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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61) 이태원 시대 <상>

중앙일보 2011.07.18 00:26 종합 26면 지면보기



“와이래 뜨겁습니꺼” 엄앵란이 일제 보온병을 꺼내자 다들 놀랐다



엄앵란은 세련되고 화사한 이미지로 일급 광고 모델로 꼽혔다. [김한용 사진집 『꿈의 공장』에서]





나와 엄앵란의 신혼 보금자리가 된 이태원 181번지는 미8군 부사령관인 콜터 장군 동상(지금의 녹사평역 사거리에 있다가 능동 어린이대공원으로 옮겨짐)을 내려다보는 하얀 집이었다. 미8군에서 흘러나온 물자와 G.I(미군)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지금은 흔하지만 보온병은 1960년대 초반만 해도 대단히 신기한 물건으로 통했다. 결혼 직전인 64년 여름 영화 ‘동백아가씨’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주인공을 맡은 엄앵란은 빨간 PVC로 모양을 낸 예쁜 일제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가지고 다녔다. 그 보온병은 남대문의 일명 ‘도깨비 시장’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하루는 ‘동백아가씨’의 작곡가 백영호가 촬영장을 찾아왔다. ‘동백아가씨’는 섬 처녀가 방학 때 잠시 내려와있던 서울 학생과 사랑을 나눈 이야기다. 여자는 연인을 찾아 서울로 올라갔다가 캬바레 여가수가 된다. 남자가 사회인이 되어 캬바레에 갔다가 여자와 우연히 재회한다. 이 때 엄앵란이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가 ‘동백아가씨’였다.



 엄앵란은 자신의 노래를 지도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백영호에게 따끈한 커피를 한 잔 대접했다. ‘퐁퐁퐁퐁’ 소리가 나면서 커피가 흘러나오는 모습에 모두들 놀라워했다. 캬바레도 난방이 잘 안 되는 시대인데 밤을 새워가며 뜨거움을 유지할 수 있다니. 아주 투박한 부산 사투리를 쓰는 백영호는 감탄사부터 연발했다.



 “아쿠야!”









신혼 보금자리가 된 서울 이태원 181번지 하얀 집.



 그는 깜짝 놀라며 “전기도 없는데 와이래 뜨겁습니꺼”라고 물었다.



 생전 처음 보온병 커피를 마신 백영호는 이 영화의 주제가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노래를 부른 이미자도 단번에 무명가수에서 유명가수로 발돋움했다.



 보온병은 사치품의 하나였다. 밥을 굶지만 않아도 행복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보온병 안은 수은이 칠해진 유리여서 약간의 충격을 받아도 깨지곤 했다. 나와 엄앵란의 보조원들이 보온병을 많이 깼다. 결혼 후 이태원집에 살면서 이런 고충을 해결했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흑인 주임 상사가 이웃에 살고 있었다. 그 사람으로부터 선수 시절 쓰던 보온병을 케이스와 함께 선물로 받았다. 가죽으로 외관을 두른 그 보온병은 안이 스테인리스 스틸이어서 절대 깨지지 않았다. 내가 아스팔트에 떨어트린 적도 있는데, 밑이 약간 찌그러졌을 뿐 안은 멀쩡했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물건이었다. 우리는 상당히 오래 이 스텐 보온병을 썼다.



 보온병 뿐만 아니라 커피도 밀수품이었다. 원두커피가 국내에 도입된 지 20여 년 됐지만, 그 당시에는 병에 든 인스턴트 커피밖에 없었다. 밀수품은 주로 여수 앞바다와 부산항 등을 통해 일본에서 들어왔다. 물건을 바다의 특정 지점에 가라앉혀 놓으면 잠수부가 건져내는 방식이었다. 이 물건들은 대구 양키시장·부산 국제시장·서울 남대문시장에 풀렸다. 그 곳엔 없는 물건이 없었다. 당국에서 가끔 단속을 실시해 밀수품을 걷어가곤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물건을 팔았다.



 우리는 사각형 포장의 1회용 커피도 즐겼다. 이 커피는 미8군에서 흘러나온 C-레이션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가로·세로·높이 약 40㎝ 크기의 C-레이션 상자는 야전용 군 지원 식량이어서 GI 시계와 초콜릿을 포함해 별별 것이 다 있었다. 토마토 소스 미트볼·치킨 누들·빈(bean) 깡통을 따 먹으면 맛이 기가 막혔다. 쿠키에 딸기잼을 찍어 먹으면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입 안에서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이란 삶의 또 다른 낙이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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