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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158조원 공약 … 간 총리, 재정 감당 못해 항복

중앙일보 2011.07.23 00:28 종합 5면 지면보기
일본 민주당 정부가 2009년 총선에서 포퓰리즘 공약을 내세웠던 과오를 인정한 것은 재정 부족으로 공약 실현에 필요한 예산을 도저히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009년 8월 총선에서 ‘생활 제일’을 앞세운 공약과 함께 외교 면에선 대등한 미·일 관계를 약속해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중의원 480석 중 308석을 차지하며 자민당 정권 50년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당시 유권자들이 열광했던 생활 공약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공약을 전면 이행하는 데 필요한 연간 11조8000억 엔(약 158조원)의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아서였다. 올해 일본 국가예산(92조 엔)의 13.9%에 이르는 금액이다.


일본 민주당 포퓰리즘 공약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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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를 겨냥한 자녀 수당과 고교교육 무상화 외에도 고속도로 무료화와 휘발유 잠정세율 폐지, 농어민 소득보상제 실시 등 거의 모든 사회계층을 공략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자녀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모 소득과 관계없이 자녀 1인당 월 2만6000엔(약 35만원)의 양육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자녀수당’ 공약은 민주당의 대표적인 선거 공약으로 총선 승리의 견인차 노릇을 했다. 하지만 이조차 예산 확보를 하지 못해 결국 채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전면 재검토 대상이 됐다.



 자녀수당은 재원 확보에 실패해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서 절반액수인 월 1만3000엔씩만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마저 부담이 되자 민주당은 22일 내년 회계연도에는 연소득이 1000만 엔 이상인 고소득 가정에는 월 9000엔만 주는 수정안을 마련했다.



 고속도로 무료화는 세부안을 정하지 못하다 올 6월을 기해 중단하기로 했다. 휘발유 잠정세율 폐지는 엄청난 세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 밖에 중소기업 법인세율을 11% 내리고 직업 훈련생에게 월 10만 엔의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정책도 실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민주당은 정부의 군더더기 예산을 삭감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며 대대적인 행정쇄신작업을 벌였다. 정부 산하기관 관련 지출을 6조1000억 엔 줄이는 등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해 9조1000억 엔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실제 마련한 것은 2조8000억 엔에 그쳤다. 세제 개편으로 마련하겠다던 2조7000억 엔도 1조1000억엔밖에는 모으지 못했다. 민주당의 포퓰리즘 공약 실행에 필요한 예산의 33%만 마련된 것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은 가뜩이나 어려운 민주당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일본 경제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대지진·쓰나미에 도쿄전력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까지 이어지자 복지 예산 증액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 됐다. 국채도 골칫거리다. 일본의 재정적자는 올해 말이면 1000조 엔(약 1경2000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500조 엔 규모인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배인 셈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2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매니페스토가 타당했는지를 묻는 야당 의원의 질문을 받았다. 그는 “재원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내 잘못이다. 국민에게 솔직하게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총리가 선거 공약에 대해 공식 사과한 건 처음이다.



 이번 사과는 제1야당인 자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이뤄졌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보충하기 위해 국채발행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상태인데 이를 통과시키려면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간 총리는 야당이 특별국채법안을 통과시키는 조건으로 내건 자녀수당의 재검토에 대해 “(야당 뜻에) 양보해 구체적으로 제안하겠다”며 사실상 정책 철회를 선언했다.



도쿄 =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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