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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이 국가 성장동력 <상> 특허보호 후진국, 대한민국

중앙일보 2011.07.18 03:00 종합 4면 지면보기



“특허 도용엔 장사 없어요” … ‘DVR’ 기술 등록 않고 2년간 비밀 개발
김영달 아이디스 사장 ‘특허 대박’ 고충



기술 유출이 걱정돼 특허도 내지 않은 채 비밀리에 장비를 개발했다는 김영달 사장. [중앙포토]



“처음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특허 출원을 하지 않았어요. 특허 도용에는 장사가 없거든요. 그래서 약 2년 동안 비밀리에 제품을 개발한 뒤에야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특허 기술로 ‘대박’을 터뜨린 대표적인 벤처기업가 아이디스㈜ 김영달(43) 사장의 말이다. 그는 비디오 테이프에 담던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디지털로 저장하는 기술을 처음으로 개발한 뒤 사업으로 연결해 성공했다. 김 사장은 특허 기술(디지털비디오레코더·DVR)을 밑천 삼아 1997년 아이디스를 창업해 지난해 10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의 60% 이상인 650억원가량을 수출로 벌어들였다. 이 분야 세계 1위에 올라 있기도 하다.



 김 사장은 첫 특허를 낸 이후 관련 기술을 계속 발전시키고, 신기술 개발을 병행해 현재 40여 개의 특허를 등록했다. 이렇게 많은 특허를 갖고 있지만 김 사장은 특허를 낼 때마다 ‘조심 또 조심’한다. 자신이 낸 특허가 부메랑이 돼서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김 사장은 자신만의 기술 관리 원칙을 갖고 있다. 제품이 완성되기 전에는 특허 출원도, 관련 논문도 일절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아이디어가 새나갈 우려가 있어서다. 한 번 특허를 도용당하면 그 권리를 찾거나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해 수년간 법정 다툼을 벌여야 하고 엄청난 수고와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선례를 볼 때 우리나라는 법정 싸움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보상이 턱없이 적어 이겨도 남는 게 없다는 것을 김 사장은 마음 속에 새기고 있다.



 그런 김 사장이 특정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할 때는 충분한 대비가 돼 있다고 보면 된다. 설사 남이 기술을 베낀다 해도 이미 두어 걸음 앞서 있는 상태여서 시장을 계속 장악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핵심 기술은 여전히 비밀이다. 김 사장은 “지금도 핵심 중의 핵심 기술은 설사 남들이 제품을 뜯어봐도 그것이 뭔지 알지 못하도록 관리한다”고 말했다. 기술을 보호해야 할 특허제도가 되려 기술 유출의 통로가 되는 현실이 그를 이렇게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김 사장의 성공 신화는 남이 착안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기술로 연결한 덕이기도 하지만 이런 남모르는 ‘특허 전략’도 한몫했다.



 김 사장은 “남들이 특허 기술을 베낄 때 특허 침해에 걸리지 않게 비켜가는 방법은 아주 많다”며 “특허권리를 잘 보호해 주는 제도나 사회 환경 정비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기술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KAIST에서 전산학으로 학사부터 박사학위까지 받는 등 기술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그가 DVR 기술에 착안한 것은 KAIST에서 이광형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과정을 밟을 때다. 1997년 당시 29세였다. 대학이며 아파트 등 경비실마다 수북이 쌓인 CCTV 영상 기록용 비디오테이프를 본 그에게 번개처럼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영상을 저장하면 비디오테이프를 저렇게 쌓아 놓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또 컴퓨터 화면 하나에 여러 곳의 감시 영상을 띄워 놓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비디오테이프에 영상을 기록하면 화질도 나쁘고, 무엇보다도 검색을 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돌려보던 번거로운 기억도 떠올랐다.



 김 사장의 아이디어는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는 신기술을 무기로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을 개척했다. 현재 30여 개국에 시스템을 수출하고 있다. 그의 사무실에는 ‘수출의 날’에 받은 ‘1000만 달러 수출의 탑’ ‘5000만 달러 수출의 탑’ 트로피가 있다. 지난해 말 누적 매출은 6000억원에 이른다. 2009년에는 벤처기업대상 동탑산업훈장도 받았다.



 김 사장은 “누구나 기술 유출이나 도용 우려 없이 특허를 출원하고, 사업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처럼 특허 기술을 ‘무기’로 기업을 일궈 연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벤처기업만 지난해 말 현재 315개에 이른다. 이들의 평균 연간 매출액은 2068억원이며, 전체 매출은 65조원을 넘는다.









기계연구원 김동수 박사가 기술료 100억원을 받기로 하고 이전한 ‘롤투롤’ 인쇄 회로 장비의 성능을 살펴보고 있다. 필름에 인쇄하듯 회로를 찍어 낼 수 있다. [중앙포토]






 특허 기술을 기업에 이전해 수십억원대의 갑부가 된 과학자도 꽤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김동수(52) 박사는 ‘롤투롤(Roll to Roll)’ 회로 인쇄 기술을 100억원을 받기로 하고 ㈜대성하이텍에 이전했다. 롤투롤 인쇄 장비는 두루마리 필름을 인쇄기의 10여 개 원통 막대에 걸친 후 지그재그로 이동시키면서 찍는 기계로 ‘R2R’이라 불리기도 한다. 전자 부품이나 회로 역할을 하는 용액 물질을 잉크 삼아 태양전지·전자태그(RFID) 등을 필름 위에 인쇄하듯 찍어 낸다. 빠르고 값싸게 전자 회로를 양산할 수 있어 세계적으로 고성능 장비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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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대 응용화공생명공학부 이영무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이산화탄소 분리막 기술을 2년 전 미국 에어프로덕츠에 이전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200만 달러(약 22억원)의 선금 기술료를 계약과 동시에 받고, 상용화 이후 매출액 대비 일정액을 받는 조건이었다. 상용화가 되면 연간 약 300억원의 기술료 수입이 예상된다. 지식재산 중 가장 핵심인 특허 기술이 가져오는 파급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지식재산기본법=지식재산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제정한 법.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했으며 20일 발효된다. 특허 등 지식재산의 창출을 촉진하고 권리 보호도 강화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설치해 중점 추진 목표를 담은 기본 계획을 마련하고, 범부처 차원에서 관련 정책을 추진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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