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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27> 공적개발원조(ODA)

중앙일보 2011.07.18 00:09 경제 14면 지면보기



해방 후 55년간 127억 달러 받은 한국 … 도움 주는 나라 된 첫 사례





“이집트는 최빈국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뤄낸 한국을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다.”(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최빈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한국은 모든 개발도상국의 희망이다.”(멀린다 게이츠 ‘게이츠 재단’ 공동대표) 한국은 국가 재건의 아이콘이다. 한국이 주목받는 이유는 원조 받은 나라(수원국)에서 원조 주는 나라(공여국)로 바뀐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공적개발원조(ODA)로 국제사회를 돕는 일. 한국의 커진 역량을 세계에 과시하고, 성숙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길이다.



권호 기자



국립의료원·KIST·경부고속도로 … 국제원조로 이룬 것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이 라오스 비엔티안주의 한 마을에서 어린이들에게 칫솔질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은 최근 단순히 돈을 주는 것이 아닌, 우리의 개발 경험을 개도국에 전수하는 방식의 원조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립의료원·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포항제철·금오공고· 경부고속도로-. 언뜻 아무 관계없어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국제사회의 대규모 원조로 세워지고 건설된,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익을 담당하는 인프라들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1962년부터 2003년까지 9억5400만 달러 규모의 249개 사업을 지원했고, 독일은 6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직업훈련 분야에서 2억5900만 달러를 제공했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이 같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이 45년부터 99년까지 받아들인 무상원조 규모는 139억7600만 달러다. 이 중 정부 간 협력을 통해 이뤄진 공적개발원조(ODA)는 127억7600만 달러. 시민단체(NGO)를 통해서도 12억 달러를 받았다. 차관 형태로 제공된 비양허성 원조는 무상원조의 두 배를 넘어선 311억9600만 달러였다.



국제사회의 원조는 해방과 동시에 시작됐다. 해방 직후부터 정부 수립까지 3년간은 미 군정청이 지원했다. 한국전쟁 이후엔 전시 긴급구호 원조와 폐허 복구 및 경제재건을 위한 원조가 이뤄졌다. 전쟁 이후 1960년까지 한국을 원조한 것은 유엔이었다.









한국·라오스 영농센터의 봉사단원이 라오스 농민들에게 국산 농기계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 [중앙포토]






1960년부터 원조의 패러다임이 변했다. ‘먹을거리’ 원조에서 개발을 위한 ‘씨앗’ 원조로 바뀌었다. 이른바 ‘개발연대’라고 지칭되는 이 시기에 정부는 1차부터 7차에 이르는 5개년 단위의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해 성장·개발 전략을 펴나갔다. ODA는 소중한 종잣돈이었다. 원조의 형태는 전기 공급부터 소비재나 자본재 공여, 기술과 자본 제공, 전문 용역, 교육, 자원봉사까지 다양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도 외교관이 되기 전인 75년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을 찾아 영어를 가르쳤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최고의 원조 공여국이었다. 미국이 국제기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한국에 지원한 금액만 55억4200만 달러에 이른다. 전체 한국이 받은 ODA 127억7600만 달러의 43%를 차지한다. 유엔 등을 통해 지원한 자금까지 포함하면 60억 달러를 넘어선다. 일본(50억5200만 달러)과 독일(8억3500만 달러)이 그 뒤를 이었다.



1976년 원조 공여 시작 … 이제는 지식 나눔이 핵심



우리나라는 76년 피지에 대한 무상자금 공여로 대외원조를 시작했다. 87년엔 대외경제협력기금이 설립돼 개도국에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특히 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설립해 무상자금협력과 기술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무상원조사업은 91년부터 97년까지 연평균 23.2% 증가율로 꾸준히 성장했다. 외환위기로 일시 감소한 무상원조사업은 2000년부터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특히 2002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재건 지원 등 무상지원 소요가 늘어남에 따라 규모가 대폭 확대됐다.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위상 강화로 이어졌다. 안성두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는 “최근 한국이 5억 달러 추가 지원 의사를 밝힌 뒤 아프간 각료들의 시선이 한층 부드러워졌다”며 “아프간이나 이라크 등 국가 재건기에 있는 나라들에 ODA의 효과는 직접적”이라고 말했다. 돈을 주는 것 외에도 미얀마나 아프간 등지엔 우리가 지어준 기술학교가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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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갈 길은 멀다. 한국은 2009년, ‘원조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의 ODA 규모(순지출 기준)는 11억7000억 달러로 23개 DAC 회원국 중 19위였다. 경제규모 대비 ODA 수준을 나타내는 ODA/GNI(국민총생산) 비율은 0.12%로 DAC 회원국 중 최하위인 23위다. 다만, 다른 회원국에 비해 빠른 증가세를 나타내면서 ODA/GNI 비율도 지속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지난해엔 전년 대비 25.7% 늘어 DAC 회원국 중 포르투갈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정부는 ODA/GNI 비율을 내년 0.15%, 2015년에는 0.25%(30억 달러)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 국가 차원의 ODA 발전전략인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을 수립했다. 특히 지난해 한국이 의장국을 맡은 G20 정상회의에선 ‘서울 개발 컨센서스’를 채택해 개발 이슈를 공론화했다.











올해엔 14억 달러(1조6600억원) 규모의 ODA를 확정했다. 경제·사회 인프라를 중심(70%)으로 추진하되,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을 지난해 91억원에서 170억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아시아(34.7%), 아프리카(14.2%), 중남미(7.6%), 중동·독립국가연합(7.4%), 오세아니아(0.7%) 순으로 배분된다.



양적 확대 못잖게 한국의 개발경험 노하우 전수는 지원 대상국들이 크게 관심을 보이는 분야다. 정부는 지원 대상국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비교 우위가 있는 개발협력 콘텐트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발전경험에 대한 개도국의 관심이 날로 커지면서 경제·보건의료·인적자원·행정·국토건설·농어업·산업에너지·환경 등 8대 분야의 개발 경험을 정리해 정책자문 등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도하는 ‘KSP(Knowledge Sharing Program)’로, 우리의 발전 경험을 바탕으로 개도국 상황에 맞춰 해법을 제공해주는 사업이다. 2004년 베트남과 우즈베키스탄을 대상으로 처음 시작됐다. 베트남은 “수출금융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정책자문에 따라 2006년 5월 베트남개발은행(VDB; Vietnam Development Bank)을 설치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수출 활성화를 위한 특별경제구역을 설립할 필요성이 있다”는 정책제안을 수용해 2008년 12월 나보이(Navoyi)에 경제특구를 지정했다. 이런 식으로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22개국을 대상으로 200여 개의 주제에 대한 정책자문을 했다. 지난해의 경우 17개 국가에 정책자문을 했고, 올해는 25~26개 나라로 확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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