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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나눔’과 ‘나뉨’, 한 획의 차이

중앙일보 2011.07.18 00:08 종합 35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울며 씨를 뿌리는 자, 기쁨으로 거둘 것이다.”(시편 126)



 수확의 부푼 꿈을 안고 희망의 씨앗을 파종하는데 왜 울어야 할까?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고달프게 보릿고개를 넘길지언정 종자 볍씨마저 몽땅 털어 밥을 지어 먹는 농부는 없다. 굶주려 우는 어린 것들을 뒤로한 채, 눈물을 흘리며 볍씨를 논바닥에 흩뿌릴 수밖에 없다. 비록 오늘 굶더라도, 내일을 위해.



 전면적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부잣집 아이든, 가난한 집 아이든 똑같이 먹이고 똑같이 학비를 대줘야 한다”는 보편적 복지와 “대학 문턱에도 가지 못하는 불우 청소년들의 고등학교 학비도 도와주지 못하는 터에, 부잣집 자제의 밥값과 대학 등록금까지 국민의 혈세(血稅)로 충당할 수 없다”는 선별적 복지의 싸움이다. 아이들 밥 한 끼, 젊은이들 학비를 놓고 다투는 모습이 민망하다.



 1:1.618의 황금분할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전체의 조화를 추구하는 균형미의 표본이다. 그렇지만 각자의 몫을 달리하는 황금비례보다는 모두의 몫이 똑같은 1:1의 정비례가, 배분적 정의보다는 평균적 정의가 ‘평등’에 더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평등은 더 이상 ‘빈자(貧者)의 정의’가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극심한 소득 불평등과 그로 인한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배분적·선별적 복지가 무엇보다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다. 특히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좌절감은 그 영혼에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내일을 위해,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 볍씨처럼 아껴야 할 나라의 종잣돈까지 까먹지 않는 한, 국가 재정에 의한 공공복지만으로는 양극화(兩極化)의 아픔을 다 치유하지 못한다. 민간복지가 확대돼야 하는 이유다.



 국가(state)보다 지역사회(society)가 먼저 성립한 미국은 민간복지의 선진국이다. 전체 민간복지 비용의 80%가 개인들의 자발적 기부금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비영리기구들이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복지의 사각지대(死角地帶)를 찾아 나눔을 실천한다. 부잣집 자녀를 돌보는 것은 사회복지의 몫이 아니다.



 ‘나눔’과 ‘나뉨’은 비록 글자 한 획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대양(大洋)의 양끝만큼이나 멀다. 각자의 것을 서로 나누면 어느덧 상생(相生)의 하나가 되어간다. 그러나 제것을 움켜쥐고 나누지 않으면 종내는 서로 나뉘어 상쟁(相爭)과 공멸(共滅)로 치달을 뿐이다.



 한국의 사회복지 체계는 대체로 공공부담 75%, 법정 민간부담 5%, 자발적 민간부담 20%로 구성돼 있는데, 자발적 민간부담의 80% 이상이 기업에서 나오고 개인들의 부담은 극히 미미하다. 미국의 경우와 정반대다. 워런 버핏이 멀쩡한 자기 재단을 제쳐두고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15억 달러는 회사 돈이 아니라 순수한 개인 주식이었다.



 나는 여기에 종교계의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 신도들에게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 이상으로 교회들 스스로가 먼저 나눔의 모범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익 추구를 삶의 보람으로 여기는 자산가들에게 나눔의 이타애(利他愛)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지 모르겠으나 종교야말로 ‘나눔과 섬김’의 바탕자리가 아니던가?



 예수는 “네 소유를 팔아 성전에 바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것이 그분의 명령이다(마가 10). 이 명령은 교회당 건축보다 훨씬 앞서는 실천적 신앙윤리다. 수천억원을 들여 호화 예배당을 지어 올리는 것은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으라”는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난다(신명기 27).



 제 지갑은 꼭꼭 닫아둔 채 나랏돈만 쏟아붓는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교육을 시리즈로 외쳐대는 것은 위선적이다. 우선 종교재단의 사학(私學)들부터 재단 적립금을 풀어 어려운 학생들의 등록금 지원에 나서주기 바란다. 그리고 부유한 대형 교회들이 막대한 헌금 곳간을 허물어 민간복지의 길을 앞장서서 열어가야 할 것이다.



 그늘진 소외계층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희망의 씨를 뿌리는 나눔의 손길은 사회통합이라는 소중한 수확을 기쁨으로 거두는 일일 뿐만 아니라 ‘정의·인도(正義·人道)와 동포애로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헌법정신의 구현이기도 하다(헌법 전문). 마침 어제가 제헌절이었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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