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 정년퇴임 … 광주지법 김진상 부장판사가 말하는 ‘향판의 애환’

중앙일보 2011.07.18 00:13 종합 18면 지면보기



“개인 양심이 법관의 양심? … 그건 착각입니다”



18일 정년 퇴임하는 김진상 부장판사가 ‘향판 24년’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작가 마동욱씨 제공]



정년을 마치고 퇴임하는 법관은 드물다. 지난 5월 퇴임한 이홍훈 대법관을 포함해 최근 5년간 6명에 불과하다. 대법관은 정년이 만 65세지만 판사는 63세다. 18일 광주지법 김진상(63·사법연수원 16기) 부장판사가 그 대열에 합류한다. 그는 1987년 40세 때 늦깎이로 판사가 된 후 줄곧 광주 지역에서만 근무한 지역법관, 이른바 ‘향판(鄕判)’이다. 지난 12일 광주지법 사무실에서 만난 김 부장판사는 구성진 남도 사투리로 24년 향판 생활의 애환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판사 하면서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독단 같아요. 헌법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한다고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양심에 대해 착각할 수가 있어요. 자기도 모르게 개인적인 양심을 내세울 수 있거든요. 법관의 양심은 개인적인 양심과 다릅니다. 상식에 바탕을 둔 보편타당성 있는 양심 이어야 해요.



 ◆지난 24년간 광주 인근에서만 근무=그래서 참 조심하고 살았습니다. 내가 알 만한 사람들의 재판이 배당되면 전부 회피 신청을 했어요. 사실 청탁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1994년인가, 후배가 사기죄로 구속됐다며 그 여동생이 찾아왔어요. 담당 판사님께 돈을 좀 전달해 줄 수 있느냐고 묻습디다. ‘이왕 징역 사는 오빠 계속 살게 합시다. 왜 다른 사람들까지 다 징역 살게 할라고 그라요’ 정색을 했소. … 야속했겠지요. 우리 집사람이 폭탄주를 잘 허요. 내가 ‘2차’를 절대 안 가니까 집에서 같이 마시려고 마누라한테 가르친 거지. 고향인 전남 장흥에서 지원장을 할 때 정말 불편합디다. 꼽발(까치발의 전라도 사투리) 압니까, 꼽발을 딛고 댕겼어요. 발소리도 안 나게. 술 한잔 맛있게 못했지요. 향판의 좋은 점? 아무래도 지역 형편을 잘 알지요. 같은 벌금 100만원이라고 해도 서울과 달리 여그(여기)는 한 달 생활비가 넘습니다. 그런 사정까지 세세히 고려하지요.



 ◆향판에 대한 안 좋은 시선=향판이 만약 변호사와 유착된다면 큰일이지요. 하지만 판사들은 변호사가 아니라 사건을 보고 재판합니다. 나하고 변호사가 친하니까 무죄?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법복 벗어부러야죠~. 판사 자격이 없는 거죠. 그래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니 ‘전관예우 방지법’이 생겼겠지요. 그 법 때문에 내가 1년 동안 광주지법 사건은 못 맡아요. 그런데 여그는 지법 사건이 대부분이거든. 지역 로펌에서 오라길래 나는 ‘그림자 변호사’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선임계에만 이름 안 넣고 사실상 사건 다 맡아서 처리하는 변호사 말이오. 그런 일 없다는 확답을 받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기로 했어요. 광주고법하고 순천·해남 같은 지원 사건밖에 못 맡으니 판사 월급보다 적게 벌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판사를 하겠느냐…. (한참 망설이다가) 참 고달팠어요. 매일 밤 야근하고 주말에도 법원에 일하러 나가니 빵점 남편, 빵점 아비였어요. 그렇지만 아주 행복했어요. 길을 걷고 밥을 먹을 때도 사건 생각을 하다가 ‘탁’ 하고 밝은 불이 들어오듯이 진상이 떠오를 때 희열을 느꼈어요. 저희 판사들끼리는 ‘득도’한다고 합니다. 껄껄. 공군 법무관인 맏아들(28·연수원 38기)도 내년 봄에 판사가 될 것 같아요. 참말 기쁩니다.



광주=구희령 기자



◆향판(鄕判)=서울과 지방을 순환 근무하지 않고 부산·대구·광주·대전고법 관할 4개 지역 중 한 지역에서만 근무하는 판사들을 가리킨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