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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뭐, 부조 ‘안 주고 안 받기’라고?

중앙일보 2011.07.19 00:24 종합 33면 지면보기






심상복
논설위원




“박정희 대통령의 주요 업적으로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꼽는 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 요즘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봅니다.”



 어떤 편한 모임에서 한 지인이 농반진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결혼식은 특급호텔이고 장례식은 삼성병원으로 굳어진 세태를 언급하며, 새로운 준칙이라도 나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부조(扶助)도 그렇지만 혼주나 상주가 됐을 때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라는 말이었다. 대체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다들 맞장구를 쳤다. “결혼식장에선 봉투만 주고 가는 이가 제일 고맙더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하도 오래된 얘기라 가정의례준칙이 뭔지 좀 부연해야겠다. 1973년 정부는 ‘허례허식을 일소하고, 의식절차를 합리화함으로써 낭비를 억제하고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한다’는 취지로 법을 만들었다. 국민의 혼례·상례·제례, 회갑연에 강한 규제를 도입한 것이다. 청첩장·화환·답례품이 금지됐다. 장사 때 굴건제복(屈巾祭服)과 만장(輓章)도 없애도록 했다. 장례 기간도 사흘로 정해줬다. 그전부터 사문화되긴 했으나 이 법이 공식 폐지된 건 1999년이다. 불과 10여 년 전인데 철기시대 얘기처럼 들린다. 약혼식도, 함진아비도 금지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웃음이 나온다. 어쨌든 정부가 이런 것까지 규제했다는 사실이 지금으로선 믿기 힘들다.



 이 법의 폐지와 함께 취지가 같고 이름도 비슷한 법이 제정돼 지금껏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건전 가정의례의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여기에 이런 조항이 있다. “공무원, 공공기관·단체의 임직원 및 사회지도층의 위치에 있는 자는 이 준칙을 솔선하여 모범적으로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 법도 존재감이 없다. 법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지킨 사람이 신문에 미담(美談)으로 실리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과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최근의 예다. 두 사람 다 큰딸 결혼식을 측근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족 중심으로 조용히 치렀다고 한다.



 경조사비 얘기가 나오면 이구동성으로 부담이 크다고 털어놓는다. 자신도 때가 되면 같은 도움을 받는데 왜 이걸 부담으로만 느낄까. 일종의 미스매치(mismatch) 때문이 아닐까.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적다고 생각하는 거다. 여기엔 가족과 가정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결혼을 안 하니 배우자 부모도, 자식도 없다. 장인·장모의 칠순잔치나 상도 친부모 수준에 맞추는 게 요즘 세상이다. 여자들의 파워가 커진 결과다. 싱글이나 ‘돌싱’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부모를 일찍 여의었거나 입사 전에 결혼한 사람도 손해가 막심하다. 그렇다고 직장생활 하면서 모른 척하기도 힘들다. 품앗이의 이웃사촌 부조가 부담이 된 것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같이 먹고도 음식값은 각자 낸다. 이런 더치페이가 기성세대에겐 낯설다. 쪼잔해 보인다. 그런데 이게 보편화하는 걸 보면 분명 이유가 있다. 개인주의의 확산도 요인이지만 합리적이고 편하기 때문이다. 맛있게 먹으면서 오늘 계산은 누가 할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혹시 경조사비의 연결고리도 끊을 수 있을까. 쇠사슬이어서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다들 부담이라고 하니 어떤 변화를 모색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안 주고 안 받기 운동’ 같은 거 말이다. 이 한마디에 벌써부터 시끄럽다. ‘지금껏 내기만 하다 이제 받으려고 하니 없던 일로 하자고?’ ‘고유문화를 합리주의로 부수겠다는 거냐?’ 누군가 손해를 보기 때문에 강요할 순 없다. 그런 사람은 기존 식대로 하면 된다. 안 주고 안 받기, 동의하는 분, 어디 손 한번 들어 보세요.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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