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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신 찍은 함양 백암산 고지, 흙이 불에 익어 발이 푹푹 빠졌다

중앙일보 2011.07.18 00:19 종합 25면 지면보기



제작비 110억원 6·25 소재 영화 ‘고지전’의 장훈 감독



충무로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신예 중 한 명인 장훈 감독. 서울대 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김기덕감독 밑에서 연출을 시작했다. 배우 못지 않은 외모지만 늘 모자를 쓰고 다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형용모순적 표현이지만, 장훈(36) 감독에겐 ‘평론가들이 사랑하는 대중영화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저예산영화 돌풍을 일으켰던 ‘영화는 영화다’(2008), 546만 관객을 동원한 ‘의형제’로 그는 ‘충무로의 블루칩(우량주)’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가 운좋게 급등한 ‘벼락출세주(株)’가 아니라는 사실은 20일 개봉하는 ‘고지전’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제작비 110억원대 규모인 ‘고지전’은 1953년 6·25 정전협정 체결까지 하루에도 서너 차례 고지를 뺏고 빼앗겼던 남북 병사들의 얘기다. 2년 반 동안 벌였던 길고 지루한 소모전은 “전쟁이 끝나는 것보다도 모든 전쟁이 아예 시작도 되지 말길 바란다”던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말을 곱씹게 만든다. 장훈 감독을 14일 만났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방첩대 중위 은표(신하균)와 남북이 대치한 애록고지에서 싸우는 ‘악어부대’의 리더 수혁(고수)이다. 이 부대 중대장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되고, 북과 내통한 증거가 발견되자 은표가 파견된다. 부대원들은 상사와 동료를 죽인 죄책감으로 약물중독과 정신이상에 시달린다. 심영섭 교수(대구사이버대)는 프랜시스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1979)을, 전찬일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테랜스 맬릭의 ‘신 레드라인’(1998)을 각각 거론하며 이 영화를 호평했다. 두 편 다 반전영화의 걸작으로 불린다.



 -준비단계에서 참고한 전쟁영화가 있다면.



 “박상연 작가(‘공동경비구역 JSA’ 원작자, ‘선덕여왕’ 공동각본)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떠올린 영화는 ‘플래툰’(1986)이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도 생각났다. 비주얼 면에선 스탠리 큐브릭의 ‘영광의 길’(1957)이다. 병사들이 포탄구덩이 속을 넘어 행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의 참상 속에서 개인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드는 명장면이다. 그런 정서를 살리고 싶었다.”









주인공 수혁으로 분한 고수는 소지섭·강동원에 이어 캐스팅한 3번째 꽃미남 배우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다.



 “그래서 참 조심스럽고 힘들었다. ‘의형제’ 하면서 많이 생각했다. 남과 북이 미래에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면 남과 북에 관한 이야기가 어떤 형태로든 쏟아져 나와야 한다고. 탈북자건 전쟁이건 금기시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통해 보는 게 한국전쟁에 대한 가장 정확한 관찰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영화는 이기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게 중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국전쟁은 아직 다루기 조심스러운 소재다.



 “악어부대나 애록고지 등 상당 부분은 허구다. 10대나 20대가 이를 모조리 사실로 받아들이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있다. 게다가 전쟁영화 하면 스펙터클에 대한 기대치가 크다. 하지만 소위 ‘센’ 장면을 이어붙여 오락거리로 소비하고 싶진 않았다.”



 -‘고지전’은 ‘의형제’보다 대중성에서 아쉽다는 반응도 들린다.



 “박상연 작가는 이 영화의 주인공 1번을 전장(戰場), 즉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인물은 2번이었다. 자료조사를 할 때 류성희 미술감독(‘박쥐’ ‘살인의 추억’)이 ‘우리 영화 이미지를 찾았다’며 고지 사진을 보여줬다. 나무 한 그루 없고 살이 문드러진 것처럼 땅이 패여있었다. ‘땅이 이렇게 슬플 수 있구나’ 싶었다. 거기서 출발했다.”



 -남북 병사들이 편지와 물품을 교환하는 14벙커 설정, 12시간 전투를 앞두고 함께 ‘전선야곡’을 부르는 장면 등이 인상적이었다.



 “남북한 병사들을 동등하게 바라보려 했다. 군복을 입고 있지만 군인이 아니라 그들은 그냥 인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부전선의 격전장으로 설정된 애록고지는 경남 함양 백암산에서 찍었다. “해발 600m가 넘었는데, 흙이 불에 익어 모래밭처럼 발이 푹푹 빠졌다. 배우고 스태프고 장갑 끼고 네 발로 기느라고 숨이 가빴다. 뭐라고 말을 시키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는 연출작 3편을 모두 당대의 꽃미남 스타와 함께 했다. ‘영화는 영화다’의 소지섭, ‘의형제’의 강동원, 이번엔 고수다. “고수가 주연한 영화 ‘백야행’(2009)을 보고 ‘아, 저 신비로운 눈은 뭐지’ 놀랐다. 만나보니 좀 다르긴 했지만.(웃음) 잘생긴 배우는 뭘 해도 잘생긴 게 먼저 보이니 연기자로선 장기적으로 불리하다. 세 배우의 공통점은 이런 한계를 이겨내고 연기자로 평생 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는 점이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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