2회 모임 중 한 번은 주제별로 초청 강사의 강연을 듣고 토론을 진행하며, 한 번은 마음골프학교의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실전 골프 레슨을 한다. 월 1회 1박2일의 워크숍도 마련된다. 산사의 아침(템플 스테이), 건축가 승효상 교수가 지은 특별한 곳에서의 하룻밤 등이 준비돼 있다.

김 교장은 “귀족적이고 배타적인 골프장, 타수와 돈내기에 집착해 일그러진 골프문화를 바로세우는 건 누군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골프와 인문학의 만남을 통해 풍성하고 건강한 한국 골프의 원형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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