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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타워크레인에서 보낸 194일

중앙일보 2011.07.19 00:19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고공 40m, 크레인 꼭대기에 오른 지 194일째, 계절이 세 번 바뀌었지만 태양은 변함없이 떠오른다. 금년 51세, 가족 뒤치다꺼리 끝내고 평온한 여생을 꿈꿀 중년 여인이 해풍 거센 크레인에 홀로 올라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봄꽃이 피고 지고, 장맛비가 추적거리도록 시간이 흘러도 메아리 없는 대한민국에 전하고 싶은 언어는 무엇인가? ‘조선(造船)강국’의 강인한 노동자들이 사실은 불에 덴 듯한 상처를 안고 산다는 그것인가, 아니면 풍요를 좇는 ‘경제대국’ 시민들이 잊고 있던 그 가치를 들춰내 불편하게 만들고 싶은가? 의류공장 시다, 외판원, 한진중공업(한중) 용접공에 해고노동자인 그녀의 전언을 ‘G10 한국’은 아직 경청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아마 그녀는 크레인 쇠 벽에 일기 쓰듯 써내려갈 것이다. 194일째, 2011년 7월 19일.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정치, 기업, 시민의 단합된 힘으로 이전삼기의 끈기를 보여준 남아공 더반의 낭보에 열광하는 대한민국은 한 평 남짓한 고공 교두보에 홀로 올라앉은 194일의 독백에는 무덤덤하다. 노사합의가 이뤄진 마당에 웬 뒷북치기인가 싶다. 수십 개의 방송과 신문도 비난 일색이고, 부산시민들도 넌더리를 낸다. 이젠 일상이 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게 불편한 까닭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20세기적 문제를 풀지 않고는 ‘21세기 선진한국’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비단 노동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사회를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 것인가를 묻는 본질적 사안이다. 정작 ‘자본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면, 세계무대에서 환영받는 자본이 되려면 우선 국내 작업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함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고질적 문제를 풀지 못한 채 고도성장 시대를 건넜다.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크레인 시위는 해고노동자 복직이 쟁점이었고, 1998년 넉 달을 끈 현대자동차 파업은 정리해고가 문제였다. 1만2000명의 지위가 단번에 바뀌었다. 같은 사안이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터져 나왔다. 기업생존에는 대량해고가 불가피함은 누구나 동의하지만, 노동자들에겐 절명(絶命)의 통지서임은 누구나 인정하지는 않는다. 지난 20년 동안 이 두 개의 생존법칙이 충돌해서 극한적 파열음을 냈다. 정치활동과 정규직 위주의 민주노총은 아직 해결 방법을 못 찾았다. 꼬리 자르듯 해외로 나간 기업은 한숨을 돌린다. 그런데, 필리핀 수비크만에 진출한 한중조선소에서 5년간 24명이 안전사고로 죽었다. 현지 노조들은 수빅조선소를 ‘킬링필드’로 부른다(시사IN 200호). 20년 전 과테말라 삼풍어패럴은 ‘버뮤다 삼각지대’로 불렸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사라진 여공들이 더러 있었다. 여태껏 한국 자본이 그렇게 인식된다면 심각하다. 우리는 한국에 진출한 외국자본을 ‘제국의 수탈자’로 보는 데에 익숙하다. 외국인들은 우리 기업을 어떻게 볼까? 어쨌든, 해외진출 덕에 한국은 2만 달러 시대를 열었는데, 이미지는 그렇게 됐고, 정작 한국의 노동자들은 감량경영과 불안정한 취업에 떨었다.



 이 오랜 과제가 작년 12월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다시 불거졌다. 6년간 수주실적 0이었던 기업은 최후의 방법인 정리해고를 택했다. 400명 해고자 명단이 통보됐고, 노동자들은 불가로 맞섰다. 10년 전 해고노동자 김진숙이 크레인에 올랐다. 되풀이되는 생존법칙의 충돌이 결국 대량해고로 봉합되고야 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막막했던 거였다. 2003년 같은 문제로 투신한 동료의 서러운 기억이 차가운 쇠붙이에 묻힌 곳이다.



 독일과 스웨덴도 오래전 이런 질병을 앓았다. 기업과 노동자가 해결하기 어려운 벅찬 문제를 국가가 떠안았다. 기업과 노조는 상생전략을 짜느라 머리를 맞댔는데, 국가가 해결사로 나섰다. 정치권은 범국가적 차원의 ‘유연안전망(flexicurity)’을 가설할 것을 국민에게 호소했다. 해고노동자에게 월급에 가까운 생계비와 재취업훈련이 주어졌다. 독일의 연방고용청과 스웨덴의 노동시장국이 빈틈없이 노동자를 보살핀다. 무상급식, 반값등록금에 헷갈리는 국민들이 모르는 게 있다. 일자리 지키고 노동역군을 보호하는 국가의 기본업무 말이다.



 1990년 골리앗 크레인 시위, 십여 대의 헬기와 진압대 수천 명이 동원된 ‘미포만 작전’은 노모의 한마디만도 못했다. “야야, 니 거기서 모하노! 애 운다 빨리 내려오이라!” 70명 노동자가 두말없이 내려왔다. IT한국, 조선강국 한국이 김진숙을 내려오게 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작고한 노부가 환생해 이 말을 하는 것. “복직했냐, 은제 하냐? 그라믄 복직 몬 한다!” 가난에 단련된 노모와 노부의 잠긴 목소리로 이 구조적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용접공 김진숙, 한진중공업의 듬직한 배에 꽃다운 청춘을 용접한 김진숙에게 네 번째 계절인 가을이 저 멀리 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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