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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정재승 “기아차 K7, 뇌과학 접목해 이름 지었죠”

중앙일보 2011.07.16 00:35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과학 콘서트』로 과학 대중화 10년 … “학문 융합, 구호로 그쳐선 안된다”





미국 예일대 도서관을 헤집고 다닌 청년이 있었다. 1999년이었다. 그는 “보물단지를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온갖 저널이며 흥미로운 자료의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네이처』는 창간호부터 주르르 꽂혀 있었다. 130년 역사의 『사이언스』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선 못 보던 장관이었다. 청년은 지식과 지성의 세계를 맘껏 탐닉했다. 그 내공으로 한국에 돌아와 2001년 책을 썼다. 바로 『과학 콘서트』였다. 지금까지 47만 부 넘게 팔렸다. 인문·사회·예술과 일상생활에 녹아든 경이로운 과학 세계를 맛깔 난 필치로 담았다. 주인공은 KAIST 정재승(39·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다. 숱한 강연·저술을 통해 대중의 멘토로도 성장했다. 좀처럼 인터뷰를 안 하는 그를 12일 서울 서소문에서 만났다.



글=김준술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하모니의 과학 … K7 작명의 비밀 



●책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다. 의미 부여를 한다면.



“원래 과학자들은 대중적으로 글 쓸 기회를 얻기 힘들었다. 나는 운 좋게 KAIST 석사 1학년 때부터 과학 잡지에 아르바이트로 기고할 기회를 얻었다. 그때 사람들과 소통하는 맛을 알았다. 독자들이 『과학 콘서트』를 사랑해 주신 것도 결국 많은 분과의 공감, 소통, 연결을 뜻한다. 그게 보람이다. 콘서트 이름을 붙인 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이 함께 어우러질 때 사회현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였다. 하모니를 얘기한 것이다.”



●과학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도 많다.



“사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진 않았다. 과학은 어렵다. ‘알고 보면 쉬워’ 이렇게 말할 마음은 없다. 다만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수업 쉬는 시간에 친구들 앉혀 놓고, 마치 눈앞에서 상영되는 것처럼 장면을 묘사했다. 대중 과학서를 쓴 것도 그런 성격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 싶다. 경이로운 우주와 생명 법칙을 남에게 막 말하고 싶은…. 그런 흥분의 체험을 서로 나누고 싶었다.”



●본업은 학자인데. 학문적 성취는 어떤가.



“물리학 박사 학위를 얻고 뇌를 연구했다. 사람의 ‘의사결정’과 ‘선택’을 주로 연구한다. 그런 작업을 할 때 뇌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파악하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뇌 전체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RI)으로 찍으며 연구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이 게임을 벌일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과정을 보는 것이다. 응용 연구도 있다. 인간이 뇌로 결정한 내용을 로봇에게 전하면, 로봇이 행동을 취하는 프로젝트다.”



●영화 ‘트랜스포머’ 비슷한 얘긴데. 가능한가.



“자가 구성(self configuring) 로봇이란 게 있다. 필요 부품을 로봇 내부의 3차원 프린터로 설계해 만든 뒤 형체를 바꾸는 것이다. 예컨대 화성 탐사 로봇이 그렇다. 지구에서 보낼 땐 화성 실제 지형을 모른다. 로봇이 도착하면 설계 도면을 그려 부품을 제조한 뒤 몸체에 끼워서 활동한다. 문제는 이런 변형이 작은 덩치에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영화 트랜스포머의 로봇은 크기가 엄청나다. 자동차 몇 대를 움직이려면 엄청난 동력이 필요한데 전기로 돌리면 변신할 때 전선이 끊어질 테고…. 지금 과학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하하. 지금껏 세상에 나온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도 모두 100㎏ 미만이었다.”



●자동차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기아차 K7을 작명했다고 들었다.



“뇌에는 브랜드를 평가하는 영역이 있다. 작명 의뢰를 받아 이름을 정할 때 차 뒤에 알파벳 A에서 Z까지, 그리고 여러 숫자를 조합했다.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가장 구매욕을 자극하는 조합을 골랐다. K7에 대한 선호가 월등했다. 요즘엔 이렇게 구매 유발 브랜드를 만드는 데도 뇌과학이 쓰인다.”



●뇌과학과 비즈니스의 결합이라…. 최근 화두인 융합의 영역 아닌가.



“맞다. 나는 운이 되게 좋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물리학 전공자가 뇌를 연구한다면 굉장히 낯설고 생소하게 여겼다. 그런데 난 물리학 중 복잡계 현상을 공부했다. 자연히 여러 분야를 알아야 했다. 그걸 뇌와 연결하다 보니 인문·사회과학으로 관심이 미쳤다.”



●한국의 융합 현실은 어떤가.



“낙관적 상황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붐이다. 그러나 ‘구호’에 그친 느낌이다. 대학에 여러 학과가 있다고 치자. 그것들이 온갖 가능성으로 묶일 수 있어야 융합이다. 그러나 한두 개 전공을 묶어 학과를 만들고 융합이라고 할 때가 많다. 다만 옛날엔 융합을 얘기하면 양쪽에서 배척받는 분위기였다. 나처럼 물리학과 뇌과학을 동시에 하면 모두 인정해주지 않는 풍토가 있었다. 이젠 그런 편협함이 사라지고 융합의 장점을 인정하게 됐다. 그건 성과다.”



경기과학고의 책벌레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사유(思惟)의 밑천은 뭔가. 독서인가. 저서에 보면 광대한 참고문헌·저널이 소개돼 있는데.



“초·중학교 때까진 책에 빠지는 타입이 아니었다. 경기과학고 갔을 때 달라졌다. 기숙사 생활을 했다. 혼자 감당할 많은 시간이 주어졌다. 도서관에서 책 보는 취미가 생겼다. 남들은 수학·과학 수업에 매달렸는데, 하하. 고생도 많았다. 친구들은 주요 과목 선행학습으로 입학 전부터 단단히 준비를 해왔더라. 성적은 KAIST 입시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회복했다.”



●학교에선 과학을 왜 그리 어렵게 가르치나.



“중·고교 수업은 나한테도 어렵고 재미없었다. 하지만 그런 수업도 의미가 있다. 과학은 무조건 흥미롭고 신기하고 그런 게 아니다.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수식을 이해하고, 풀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너머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건 청소년기에 닦아 놓아야 한다. 나이 들면 힘들어진다. 다만 학교에선 왜 그런 수식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다양한 독서를 통해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다.”



●지금은 교수가 됐다. 불안한 청춘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



“나도 불안했던 20대를 보냈다. 그 무렵 동기들은 미래가 밝은 분야로 갔다. 물론 지금은 뇌가 중요하다고 많이 얘기하지만…. 당시엔 어디에 취직해야 하나 걱정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너무 재미있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뭔가를 찾았다고 자부했다. 매진할 수 있었다. 젊은이들한테도 비슷한 말을 한다. 너무 많은 선택 안에 발을 걸치지 말라고.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하나만 찾으라고. 그게 20대에 할 일이다. 그러면 당장은 직업이 불안해도 즐겁게 그 길을 갈 수 있다.”



●얼마 전 KAIST 학생들이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원래 학교 장점이 무학년 무학과 제도다. 여러 전공 들으며 과도 옮길 수 있고, 다른 전공 수업도 듣고. 그러다 보면 벤처도 일으키고, 특정 분야에 탁월한 학생들도 나온다. 일반 대학의 종합적 인간과는 다른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창의적 교육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몇 년간 시스템이 바뀌어 성적이 강조되고 영어 수업을 하고,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서남표 총장님이 굉장히 많은 걸 시도해 다른 학교들도 따라왔는데, 이젠 창의적 교육의 선봉장이 되셨으면 하는 생각이다.”



●다양한 이슈로 신문 칼럼도 많이 쓰는데, 정 교수가 보는 ‘시대정신’은 뭔가.



“그건 ‘균형’이다. 지금은 갈등의 시대다. 대립하고 싸우고. 사람들은 불안해 한다. 여기저기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주장한다. 예컨대 성장만을 외치거나 혹은 비현실적 분배만을 외친다. 학문이 융합되듯, 가치도 마찬가지다. ‘가치의 융합’ 시대가 와야 한다. 분배를 적절히 하면서 성장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물론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렵다고 쉬운 선택만 고집해선 안 된다.”



●그걸 위해선 서로 간 ‘신뢰’가 중요하겠다. 신뢰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쿨하게 사과하라』란 책도 냈는데.



“내 박사과정 학생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전 에델만 코리아 사장의 논문 주제다. 그와 함께 책을 썼다. 원래 잘못하고 틀렸을 때, 사과하지 않고 부정하는 게 나은 전략일 수 있다. 들키지만 않으면 말이다. 그러나 사회가 투명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는 어떻게 신뢰를 구축할 수 있을까. 중요한 이슈다. 진심어린 사과가 되레 ‘승자의 언어’가 된다는 것을 실험했다. 예컨대 회사가 잘못했다고 치자. 사과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쓴 뒤 사람들에게 읽힌다. 이후 시선 추적 장치(eye tracker) 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내용을 집중하고, 진심이라고 받아들이는지 살폈다. 이렇게 과학의 메스를 들이댈 것 같지 않은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융합이다.”



기업들, 양자역학 시대로 가야 



●TGIF(트위터·구글·아이폰·페이스북)의 소셜 문화가 화두인데. 인간 근본을 다루는 뇌과학자 입장에서 어떻게 보나.



“한국 사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곧 대선이다. 사람들은 정치적 얘기하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즐긴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완전히 붙여서 갖고 다니는 컴퓨터이자 네트워크 기기다. 그 플랫폼 안에 굉장히 많은 것을 넣을 수 있다. 점점 더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반면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는 사람들이 쉽게 열광했다 쉽게 지겨워할 수 있다. 다른 서비스들이 등장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관행도 많이 바뀔 텐데.



“지금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보자. 구글이니 트위터 창업자들 말이다. 대기업 창업주와는 특징이 다르다. 숫자에 민감하고, 과학기술에 능하고, 돈보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야심이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소비자들의 숨겨진 욕망을 발굴해 낸다. 뉴턴의 시대엔 포탄을 쏘면 궤적이 뻔히 보였다. 빨리 양자역학 시대로 가야 한다. 기업 입장에선 무수한 확률이 존재하고, 새로운 가능성이 팍팍 튀어 나오는 시대가 될 것이다. 거기서 퀀텀 점프(대약진)가 나온다.”



●앞으로 또 10년 뒤의 정재승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이상한 의사결정을 하는지, 인간이란 이런 존재다 하고 세상에 설명해 주고 싶다. 내 연구 결과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줬으면 좋겠다.”





 j칵테일 >> 로또에 200만원 투자해 보니 



정재승 교수는 2007년 매주 10만원어치씩 20번 로또를 했다. 유학 때 중국 식당에서 받은 ‘포춘 쿠키’(행운 번호가 들어 있는 과자)를 받은 경험 때문이었다. 쿠키의 숫자와 컴퓨터로 프로그램한 숫자 중에 어떤 게 더 잘 맞을지 궁금했다. 결과는 쿠키의 승리. 그는 비과학이 이긴 사실에 절망했다. 그러나 2년 뒤 우연히 로또가 다시 생각났다. 만약 그때까지 프로그램을 돌렸다면 어찌 됐을까 궁금했다. 이번엔 과학이 이겼다. 갈 길은 멀지만 꾸준히 탐구한다면, 과학이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줄 것이란 믿음을 다시 갖게 됐다.



이 얘기는 정 교수가 출간 10년을 맞아 최근 보완·출간한 『과학 콘서트』 증보판에 수록돼 있다. 그는





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과학자에겐 원죄가 있다. 세상은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자연은 망가졌고, 인간 삶은 황폐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학의 종말이 거론될지라도, 과학자들이 묵묵히 역할을 수행하면 ‘인간 얼굴’의 과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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