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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올 일본 경제백서가 말하는 것

중앙일보 2011.07.19 00:27 경제 8면 지면보기






곽재원
대기자




일본은 백서(白書:white paper)의 나라다. 패전 후 일본 성장을 담은 백서는 각 성청(省廳)의 능력 있는 관료들이 대거 동원돼 만든 연차 보고서로 현재 50여 종류에 이른다. 이 때문에 백서를 관료 문학의 진수라고 평하기도 한다.



 특징은 6월에는 방재, 고령화 사회, 환경, 범죄피해 등 사회 관련 백서들이 주류를 이루고 7월에는 경제재정, 통상, 과학기술, 노동경제, 중소기업 등 경제 관련 백서들이 쏟아진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내각부의 경제재정백서(옛 경제백서)에 경제산업성의 통상백서, 문부과학성의 과학기술백서를 더한 3대 경제백서가 나라 안팎에서 가장 주목 받는다.



 “경제백서는 그해의 나라경제 동향을 풍부한 자료를 구사하여 분석, 해명하고, 그 실태를 일반에게 널리 보고하는 것이 목적이다. 경제정책과 일본 경제의 장래에 대한 여러 논의도 담고 있다.” (1954년 7월 경제백서)



 올해 경제백서는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이후 달라진 일본의 정치·사회·경제 환경을 반영하고 있어 특히 관심을 끈다. 원전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은 지난 17일 원전사고 수습 1단계가 끝났다고 발표했지만 경찰 집계로 16일 현재 사망자 1만5562명, 행방불명자 5306명, 피난자 약 10만 명에 이르고, 산업시설 피해도 커 완전 복구의 길은 아직 멀었다. 정부가 밝힌 복구 기본방침에 따르면 복구비는 향후 5년간 10조~12조 엔(130조~156조원)이 필요하며, 피해 지역에는 국내 최대급 태양광·풍력발전 설비를 투입할 것이라고 한다.



 일본 분석가들은 지금 상황을 ‘진흙탕을 발버둥치며 어렵게 전진해 가는 상태(muddling through)’라고 표현한다.



 올해 3대 경제백서는 이런 상황을 엄하게 받아들이면서 일본이 펼칠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통상백서는 ‘재해를 넘어 글로벌한 경제적 네트워크의 재생 강화’를 표제로 중간재 수출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와 연결을 강화하고, 해외생산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국내 입지 경쟁력 강화와 신흥개도국 인프라 수출을 통해 경제 재건과 고용 확대를 꾀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사회와 함께 만들어 가는 과학기술’을 테마로 잡은 과학기술백서는 원전사고는 혼란을 일으킨 정부에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의 대대적인 수정을 촉구했다. 과기백서가 과학기술정책 수정을 제기한 것은 1958년 백서 발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과학기술이 국민들에게 수용되고 지지받도록 ‘과학기술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도 이례적이다. 내년부터 5년간 시행될 제4기 과학기술기본계획은 당초 과학·기술에 이노베이션을 넣어 과기정책의 경제생산성 향상에 주안점을 둘 예정이었으나, 재해 후는 복구와 부흥을 담는 것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달 말 공식 발표될 경제재정백서는 “일본 기업이 기술은 좋은데 왜 세계시장에서 셰어를 빼앗기고 돈을 벌지 못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일본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 효율이 미국·유럽 국가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진단에 초점을 맞춘다. 백서는 기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5년 전 연구개발비의 몇 배가 되는가를 ‘연구개발의 수익성’이라고 정의, 2008년 데이터를 사용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했다. 평균치가 55배 정도인 데 비해 일본은 40배가 채 안 된다는 결과를 내놨다. 백서는 이어 기업이 기술개발과 인재 육성 등에 투입하는 총액을 국제 비교한 결과 일본은 연구개발 등이 전체의 75%를 점하고, 인재와 브랜드에 대한 투자가 25%에 머무는 데 비해 미국과 영국은 인재와 브랜드에 약 50%를 투자해 그 차이가 확연하다고 지적했다. 투자가 신기술에 너무 편중되고, 소비자를 끄는 마케팅력과 브랜드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재정백서가 미시분석에 이렇게 집중한 것도 처음이다. 올해 3대 경제백서는 한마디로 일본 경제의 재건도 장래도 과학기술과 연구개발, 수출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백서는 일본 전략의 정곡을 찌르고 있는 대단히 유익한 자료다.



곽재원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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