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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1. 청산별곡 (11)

중앙일보 2011.07.16 00:35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진도에서 밤을 만난 상선은 부두에 정박했다.


대장경 천년 특별기획 김종록 연재소설
“십자군 동방 원정대 막은 게 몽골군이랍니다”

“지밀 대사님, 내일 아침에 출항할 거니까 배에서 내려 객관에서 묵어도 됩니다.”



가네야마 강수가 우리 선실로 내려와 일렀다. 날이 흐려 야간항해가 어려운 참인데 마침 내려줄 화물도 있고 식수도 보충해야 한다고 했다.



“아침에는 샛바람이 불어 역풍을 맞지 않나요?”



지겨워하던 침상에서 벌떡 일어난 인보가 생글거렸다.



“이른 아침만 그렇지요. 흑조(黑潮:구로시오)를 타면 여기서 남해는 반나절 거리라오.”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넉넉하게 웃는 가네야마의 깊은 주름이 정겹다. 대마도 사람이지만 이 나이든 사내는 고려인의 정서를 지녔다. 바랑을 꾸리는 인보의 손길이 잽싸다. 어제 낮에 배에 오른 이래 줄곧 선실에서만 뒹굴었던 그였다. 잠을 자야 멀미를 안 한다며 밥 먹을 때 빼놓고는 줄곧 누워서 지냈다.



앞장서는 인보를 따라 배에서 내렸다. 국제항답게 특이한 배들과 다채로운 복식을 한 상인들이 눈에 띄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더 큰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국토의 최남단 땅끝마을과 가까운 이 섬에서 전란의 흔적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객관에서 방부터 잡았다. 끈적거리는 몸을 씻고 나니 가네야마 강수가 평상에 농주를 곁들인 저녁상을 받아놓고서 불렀다. 인도인 항해사가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밀 대사님, 곡차 한잔 하시지요.”



가네야마 강수는 우리 신분을 의식해서 술을 곡차라고 불렀다.



“좋지요. 곡차라고 이름 붙이면 술맛이 떨어집니다.”



나는 없는 호기를 부리며 술잔을 받아들었다. 단숨에 한 사발을 들이켰다.



“항해 도중 배에서 내려 마시는 술맛 참 좋지요?”



“게다가 여러 나라 여인들을 품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습죠. 고려 여인들은 세발낙지같이 착 달라붙는 맛이 일품입죠.”



“어허, 대사님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대진국 여인들은 어찌나 뻣뻣하고 콧대가 높던지….”



강수가 말려도 눈이 왕방울만 한 항해사는 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이미 천 년 전부터 밤바다에 등대를 세우고 밝혔다는 대진국이었다. 불현듯 항해사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혹시 경교를 아오?”



“경교라뇨?”



“대진국 사람들이 믿는 종교라오. 십자가를 모시는 특이한 종교요.”



나는 양손 검지를 교차시켜 십자가 형상을 해보였다.



“옳아, 그리스도교 말씀입죠. 예수를 믿는 종교죠. 불교에서 석가를 믿듯이.”



항해사가 쌈 싼 막회 안주를 씹느라 커다란 눈을 부라렸다.



“그리스도교? 경교와 같은 종굔가요? 예수는 이서, 혹은 이수일 테고.”



“그런 건 잘 모릅죠. 그리스도교를 믿는 대진국과 마호메트교를 믿는 대식국이 벌써 150년 넘게 끔찍한 십자군 전쟁을 해오고 있다오. 서쪽이나 동쪽이나 그 놈의 사람 잡는 전쟁 통에 장사꾼 노릇 해먹기 힘들단 말씀이오.”



항해사가 넌더리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소리 말게나. 이웃나라 전쟁 때 떼돈 버는 게 우리 같은 장사꾼이야. 전쟁은 참혹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필연일세.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얘기야.”



노회한 강수는 역시 크게 생각하고 멀리 보는 사람이었다.



“긍정적이라면?”



“바다의 태풍 같은 거요. 썩은 것들을 단번에 쓸어가고 세상을 통합해요. 예루살렘 성지를 뺏으려고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지만 원정군들과 장사꾼들은 동방의 물품들을 들여가요. 그래서 상업이 일어나고 도시가 발달해요.”



강수가 탁견을 펼쳤다.



“십자군 전쟁이라 하셨소?”



“십자가 표지를 앞세운 그리스도교도들이 원정대를 보내며 시작한 전쟁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입죠. 하여간 무서운 사람들이랍니다.”



나는 몽골군 투구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던 수기 스승의 말씀을 떠올렸다. 몽골군이 그 십자군일 리는 없었다. 그들은 왜 십자가를 앞세우며 전쟁을 하는 걸까. 종교란 본디 화해와 치유가 존재의 이유다. 그런데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생명을 무참히 도륙하는 그들을 어떤 신이 용납할까. 언제나 사람이 문제다.



찜찜하고 섬뜩한 것은 김승이라는 자가 그런 호전적인 종교의 표지를 거룩한 대장경 경판 안에 새겨 넣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아까 낮에 변산반도를 보면서부터 줄곧 김승에 대한 생각을 좀처럼 떨쳐낼 수가 없었다. 표지 하나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수평선과 수직선이 직각으로 교차하는 십자가다. 붓다의 성스러운 덕과 행운을 나타내는 만(卍)자 길상 안에도 그 십자가가 들어 있다. 구부러진 네 모서리만 떼어내면 바로 경교 십자가다. 황포 돛에도 십자가가 겹쳐 있었다. 그뿐인가. 표독스러운 여름 한낮의 태양을 쳐다보면 눈부신 십자가가 무수히 쏟아져 내렸다.



“그들에 대해 무엇이건 아는 대로 말해주시오.”



나는 인도인 항해사에게 보채듯 캐물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그가 아는 전부였다.



“그럼 이만! 우린 아주 급한 용무가 있습죠. 헤헤.”



항해사가 강수의 소매를 잡아 끌며 일어섰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대사님, 대진국의 십자군 동방 원정대를 막은 게 바로 몽골군이랍니다. 칭기즈칸이 살아있을 때는 십자군이 힘을 못 썼어요. 대식국 마호메트교는 칭기즈칸에게 빚진 겁니다. 동방이나 서방 사람들 피부 색깔과 종교 이름이 서로 다르다뿐이지 본질은 큰 차이가 없어요. 밖에서 답을 찾으려 들지 말고 대사님 안에서 찾아보세요. 이 늙은이가 세상을 몇 바퀴 돌아다녀보니까 모든 답이 내 안에 있더이다.”



늙은 강수가 남기고 간 말은 울림이 컸다. 그들이 끈적거리는 부둣가의 여름 밤공기를 가르며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밀 승정, 모기들한테 보시 그만 하시죠.”



손바닥으로 딱딱 소리 내 모기를 잡던 인보가 채근했다.



“먼저 들어가거라.”



“천지간에 함부로 굴러먹다 마주친 뱃놈들의 지청구에 너무 마음 쓰는 거 아뇨? 지금도 몸 파는 논다니 찾아가는 걸음 같더라고요.”



“인보야, 방울은 소리를 냄으로써 자신을 금 가게 만들고 초는 빛을 발함으로써 자신을 녹인다지? 나는 맑은 소리도 밝은 빛도 낼 줄 모르면서 이렇게 애만 태우고 있구나.”



“지밀 승정은 고려국 최고의 선지식 수기 도승통께서 인정하는 학승 아니오? 겸양은 지밀 승정과 안 어울려요. 그냥 평상시 하던 대로 아는 걸 맘껏 뽐내고 오만하게 굴어요.”



인보가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술도 깰 겸 해서 부둣가 마을 고샅을 터덕터덕 거닐었다. 낮게 구름이 깔린 하늘에는 별 하나 돋아나지 않았다. 먼 데서 개 짓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먼 땅끝마을 언저리까지 물길 따라 흘러내려와 하염없이 거닐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세간에서는 문약한 독서인이었고 출가해서는 치열하지 못한 승려였다. 부당한 무인세력을 쓸어내 버릴 기개도 없었을뿐더러 도를 깨치지 못하면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져버리겠다는 발심도 하지 못했다. 무인 천하에 문과급제가 부질없게 되자 머리를 깎고 승선과를 치렀다. 이른 나이에 합격해 수기 스승의 부름을 받았다. 이후로 대장도감에서 경전만 보며 지내온 먹물이었다.



사달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그리고 어깨뼈까지 부러뜨린 운명은 내가 주체하지 못할 힘으로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 캄캄한 정국과 내 자신의 인생항로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주제에 현장을 조사하고 남을 감찰하겠다고 거추없이 나섰다. 나는 밤이 이슥도록 부둣가 마을을 떠돌았다. 늙은 뱃사람의 충고대로 그리스도교, 십자가라는 용어에 집착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음 날 해류와 순풍을 탄 범선은 다도해 동쪽으로 미끄러져갔다. 근해에서 그물질을 하는 어부들의 노랫소리가 고즈넉하다. 야만적인 몽골군의 손아귀에서 멀리 떨어진 남해바다 일대는 마냥 평화로웠다.



“저기가 지리산을 감돌아 내려온 섬진강 하구라오. 오른편이 남해 가는개 포구고요.”



가네야마 강수가 인보와 나에게 내릴 준비를 하라고 했다. 자궁 같은 남해 가는개 포구가 몸을 열어 우리가 탄 범선을 받아들였다. 갯골 양쪽에 펼쳐진 그림 같은 어촌은 별천지였다.



“오다이시사마, 언젠간 꼭 다시 뵙기를!”



가네야마는 가는개 포구까지 배를 몰고 들어왔다. 그는 끝까지 극존칭을 아끼지 않았다.



“그대 바다의 현자여, 해수관음의 가피를!”



나는 가네야마 강수를 축복했다. 오다가다 만난 인연이지만 그에게 배운 게 많았다. 그의 말처럼 전쟁은 참혹하지만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생의 궁극적인 답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세상의 바다는 하나다. 그 바다를 떠돌면서 지혜롭게 늙어간 사람이 얻은 깨달음이었다.



바닷가에는 통나무들이 가득 쌓였다. 경판을 켜려고 말리는 벚나무 원목들이었다. 멀리 지리산에서 베어 뗏목을 엮어 들여온 것들이었다.



인보와 나는 며칠간 땅을 밟아보지 못한 말과 함께 걸어서 대사리 쪽으로 향했다. 호리병처럼 감싼 산 초입에 판당으로 보이는 높은 집들이 보였다. 뒷산에는 견고하게 쌓은 산성이 있었다. 후박나무 그늘 아래서 그물을 깁는 어부에게 물으니 대국산성(大國山城)이라 했다. 우리가 내린 포구도 관음포(觀音浦)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모두가 대장경을 판각하면서부터 생겨난 지명들이었다.



“오, 지밀 승정! 그간 사자의 코털만 건드리다 오셨구려.”



와룡관을 쓴 정안이 분사도감 판당 앞에서 껄껄껄 웃었다. 손님 맞는 언사치곤 고약했다. 정안의 귀밑머리와 구레나룻이야말로 백사자의 갈기처럼 희고 풍성했다. 집정 최이의 처남인 그는 대장경 판각불사에 막대한 사재를 쾌척한 세도가였다.



“쯧쯧! 밴댕이마냥 좁아터진 속 하고는. 오랜만에 보는 강화도 도읍지 사람이 너무 반갑다는 변방 사람의 인사법이오. 이제는 변죽 그만 울리고 사자의 심장을 움켜쥘 때도 됐다는 뜻이지.”



내 얼굴을 당신 맘대로 읽어내는 모양인데 기분이 언짢았다.



“소승 문안이오.”



“오늘은 이 늙은이한테 귀인이 둘씩이나 온 길일일세 그려. 인사하오. 이쪽은 일연 선사요. 둘이 좋은 짝패가 될 성싶소.”



건장한 체구에 네모진 입을 가진 승려 하나가 가까이 다가와 합장했다. 걸음은 소처럼 느린데 눈빛은 호랑이보다 매서웠다.



“정해(丁亥)년 승선과에 장원급제한 그 일연 스님!”



“18세에 승선과 차상을 차지한 천재 지밀!”



일찍이 전라도 장흥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선풍을 날린 일연을 여기서 본다. 20여 년 전 과거시험장에서 스친 이래 처음이었다.



“두 걸물이 이렇게 만났으니 이제부터 고려국 역사가 바뀔 참이오. 난 그저 장소만 제공한 거니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무죄요! 허허허허-.”



말치레가 거친 정안이 풍을 쳤다. 뒷말은 알 듯 모를 듯했다. 음양(陰陽)과 산술(算術)에 정통한 정안은 두뇌 회전이 빠른 당대의 지략가였다. 재물복도 많아서 하동 일대가 거의 그의 땅이었다. 그런 그가 모친 봉양을 핑계로 낙향한 것은 난세에 목숨 보전을 위해서였다. 강화도에 남아있었다면 무인들의 세력다툼에 벌써 희생되었을지도 모른다.



인보는 판당 한쪽 누각 마루에 예물과 간찰을 올려놓고 물러갔다. 다식이 나오고 정안이 몸소 팽주(烹主)가 되어 차를 우려냈다.



“가만 있어 봐라. 우리 일연 선사가 지밀 승정보다 법납, 속납 모두 몇 년씩 위일 게요.”



서로 나이를 확인하니 호랑이띠인 일연보다 말띠인 내가 네 살이나 아래였다.



“가인의 사귐에 그깟 연치 몇 년을 따지오리까. 오늘부터 우린 벗이오.”



선객 일연이 먼저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당치 않습니다. 사형으로 모시지요.”



나는 합장하며 머리를 숙였다.



“큰기러기가 구름을 타고 하늘 길에 다다르면 천하가 손바닥입니다.”



대도인의 포부가 담긴 일연의 말이었다.



“가짜 중 천지에서 오늘 진짜 중을 뵙소이다. 벗이 가하오.”



나도 격에 맞게 응수했다.



“과연 일연이고 지밀이로세!”



무릎을 친 정안이 일연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눈빛이 깊고 투명했다. 그런데 갑자기 차 주전자에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얼룩진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사람의 운명을 꿰뚫어본다는 소문이 자자한 위인이었다. 그 쾌걸 남아, 천하의 정안이 이런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다니.



“으하하하-.”



그때 정안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김종록 소설가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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