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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1986년 노벨화학상 대만 리위안저

중앙일보 2011.07.18 00:18 종합 8면 지면보기



내달 7일 대전서 열리는 아시안사이언스 캠프(ASC) 창안자
“과학 발전엔 정치적 의지 중요하다”



다음 달 대전에서 열리는 아시안사이언스 캠프에서 강연할 리위안저 박사는 젊은 과학자를 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타이베이=강찬수 기자]



10대 시절 그는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가 시끄럽다고 불평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불평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했다. 그는 두 달 동안 재봉틀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재봉틀 소리가 아주 작아졌다. 성능은 훨씬 더 좋아졌다. 유치원 선생님인 어머니는 늘 그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요구했고, 화가인 아버지는 그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그에게 물려줬다. 대만 출신으로 1986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리위안저(李遠哲·이원철·75) 특빙(特聘)연구원 이야기다.



다음 달 7~13일 대전 KAIST에서는 제5회 아시안사이언스 캠프(ASC)가 열린다. 이 행사를 처음 제안한 대만 중앙연구원의 리 박사를 7일 타이베이 연구실로 찾아가 만났다. 리 박사는 “20세기 최고의 실험 물리화학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나이에 비해 아주 건강해 보였다. 두 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밝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그는 “훌륭한 과학계 리더가 되려면 무엇보다 과학을 아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과학자들에게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리 박사의 답변을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기 서강대 화학과 오한빈 교수가 인터뷰에 동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전 ASC에서 젊은 과학도들에게 강연할 내용은 무엇인가.



 “세 가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먼저 과학이 어떤 것이고, 무엇을 하는 것이 과학인가를 설명할 생각이다. 두 번째는 100년 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퀴리 부인은 과학자가 무엇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자 내가 과학을 하도록 만든 롤 모델이다. 세 번째는 과학자가 최고의 직업, 가장 즐길 만한 직업이란 점을 알릴 것이다. 과학자는 결코 따분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재미있게 생활하고 돈도 많이 쓰는 ‘부자’다. 과학자가 부유하다는 말은 돈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훌륭한 과학자가 된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프로젝트에 돈을 많이 쓸 수 있다는 뜻이다.”



 -86년 노벨상을 받은 ‘교차 분자 빔 기술(crossed molecular beam technique)’이란 어떤 것인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기초반응을 추적함으로써 화학반응을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해하는 방법이다. 화학반응을 이해하기 위해, 분자수준에서 충돌하는 반응물의 운동에너지를 선택 또는 컨트롤하고, 새로 생성되는 분자들의 운동에너지, 각도에 따른 분포와 진동·회전의 정도를 측정했다. 이것은 기초반응을 현미경으로 시간대별로 관찰하는 것과 같다. ”









2004년 11월 칠레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리위안저 박사(왼쪽)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오른쪽) 등 각국 정상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중국의 요구 때문에 당시 대만에서는 천수이볜 총통 대신 비정치인인 리 박사가 참석했다. [중앙포토]






 -천수이볜 총통이 행정원장 자리를 제안했는데 거절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과학자와 정치가는 매우 다른 종류의 ‘동물’이다. 과학자들은 문제 해결에 관심을 두지만, 정치가들은 타협하는 사람들이다. 서로 관점이 다르다. 실험실에서는 변화가 빠르지만 사회는 느리게 변하기 때문에 변화 속도도 다르다. 정치인들이 근시안적이다. 다음 선거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사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물론 내가 과학자와 정치가를 다른 종류의 ‘동물’이라고 한 것은 어느 한쪽을 폄훼하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다. 정치가는 과학적 판단을 기반으로 정치적 의지를 실행에 옮긴다. 과학의 발전 역시 정치적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2002~200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대만을 대표해 참석하기도 했는데.



 “당시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시아에 농업 개방을 요구했는데 아시아 농업은 기계적으로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미국과 달리 가족 통합, 사회 통합적인 면이 있어 농업을 개방하면 가족과 사회가 파괴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렇게 말하자 당시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바로 그 내용을 말하려고 했는데 전달이 안 돼 답답했는데 속이 시원하다고 한 적이 있다.”



 -지난해 한국의 김필립 교수가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를 국적 문제로 보는 의견이 있는데, 과학자의 국적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국적일 때 노벨상을 받을 확률이 더 높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 내가 상을 받을 때 미국 국적을 갖고 있었지만 별 도움이 안 됐다. 그러나 미국에서 연구한다는 것이 아주 좋은 기회가 됐다. 더 좋은 환경 속에서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많은 연구비와 뛰어난 연구자, 서로 자극을 주고 논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내가 포항공대에 갔을 때 들었던 농담이 있다. 포항공대 초대 총장인 김호길 교수(94년 작고)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에게 왜 그 많은 노벨상 수상자들 중 한국 사람이 없는지 항의하자, 하나님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골고루 나눠줬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입시와 SCI(Science Citation Index,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학술지에 논문 쓰느라 연구할 새가 없어 노벨상을 못 받는 거라고 대답했다는 거였다. 좋은 연구 환경을 만들고 학생들이 자랄 수 있게 하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지만 노벨상 수상에 대한 사회적 요구나 압력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 문제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던데.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기후변화다. 지구촌 각국의 국방비를 합치면 매년 1조 달러에 달한다. 우리 모두가 환경 재앙을 자국 영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국방비의 1%만 모으면 10억 달러가 되는데 그것을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앞으로는 기후변화 문제를 양자 간이 아니라 글로벌 수준에서 풀어가야 한다. 한국과 대만이 먼저 국방비의 1%를 기후변화에 투자하겠다고 하면 세계적인 문제에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내년 6월에는 국제과학연맹위원회(ICSU) 위원장으로서 브라질에서 열리는 ‘리우+20 회의’에 참석해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국제사회에 촉구할 계획이다. 한국 과학자들도 ICSU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기 바란다.”



 (※‘리우+20 회의’는 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던 세계 환경정상회의 20주년을 맞아 내년에 열리는 대규모 국제환경회의다.)



 -한국 과학기술 수준과 한국 출신 과학자들에 대해 평가한다면.



 “버클리에 있을 당시인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매우 뛰어난 한국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미국에 오기 전 잘 준비된 학생들 같았다. 하버드의 박홍근 교수가 아주 뛰어난 연구를 하고 있고, 서울대와 KAIST가 좋은 학생들을 길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20년 전 한국의 기초과학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그 후로 매우 눈부시게 발전했다. 미국 주요 대학에 가면 대만 교수들에 비해 한국계 교수가 매우 적었으나 그 후 상당히 늘어났다.”



타이베이=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아시안사이언스 캠프(ASC)=18~22세 아시아 과학도들이 매년 여름 일주일간 숙식을 함께하며 노벨상 수상자 등 유명 과학자의 강연을 듣고 토론을 벌이며 교류하는 행사다. 2007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처음 열렸으며 올해가 5회째다.



노벨화학상 뒤 미 시민권 반납, 고국으로 …



리위안저 박사는




1936년 대만 신츄(新竹)에서 태어났다. 고교시절 성적이 뛰어나 국립대만대 화학과에 무시험으로 입학했다. 국립대만대와 대만 국립칭화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6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74년 미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가 됐다. 86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뒤 94년 미국 시민권을 반납하고 대만중앙연구원장에 취임했다. 중앙연구원장은 총리격인 행정원장에 준하는 직책이다. 종신제였던 연구원장을 자기 손으로 임기제로 바꾼 뒤 2006년 연구원장에서 물러났다. 현재 특빙(特聘)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리 박사는 오는 10월 세계 최대 과학자 단체인 국제과학연맹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 for Science Union, ICSU) 위원장에 취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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