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클라레 저그를 누가 품든, 왓슨에게 보내는 갈채

중앙일보 2011.07.18 00:28 종합 28면 지면보기



브리티시 오픈 골프
우산살도 휘는 비바람 속 라운딩
흔들림 없는 62세 노장 투혼
NYT “그를 볼 수 있을 때 즐겨라”



톰 왓슨이 영국 샌드위치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 골프장에서 벌어진 디 오픈 3라운드 14번 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젊은 선수들이 “식기세척기에 들어갔다 나 온 것 같다. 날씨를 감안하면 이븐파는 74타 이상”이라고 표현한 악천후 속에서 62세의 노장 왓슨은 72타를 쳤다. [샌드위치 로이터=뉴시스]





모자 챙에서 뚝뚝 빗물이 떨어졌다. 세찬 빗줄기가 노신사의 주름진 뺨을 때렸다. 톰 왓슨(62·미국)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색 바다를 묵묵히 항해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처럼. 왓슨의 표정은 온화했다. 그러나 눈빛은 신념에 빛났다.



 16일(현지시간) 디 오픈 3라운드가 벌어진 로열 세인트 조지스 골프장. 우산살이 휠 정도로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마스터스가 그린의 퍼트 경연대회이고, US오픈이 거리 싸움이라면 디 오픈은 자연과의 대화다.



 디 오픈에 걸맞은 궂은 날씨는 골퍼들을 가혹한 시련에 빠뜨렸다. 보 반 펠트(미국)는 “식기세척기에 들어갔다 온 것 같다”고 했다. 트레버 이멜먼(남아공)은 “헤비급 챔피언과 18라운드 복싱 경기를 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디 오픈 챔피언인 루이 우스트이젠(남아공)은 “공식 대회가 아니었다면 라운드를 그만두고 집에 돌아갔을,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악조건이었다”고 말했다.



 왓슨은 3라운드에서 2오버파 72타를 쳤다. 그가 경기를 끝냈을 때 평균 스코어는 77타였고, 왓슨보다 좋은 스코어를 낸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왓슨이 경기를 마친 다음 날씨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좋아져 늦게 경기를 시작한 선두권 선수들이 훨씬 유리했다. 그래도 왓슨의 성적은 아홉 번째로 좋았다. 4라운드에서도 비는 오락가락했고 바람은 여전히 거셌지만 왓슨은 72타를 쳤고 최종합계 6오버파로 경기를 끝냈다. 25위권이다.



 60세의 노장으로 메이저대회 71번째 홀까지 선두를 달렸던 2009년 디 오픈처럼 왓슨은 또 한 번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젊은이들도 견디기 어려운 비바람 속이었기 때문에 팬들은 노장의 인생과 영혼까지 살짝 엿볼 수 있었다. 타이거 우즈가 출전하지 않았고 새로운 황제 로리 매킬로이가 부진했어도 왓슨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우리가 왓슨을 필드에서 볼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고 썼다.



 왓슨은 “바람이 강할수록 스윙을 부드럽게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젊은 선수들은 맞바람이 불 때 더 세게 치려고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나는 61살(미국식 나이)이라 세게 치려고 해도 못 친다”고 웃었다.



 왓슨은 기자회견에서 “당신들, 프로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는 걸 즐기지 않느냐”며 웃었다. 그의 마음까지 볼 수 있는 악천후라면 기자들은 매우 좋아한다. 필 미켈슨(미국)은 “만일 대회 내내 이런 날씨가 계속된다면 누가 왓슨을 꺾을 수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열리는 메이저대회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같다. 그러나 골프의 고향에서 열리는 디 오픈은 유장하게 흘러가는 인생 드라마다. 비와 바람, 험난한 대지 위에 꽃피는 숭고한 의지가 갤러리를 감동시킨다. 누가 클라레 저그(우승 트로피)를 가져가든 올해의 주인공은 왓슨인 듯하다.



성호준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