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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이 국가 성장동력 <하> 특허 사각지대, 대학

중앙일보 2011.07.19 00:07 종합 4면 지면보기
“연구 과제가 끝나면 무조건 특허를 냅니다. 연말 고과 평가와 과제 성과 평가 때 실적으로 잡히는 데 안 할 이유가 없지요.”


미 노스웨스턴대 특허 28건 … 연 8734억원 로열티 수입
돈 되는 특허 만드는 해외대학

 서울의 한 공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10년간 87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그중 등록된 특허만 42건에 이른다. 한 해에 많게는 20건을 출원하고 12건이 등록되기도 했다. 그동안 정부와 기업에서 받은 연구비는 대략 50억원에 달한다.



 한국 대학가에서 이 정도 실적이면 특급에 속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기업에 이전한 특허 기술은 4건이며, 그 대가로 받은 로열티는 1억원 남짓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연간 3조5000억원 정도의 국가 연구비를 사용하고, 이공계 박사의 66% 이상이 몸담고 있는 대학의 특허 생산 및 관리 실태의 한 단면이다. 교수들은 실적에 급급해 좋은 기술이건 아니건 관행적으로 특허를 출원하고, 그러다 보니 쓸 만한 특허가 거의 없어 서랍에 먼지만 쌓이는 것들이 태반이다. 지식재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풀뿌리 대학연구소의 특허관리체계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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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허 양산 조장하는 풍토=대학 교수들이 정부나 민간 기업으로부터 받는 프로젝트에는 대부분 특허 출원 비용이 별도로 계상돼 있다. 특허가 등록된 뒤에는 대학이 특허 유지비용을 댄다. 그러다 보니 교수들은 특허 출원 서류만 내고 상품화나 기술이전 등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다 특허 출원을 게을리하거나 못하는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도 질 낮은 특허를 양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돈이 되는 훌륭한 특허보다는 숫자만 늘리면 더 대접을 받는 풍토가 대학에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산학협력백서에 따르면 2009년도 국내 145개 대학이 출원한 특허 건수는 1만287건이다. 2007년 7326건, 2008년 9142건 등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국가 연구비가 늘어나는 추세와 거의 비슷하다. 특허청의 2010년도 지식재산백서에 따르면 대학의 우수특허 비율은 7.4%로 대기업(17.2%)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학들은 특허 숫자라는 양적인 실적을 쌓는 대가로 연간 수억~수십억원의 특허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2009년도 123개 대학이 부담한 특허 비용은 약 270억원에 이른다.



 연세대 홍대식 연구처장은 “대학의 특허도 이제 질로 전환해야 할 때다. 옥석 구분 없이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해서는 진정한 지식재산 시대를 열 수 없고, 국가 경쟁력도 향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개혁 의지 없는 대학=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이 2008년 한 해 벌어들인 특허 기술료는 8억2400만 달러(약 8734억원, 28건)나 된다. 컬럼비아 대학의 경우도 같은 해 1억3427만 달러(약 1423억원, 36건)를 벌어들였다. 국내 대학의 경우 2009년 기준으로 서울대가 약 33억원(59건), 고려대 약 15억원(89건), 한양대 약 19억원(32건), 연세대 약 15억원(45건)을 벌었을 뿐이다. 같은 해 한국 대학이 벌어들인 총 기술료 수입은 299억8000만원이다.



 경희대 김영진 연구처장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할 때 특허를 내려고 하자 대학 소속 변호사가 달려와 다양한 상담을 해줬다”며 “미국 대학은 특허의 질로 승부한다”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대학과는 접근 방식이 아주 다르더라는 것이다. 국내에는 특허를 관리하고 상품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학이 불과 몇 곳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국내 주요 대학은 산학협력단과 기술이전 전담조직(TLO)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30개 대학에 작게는 4500만원, 많게는 3억원씩을 지원하며 운영하도록 한 결과다. 자발적으로 이런 조직을 운영해 왔거나 운영하려 하기보다는 정부가 등을 떠밀자 마지 못해 움직이는 대학들이 대부분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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