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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민 떠난 아빠로부터...

중앙선데이 2011.07.18 16:02 227호 10면 지면보기
나는 신기한 동영상을 하나 발견했다. 인터넷에서 미래와 관련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2084년에서 온 시간이민자라고 말하는 20대 청년이 2084년에 살고 있는 자식에게 보내는 일종의 영상편지였다. 아쉬운 것은 그 동영상을 발견했을 때 따로 저장해 두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언제든 검색하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검색해 보니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오직 하루가 다르게 허약해지고 부실해지는 기억을 믿으며 자칭 시간이민자가 말한 내용을 옮기는 수밖에.
여담아, 아빠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말투를 흉내 내면 “내가 니 애비다.” 청년 아빠를 본 소감이 어떠냐? 내가 항상 그랬지.젊었을 때 내가 너보다 훨씬 잘생겼었다고.이젠 믿겠지. 하하하. 너는 반대했지만 역시 시간이민 오기를 잘한 것 같다. 거기서 그렇게 젊은 세대들의 짐이 되고, 온갖 사회문제의 원인 취급 받으며 나는 살기 싫었다. 물론 아빠도 너와 함께 살고 싶다. 그렇게 늙어가는 것도 삶의 모습이겠지. 그러나 그건 적어도 아빠가 사는 방식은 아니다. 70회 생일을맞았을 때, 드디어 대상자가 되었을 때 나는결심했다. 시간이민을 떠나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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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민을 두고 말이 많다는 것은 나도안다. 초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일종의 ‘노인 추방’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사회폭력이라고, 가족을 생이별시키는 비인간적 제도라고, 결국 새로운 고려장이라고. 또, 노인 각자의 자유의지라고 하지만 결국 대상자에게 시간이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사회 분위기를 강압적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그런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여담아. 아빠는 말의 사람이 아니라 행동의 사람이다. 말하는 사람은 실컷 말하게 내버려두자. 너도 알지?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지. 나는 수없이 많은 다른 시간이 있다고 믿어. 우리는 그 시간들 중 하나에서만났던 것이고. 봐라. 지금은 다른 시간에서 살고 있는 아빠를.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순차적이지 않다. 미래는 끝없이 과거를 변화시킬 테니까. 그러고 보면 ‘시간순’이라는 말처럼 우스운 말도 없겠다.
참, 아빠가 이렇게 갑자기 젊어진 게 궁금하겠구나. 이건 시간이민국에서 비밀서약을 한 것인데 네게만 특별히 알려주마. 그러니 너도 꼭 비밀로 해라. 나는 시간이민이라고 해서 내 육체 그대로 시간터널을 지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구나. 설명하기 쉽지 않은데 시간터널을 통과하는 건 내 DNA란다. 원래 내 육신은 아마 시간이민국 지하보관소에 있겠지만 뭐 그런 건 상관없다. 영화 ‘아바타’를 떠올려보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새로운 젊은 몸을얻었다. 몸이 바람 꽉 채운 공처럼 팡팡 튀어오를 것 같다.
시간이 얼마 없구나. 앞으로는 소식 전할수 없을 거다. 이런 내 행동은 금지된 것이고 지금도 시간이민국 요원들이 날 감시하고 있으니까. 사랑한다, 여담아. 항상 너는 나의 자랑이었고 기쁨이었고 보람이었다. 행복을 빈다. 우리는 또 다른 시간에서 만날 것이다. 잘 지내라. 1984년에서.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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