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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간·쓸개 다 떼고 덤비자

중앙일보 2011.07.19 00:22 종합 34면 지면보기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수출·제조업에서 내수·서비스업 중심으로. 기획재정부가 17일 펴낸 보고서의 요지다. 많고 많은 보고서 중 하나로 보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금 보태 말해 우리 경제의 엔진을 통째로 바꿔 끼우자는 뜻이다. 조이고, 닦고, 손보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경제, 지난 60년간 숨가쁘게 달려 왔다. 없는 나라가 밖으로 뛰어다니며 용케도 컸다. 그러나 이젠 그런 식의 성장을 계속하긴 힘든 시점이 됐다. 경제가 이 정도 연륜이면 박카스 한 병 마시고 기운 차려 밤새 일하는 식의 근로정신만으론 안 된다. 보다 생산성 높은 일을 스마트하게 해야 다음 단계로 뛸 수 있다. 보고서는 그 길을 내수와 서비스업에서 찾았다.



 과거엔 수출이 잘 되면 내수도 피어났다. 지금은 그 효과가 영 신통치 않다. 수출의 고용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경기는 좋아져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이 나타난 거다. ‘복지 없는 성장’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가 뭔가. 수출 대기업은 살판 났지만, 중소기업이나 근로자들은 냉골에서 떨고 있다. 삼성공화국이니, 현대공화국이니, 하는 말도 따지고 보면 수출의존형 경제의 부산물이다. 이대로 가면 양극화는 자꾸 심해진다. 젊어선 취업난민, 중년엔 생활난민, 늘그막엔 노후난민이 될 사람이 숱하다.



 이에 대한 고민, 정부도 오래전부터 했다. 신성장동력 17개 업종 중 8개를 서비스 관련 분야로 선정했다. 고급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서비스업인 의료와 교육도 손본다고 한다. 다만 소관 부처의 이해에 걸려 진전을 보진 못하고 있다.



 물론 ‘제조업=수출, 서비스업=내수’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우리의 서비스를 소비하면 서비스 수출이 된다. 외국인용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면 우리 경제의 외수의존도는 더 높아지는 셈이다.



 그래도 정부가 서비스업을 강조하는 건 인구 5000만 명으론 내수를 키우는 데 한계가 뻔하기 때문이다. 서비스 산업의 토대가 약할 때 무리하게 내수를 자극하다간 카드대란 같은 일이 재발할 위험도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선 외국인의 구매력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안으로의 개방이다. 그러려면 외국인이 군침 흘릴 정도의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쯤 되면 수출과 내수 중 어느 쪽 비중이 더 높아야 하느냐는 건 부차적인 얘기다. 중요한 건 성장과 일자리다.



 정부가 강조하는 서비스 산업은 그냥 발전하는 게 아니다. 제조업 전성시대와는 다른 헌신적인 서비스 정신이 있어야 한다. 우직한 장인정신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업은 대부분 ‘감정노동’이다. 이를 감수하고 서비스업을 발전시킨다는 건 보통 노력으론 안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중국 관광객에게 발마사지를 해주고도 외제차 타고 다닐 정도가 돼야 서비스 대국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려면 간·쓸개 다 떼고 덤벼야 한다.



 서비스·내수 산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정부가 보고서 하나로 산업정책을 뚝딱 만든다고 될 일이 결코 아니다. 젊은이들이 우후죽순으로 커피숍을 창업한다고 서비스 중심의 내수경제가 번창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개개인의 의식혁명이 먼저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경제주체가 유연한 서비스 체질을 갖추는 게 어디 하루 이틀에 되나. 마침 이를 테스트할 찬스가 왔다. 독도 문제로 일본이 도발하고 나선 요즘, 속마음 싹 감추고 일본인과 화기애애하게 비즈니스를 하는 거다. 지금 일본인들의 관심은 독도가 아니라 방사능 오염에 온통 쏠려 있다. 일본 정치인이 자기네 여론을 돌리기 위해 도발하는 데 우리가 넘어갈 이유가 없다. 거짓말도 성심성의껏 해야 통하는 법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하는 이중성을 성심성의껏 견지하며 무섭게 실리를 챙기면 된다. 이거 못 하겠다고? 그럼 뻣뻣하게, 좀 없이 살자.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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