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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길석산 <1>

중앙일보 2011.07.18 00:13 종합 33면 지면보기








중국 하북성(河北省) 창려현(昌黎縣) 갈석산(碣石山)에 올랐다. 이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해발 695m의 바위 많은 양산(陽山)이다. 여러 차례 이 산에 오른 것은 동북공정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漢)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낙랑군 수성현에 있었다는 산이다. 『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는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라는 기록이 있다. 갈석산이 있는 낙랑군 수성현이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이란 뜻이다. 낙랑군 수성현의 위치를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주류 사학은 물론 한국의 주류 사학까지 황해도 수안(遂安)으로 비정한다. 식민사학자인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가 일제시대 『사학잡지(史學雜誌)』에 『진나라 장성의 동쪽 끝 및 왕험성 고(秦長城東端及王險城考)』라는 논고에서 “낙랑군 수성현은 곧 지금의 수안”이라며 “진나라 장성의 동쪽 끝은 지금의 조선 황해도 수안의 경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 것이 지금껏 정설(定說)로 행세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황해도 수안에 갈석산이 없자 『동국여지승람』 수안군 산천(山川)조에 나오는 ‘요동산(遼東山)’을 갈석산이라고 우겼다. 중국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는 『중국역사지도집』(사회과학원)은 이에 따라 낙랑군 수성현을 평양 부근에 표기했다. 중국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학은 ‘침략주의’라는 한 란(卵)에서 나온 쌍둥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중국역사지도집』은 갈석산은 황해도가 아니라 하북성 창려현 부근에 표기해 놓았다. 이 한 가지 사실로 ‘한강 이북이 중국의 역사 강역이었다’는 중국 동북공정의 핵심 논리는 파탄났다.



 중국은 왜 갈석산을 황해도에 그려놓지 못했을까. 갈석산은 우리로 치면 설악산 정도 되는 유명한 산이어서 일반인도 그 허구성을 쉽게 눈치 채기 때문이다. 아홉 명의 황제가 올라서 구등황제산(九登皇帝山)으로도 불린다. 고조선을 침략하기 전 한무제(漢武帝), 고구려를 침략하기 전 수양제(隋煬帝)·당태종(唐太宗)이 모두 이 산에 올라 전의를 불태웠다. 갈석산이 황해도 수안이라면 이들은 고조선과 고구려를 공격하기 전에 남쪽 황해도를 먼저 방문해 올랐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찌 허망하지 않겠는가. 역사왜곡이란 이렇게 허망한 것이다. 더 허망한 것은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아직껏 정설로 떠받드는 우리 학계 일부의 역사 의식 빈곤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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