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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급 텃밭 가꾸는 검사들 “농사에서 수사 배워요”

중앙일보 2011.07.19 00:26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인택 포항지청장과 직원들



송인택 포항지청장(왼쪽)과 데이비드 콜리어 한동대 로스쿨 교수(가운데), 그의 아들 조사이아(6)가 포항지청 옆 텃밭에서 상추를 수확하고 있다. 뒤로 검찰청 직원 전도환(45·왼쪽)·이원관(48)씨가 상추가 든 종이박스를 들고 서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수사는 인내와 열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농사와 닮았습니다. 속이 꽉 찬 열매를 거두기 위해 땀 흘리는 농부의 마음을 알면 수사도 더 잘 할 수 있다는 거죠.”(송인택 포항지청장)



 지난 15일 오후 6시30분 포항시 북구의 대구지검 포항지청 청사 옆 텃밭. 해 지기 전 여름 뙤약볕 아래 밀짚모자를 눌러 쓴 남녀 어른과 외국인 부자 등 7명이 신이 나서 밭일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얼핏 보면 농부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이들은 송인택(48) 지청장과 김정환(36) 검사 부부, 두 명의 직원, 한동대 로스쿨 교수인 데이비드 콜리어(40)씨와 여섯 살 난 아들이었다. 검게 탄 얼굴에 밀짚모자를 쓰고 양복바지를 걷어부친 송 지청장은 영락없는 농사꾼 행색이었다.



 “이건 꽈리고추고, 저건 오이고추죠.” 조금 전 집무실에서 사건 기록을 살펴볼 때와는 말투부터 영판 다르다.



 송 지청장이 이곳에서 농사를 시작한 건 지난해 8월 부임 직후였다. 처음엔 잡초밭이었는데 지금은 1300여㎡(400평)의 텃밭으로 커졌다. 재배하는 과일과 채소도 40여 종으로 늘었다. 한쪽에선 상추·호박·옥수수·오이가 종류별로 자란다. 다른 한쪽에서는 표주박과 브로컬리·토마토·수박·참외가 영글고 있었다. 전부 유기농이란다. 농약 대신 식초와 목초액을 쓰고, 벌레를 손으로 잡아가며 기른다고 했다.



 지청 전체 직원 88명 가운데 검사 두 명을 포함, 17명이 텃밭 동호회를 만들어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이 밭에 배추 1000여 포기를 심어 그 중 350여 포기를 불우이웃에게 나눠줬다. “배추파동으로 배추 값이 1포기에 1만원을 넘던 때라 더 보람이 컸습니다.”



 텃밭에서 나온 수확물은 매주 두 차례 청 앞 현관에 놓여진다. 직원이나 민원인, 동네 주민 누구나 와서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다. 공짜로도 가져갈 수 있지만 한 켠에 마련된 모금함에 자발적으로 채소 값을 내는 게 관례다. 1회에 1인당 3000원 이상은 받지 않는다. 지금까지 50여 만원이 모였고 연말 불우이웃돕기에 쓸 계획이다.



텃밭은 가족 생태학습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콜리어 교수는 “검찰청에 이런 완벽한 농장이 있다는 게 놀랍다”며 연신 감탄했다. 마지막 남은 고추를 쓸어담던 윤범준(38) 검사는 “지난해 연수를 떠났다 1년 만에 돌아왔는데 검찰청에 경이로운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텃밭동호회 회장인 김정환 검사는 “청장님이 밭을 가꾸신 뒤 오히려 수사 보고를 더 철저히 받으신다”며 “농부의 심정으로 수사하면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지청장은 올 들어 사비 150여 만원을 들여 트랙터와 미니 경운기, 비닐하우스까지 마련했다. 그는 “내 고향이 예전엔 시골(대전 유성)이라 어릴 적부터 농사일이 손에 익었다”며 “키우는 재미가 있고, 나누는 기쁨도 크니 일석이조”라며 활짝 웃었다.



포항=심새롬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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