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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iz] 강승현, 스물네살에 모델·디자이너·사업가 …

중앙일보 2011.07.16 00:35 주말섹션 8면 지면보기



“돈보다 경험이 가장 큰 자산 될 것 ”
런던·파리·밀라노 오가는 세계적 모델
뉴욕서 패션 사업가로 당찬 도전





얼마 전 뉴욕 타임스의 메인(A) 섹션에 눈에 뜨이는 백화점 광고가 실렸다. 한 면의 절반을 차지한 블루밍데일 컬러 광고에 수퍼모델 강승현(24)씨가 등장한 것이다. 민소매 셔츠에 컬러풀한 진바지 차림의 강씨가 홀로 실린 이 광고는 3면에 걸쳐 이어졌다. 올여름 블루밍데일 백화점이 선택한 얼굴이 바로 세계 모델계에 ‘효니(Hyoni)’로 알려진 승현씨였다. “뉴욕 타임스요? 몰랐어요. 하도 광고를 많이 찍어서요.” 승현씨는 세계 50개국을 대표하는 모델들이 참가한 2008년 포드 세계 수퍼모델 대회에서 아시아계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대회 28년 사상 최초의 아시안 모델 우승자가 된 것. 이후로 효니는 수퍼모델 신디 크로퍼드, 나오미 캠벨, 지젤 번천이 활동한 패션의 4대 도시 뉴욕·런던·파리·밀라노의 런웨이를 종횡무진해 왔다.



효니는 뉴욕 패션위크의 마크제이컵스·필립림·DKNY에서 라코스테·베네통·빅토리아시크릿 등 글로벌 광고에 등장했으며, 최근엔 화장품 로레알 파리의 모델로 발탁됐다. 하지만 그녀는 ‘모델 효니’로만 머무르지 않았다. 2009년 말 소호에 빈티지 의류를 재디자인해 판매하는 ‘리본 프로세스(Reborn Process)’를 열고, 디자이너 겸 사업가로도 지구촌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스물네 살 나이에 모델-디자이너-사업가의 세 가지 삶을 디자인하고 있는 강승현씨를 뉴욕에서 만났다.



글=뉴욕중앙일보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사진=양영웅 기자











모델에서 디자이너·사업가로 



●사업은 잘 되나.



 “처음 내가 ‘리본 프로세스’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어디 잘 돼나 두고 보자’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델이었기 때문에 ‘틴 보그’ ‘Style.com’ 등에서 내주는 등 홍보도 잘 됐다. 특히 일본에선 많은 잡지에 기사가 나갔다. 옷이 독특한 게 큰 장점이며 고객들이 아이디어를 재미있어 한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포드 모델 대회에 왔을 때 알게 된 스타일리스트 윤애리씨와 사진·비디오 작가 이준엽(J)씨,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어느 날 의기투합해서 시작했다. 우리 모두 패션 디자인 전공자는 아니지만, 감각으로 승부하고 있다. 난 전부터 빈티지 룩을 좋아했다. 리본 프로세스는 빈티지 의류를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디자인해서 팔고 있다. 버튼을 바꾸는 것부터 팔, 등, 칼라 등을 잘라내고 덧붙이는 것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9월엔 우리의 컬렉션도 냈다. 앞으로 한 벌뿐인 옷(one of a kind), 우리의 컬렉션, 그리고 타 브랜드를 포괄하는 멀티 브랜드숍으로 만들고 싶다.”



●어디서 빈티지 의류를 사오나.



 “업스테이트 뉴욕이나 서부에 촬영 가면, LA나 샌디에이고 등지의 벼룩시장과 빈티지 스토어에서 쇼핑해 온다.”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도 달았다.



 “사실 디자이너가 매장부터 내는 경우는 드물다. 알렉산더 왕을 보라. 컬렉션을 몇 차례 한 후 부티크를 냈다. 우리는 반대다. 가게를 낸 후 이미지를 만들어서 라인을 낸 것이다. ‘포드 1등 모델’ ‘한국 모델’에서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단 진취적인 모델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모델 일과 가게 일로 시간이 없다. 생활에 지쳐서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치열하게 살고 싶다. 20대를 치열하게 살면, 30대엔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리본 프로세스 컬렉션은.



 “리본 프로세스의 이미지가 확고해진 후 라인을 낸 것이다. 지난해 워싱 느낌을 주는 프란넬을 소재로 한 체크 버튼다운 셔츠 열두 벌을 첫 컬렉션으로 선보인 후 미국·베를린·홍콩·일본 그리고 한국의 신세계 블루핏과 갤러리아 스티븐 알란 등지에 나갔다. 첫 시즌부터 반응이 좋았다. 우린 몇 벌을 파느냐보다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고객은 어떤 사람들인가.



 “스타들과 패션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찾아서 오는 매장이다. 가게를 열었을 때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느낌보다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서 오는 숨어 있는 장소라는 느낌을 원했다. 실제 뉴요커들은 자신들만 아는 공간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일본 톱모델인 오카모토 다오, 중국 톱모델인 류원, 수페이, 그리고 재클린 자블론스키, 시리 톨레로드 등 모델 친구들이 찾아오는 것도 늘 반가운 일이다. 오카모토는 ‘올 때마다 하나씩 구입하게 된다’며 투정 아닌 투정도 부린다. 한국에선 서인영·이연희·엄지원·한지혜·손담비·타이거 JK, 윤미래 등이 다녀갔다.”



●왜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나.



 “지금 이 나이 아니면 못 할 것 같았다. 모델의 수명은 길지 않다. 모델 친구들은 ‘빈티지 좋아하더니,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다’ ‘부럽다’고들 한다. 원래 꿈이 많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보다,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 모델 일을 통해 배운 것을 토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또,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살면서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 사람들은 늘 ‘무엇인가를 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 기회는 엄청나게 많이 온다. 무엇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놓치고 싶지 않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어려서부터 늘 무언가 하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 가만히 있는 걸 싫어한다. 날씨가 좋으면 어디라도 가야 한다. 지금 집에 기타와 키보드가 있다. 살면서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고 싶고, 그 경험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취적으로 살고 싶다.”



 큰 키 콤플렉스 소녀, 수퍼모델로 



●포드 모델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좋은 것 아닌가.



 “내가 하루아침에 모델이 된 것은 아니다. 전부터 모델을 하고 싶었고, 대학도 모델학과에 갔다. 그리고 나중에 모델이 된 케이스다.”



●어려서 모델이 꿈이었나.



 “엄마 영향을 받았다. 키가 크시며, 마르셨고, 예쁘시며, 옷도 세련되게 입으신다. 가정주부이셨지만, ‘보그’지 구독자이셔서 난 중학교 때 ‘보그 걸’을 정기구독하며 남들보다 빨리 접했다. 한국에 패션채널이 많고, 엄마는 한국의 패션모델에 대해 많이 알고 계셨다. 김동수 선생님 책을 읽고 동덕여대 모델학과에 대해 알게 돼 들어갔다.”











●어려서 큰 키 때문에 놀림도 당했겠다.



 “내 키(1m78㎝)는 콤플렉스였다. 지금보다 더 말랐고, 구부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 아이들이 내가 커서 ‘젓가락’ ‘꺽다리’ 등으로 놀려대지 않았나 싶다. 고등학교 때 반에서 이름으로는 1번, 키로는 마지막 번호였다. 한국에선 키가 커서, 뭘 하나 잘못해도 두드러져 보였다. 한국에선 ‘말라 비틀어졌다’고 하지 않나. 지금은 내 직업으로 과거의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장점이 됐다.”



●아시아 출신 모델로는 최초의 포드 모델 우승자였다. 왜 ‘강승현’이었을까.



 “합숙하면서 세계 50개국에서 온 모델들과 잘 사귀었다. 영어도 못하는데, 세계대회에 와서 1주일간 중국 모델과 같은 방에 배정됐다. 하지만 우리끼리만 다니면, ‘동양 애들이라 저런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중국 모델에게 말했다. ‘우리 여기서 즐겨보자’고. 난 세계 각국 모델들과 잘 사귀었다. 우승 못하더라도 한국의 이미지는 잘 심고 돌아가고 싶었다. 우승한 후 포드 측에서 들으니 그런 나의 성격이 점수를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



●우승 순간을 되돌이키면.



 “막상 내 이름이 불려지니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다음날 한인타운의 PC방에 가서 내 홈페이지를 보니 너무 많이 알려져서 당황했다. 뉴욕에 온 후 바로 뉴욕 컬렉션부터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영어학원에 등록했지만, 갈 시간이 없어 일하며 대화하며 배웠다.”



●영어 때문에 주눅이 들진 않았나.



 “원래 주눅들지 않는 성격이다. 다 똑같은 사람인데 주눅들 필요 없다. 사실 영어를 많이 할 필요도 없었다. 일할 때 쓰는 언어는 한정됐고, 실생활엔 문제 없다.”



●모델계에서 ‘효니’의 이미지는 베이비 페이스인 것 같다.



 “예전엔 사실 아시아계 모델에 불과했지만, 효니라는 ‘젊고(Young), 밝고, 건강한 캐릭터’를 잘 지켜나가고 싶다.”



●뉴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지난해 겨울인가 타임스스퀘어에 사진 걸렸을 때였다. ‘아메리칸 이글 아웃피터스’ 빌보드 걸렸을 때다. 모델 대회 참가하러 뉴욕에 처음 와서 1주일 합숙할 때 이틀 동안 뉴욕을 관광했는데, 제일 처음 간 곳이 타임스스퀘어였다. 처음 와서 가장 두근거렸던 장소에 내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오빠와 함께 보러 갔는데, 그동안의 뉴욕 생활이 스쳐 지나가며 느낌이 각별했다.”



●힘들었던 때는.



 “모든 모델이 힘들다. 정말 외로울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정처가 없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왜 내가 이렇게 살고 있나’ 하고 회의가 드는 순간이 있다. 얼마나 잘 이겨내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힘든 것 남에게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내 자신에게 물어보고 대답하는 성격이며, 혼자 공원에 가서 보내기도 한다.”



●외롭진 않나.



 “막연히 외롭다고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바쁜 것에 적응이 됐고, 지금은 모델 일과 사업을 둘 다 하면서 몸은 피곤하지만, 심적으로는 여유롭다. 재미난 것은 사업을 하면서 동갑 친구들은 없고, 한국에 나가면 열 살 이상 많은 바이어들을 만난다. 거시적으로는 자신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본다. 오빠가 유학 와 뉴저지에 살고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밥 먹으러 간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잔다. 스트레스 받으면 그냥 자버린다. 자고 일어나면 다 풀린다. 비행기 타도 잘 자고, 고민이 있으면 잘 잊는다.”



●다이어트도 하나.



 “한식을 좋아해서 밥을 잘 먹는다. 집에 밥통이 있고, 조금씩 자주 먹는 편이다. 한식은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안 찌는 것 같다. 거의 매일 일하고 활동량이 많다. 집에 가만히 있는 걸 안 좋아해서 많이 돌아다닌다. 물론 몸무게가 늘면, 다이어트도 한다. 친한 한국 모델 언니들은 거식증이 거의 없는데··· 외국 모델들은 진짜 잘 안 먹는 것 같다. 저녁에 샐러드를 주로 먹는 건 살이 잘 찌는 체질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요리를 하나.



 “김치찌개·된장찌개 등 기본적인 것은 할 줄 안다. 월남쌈, 랍스터도 사다 해먹는다. 엄마가 와서 뼛국을 끓여 30개 정도 냉동해놓고 가시면, 매일 하나씩 꺼내 먹는다. 내 속 자체가 하루에 한 번 한식을 먹어야 한다. 외국 나갈 때 햇반이나 3분 요리를 갖고 가서 호텔 룸서비스를 부탁해 해먹는다.”



 세계 아시아계 모델 광풍 



●최근 왜 아시아계를 비롯해 중국계 모델 광풍이 불까.



 “몇 년 전 보그지 아시안 이슈에서 아시안 모델 8명을 ‘팡’ 터트렸다. 그 후로 아메리칸 보그, 중국판 보그, WWD(여성패션신문) 커버 등에서 아시아계 모델 특집을 하면서 붐이 확 일었다. 중국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디자이너들이 많고, 그 시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어떤 캐스팅에 갔다가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물어서 ‘한국’이라 했더니 안 된 적이 있다. 기왕이면 중국 모델을 쓸 테니까.”



●아시아계 모델끼리 경쟁심은 없나.



 “사실 우리끼리 경쟁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나 광고업체 측에서 맞는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쟁의식이 별로 없다.”











●보그 아시안 이슈를 유명한 사진작가 스티븐 마이젤이 촬영했다.



 “마이젤은 모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사진가다.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아티스트들도 그와 작업하는 것을 역사의 한 페이지라 생각한다. 마이젤의 작업과정 자체가 예술이다. 패션쇼가 진행되는 총 30분 중 모델은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당당한 포즈를 취해 순간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사진은 영원히 남는다.”



●모델에 대한 오해는.



 “화려해 보이지만, 외로운 직업이다. 어떤 때는 한 달 동안 6개국을 다닌 적도 있다. 비행기로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도착 즉시 촬영하고··· 흔히 모델들은 거식증 있고, 약물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델이 나이가 어릴 때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서 외롭게 살면서 마약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일 것이다.”



●모델들에겐 파티가 따라다닐 텐데.



 “그럴 수밖에 없다. 패션계에서 주최하는 파티가 많다. 외국 사람들 예쁜 옷 입고 파티 가는 걸 좋아한다. 한국은 파티문화가 없지만, 미국은 파티문화다. 주인공은 모델이나 연예인·디자이너들이다. 그런데, 난 파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단지 술 먹고 놀기 위해 가는 파티는 잘 안 간다. 물론 아주 중요한 곳엔 차려입고 가지만. 술 마시고 흐트러진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돌아갈 곳은 한국 



●평소 패션 스타일은.



 “빈지티를 섞어 입는 걸 좋아한다. 톰보이 스타일이라고 할까.”



●지금 집의 옷장에는 어떤 옷이 있나.



 “다양하다. 모델들은 옷 선물을 많이 받는다. 엄마는 내가 모델 한 후 옷 복이 터졌다. 한국 갈 때마다 엄마 드릴 옷을 많이 싸가지고 간다. 어렸을 때 엄마 가방 몰래 갖고 다녔는데, 지금 한국 가면 엄마가 가방 두고 가라고 하신다. 하하!”



●현대인에게 패션은 무얼까.



 “패션은 실제 일상생활에 스며있다. 휴대전화만 해도 디자인이 예뻐야 하고, 식당도 인테리어가 좋아야 한다. 사람을 만날 때도 마음보다 얼굴과 ‘무엇을 입고 있느냐’가 먼저 보이기 마련이다.”



●단점은.



 “사람을 잘 기억 못 한다.”



●앞으로 계획은.



 “이제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매 시즌 수많은 새 모델이 나오고 사라지는 패션계이기 때문에 상당히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다. 앞으로는 여유를 갖고 내가 그동안 만들어온 모델로서의 나만의 이미지로 다른 모델들과 차별화해 조금 더 한국 모델의 위상을 알리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것이다. 내 수많은 꿈 중 하나가 여기서의 경험을 통해 한국의 모델들이 진출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돌아가서 나중에 대학교도 졸업할 예정이다. 뉴욕이 싫은 것은 아니다. 한국은 내가 스물한 살 때까지 산 곳이며 내가 돌아갈 곳이다. 외국에서 일하는 것은 좋지만, 이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서 터전을 잡고 싶다.”



●뉴욕에 정착할 수도 있을 텐데.



 “한국을 좋아한다. 포드 모델 대회에서 우승한 후부터 가슴 안에 태극기를 안고 다니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일할 때나 캐스팅 다닐 때 사람들을 만날 때 ‘코리안 모델’이라는 걸 안다. 금메달을 따러 온 대표선수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가수 비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며 한국을 선양했듯이, 나도 한국을 대표해서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싶다. 강승현을 통해 모델의 이미지를 바꿨다고 생각한다면 좋겠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많다.”



●미국엔 멋진 남자 모델도 많지 않나.



 “미국인들은 내겐 인형으로 보인다. 백인 남자 모델들 보면 진짜 인형처럼 생겼고, 별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난 지극히 한국사람인 것 같다.”



●세계적인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은.



 “영어가 큰 장벽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언어는 마지막 조건이다. 중국 모델들의 도전정신은 놀랍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키가 크지 않아도 그들은 정말 당당하다. 과감하게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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