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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양준혁 “난 못 배웠다 … 인생, 야구에서 깨쳤다”

중앙일보 2011.07.16 00:35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야구재단 이사장, 방송 해설자, 강사로 변신한 ‘양신’





신은 원래 1인자다. 프로야구 판에서 양신(梁神)이라 불린 사내가 있다. 숱한 기록을 보유한 양준혁(42)의 별명이다. 하지만 그는 2인자를 자처한다. “그랬기에 영광이 따랐다”고 자부한다. 은퇴 1년이 다 되지만 그라운드는 되레 더 넓어졌다. 야구재단 이사장에 경기 해설자, 인기 강사, 방송 출연으로 연타석 안타다. 알고 보면 그는 ‘일류 2인자’였다. 그 역설적 단어에 양준혁의 남다른 인생 승부타가 녹아 있다. 



글=김준술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사람 키우고 싶다



양준혁은 능청맞고 입심이 좋다. 연예 프로에서도 톡톡히 끼를 발휘한다. 그렇다고 가벼울 거라 여기면 오산이다. 지난 7일 만난 그는 정글에서 깨친 묵직한 ‘성공 철학’을 쏟아냈다.



●은퇴하더니 더 바쁜 것 같다.



“쉰 날이 며칠 없다. 지난해 9월 19일 은퇴하고 다음날부터 방송 활동을 했으니. 그간 닷새쯤 쉬었을까? 선수 때는 그래도 월요일날 쉬었는데. 지금 방송 출연하고, 해설하고, 강연 나가고, 최근엔 이동통신회사의 트위터 자키까지 맡았다. 또 야구재단을 세워 이사장으로 있으니 다섯 가지 일을 하는 것이다.”



●야구와의 결별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맞다. 어떻게 보면 사랑하는 애인하고 헤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은퇴 뒤 중간에 쉬었으면 굉장히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다. 많은 일을 하게 돼 좋았다. 사실 선수 때보다 더 힘들다. 하지만 몸이 힘든 게 대수인가.”



●재단 설립은 낯선 얘기 같다.



“실은 은퇴할 때 구단에선 유학을 권했다. 나중에 코치며 감독을 할 수 있게. 그러나 나의 가장 큰 그림은 야구재단 설립이었다. 은퇴 직후인 10월 양준혁 청소년 야구대회를 열었다. 내 이름을 걸고서. 선수가 아닌 일반 학생들 60개 팀을 구성해 게임을 치렀다. 콩 볶듯 허겁지겁한 게 아니다. 2년간 구상했다. 그런 연장선에서 올 6월 재단도 출범한 거고. 야구대회는 물론 캠프도 열고, 장학금도 줄 거다.”



●원래 애들한테 애정이 많나.



“우리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너무 공부만 한다. 학교에서 못 가르치는 걸 야구를 통해 일러주고 싶다. 사회의 리더로 크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나. 물론 이승엽·박찬호 같은 전문 선수도 키우고 싶다. 하지만 내 포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같은 지도자들을 길러내는 것이다.”



●야구가 얼마나 도움이 되나.



“선수 출신들이 사회 나가면 잘 적응한다. 야구 자체에 인생이 담겨 있다. 규칙도 있고, 생각이 필요하고, 때로는 자기가 죽으며 팀원을 진루시키는 것도 배운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게 많다.”



●진지하게 고민한 것 같다.



“나는 배운 게 별로 없다. 중학교 들어간 뒤로는 이른바 ‘엘리트 야구’를 했다. 야구만 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 수업에 들어가도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한테 지식은 없는 거다. 공부는 전혀 한 게 없기 때문에…. 하지만 야구를 통해 인생이나 이런 건 누구 못잖게 배웠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학식에 야구가 가르쳐 준 인생 노하우까지 겸비하면 명품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처럼 즐기면서 그렇게 야구를 해야 한다.”



●일본에서 뭔가 충격이라도 받은 건가.



“이번에 동일본 대지진 때 질서정연한 모습 봤잖나. 야구도 거기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도쿄대와 와세다대에서 열린 청소년 야구 클리닉에 참여했다. 꼬맹이들이 철저하게 예의를 지켜가며 경기하더라. 종료 뒤엔 밀대로 청소 다 하고, 운동장에 경례까지 하더라. 놀랐다. 우리는 자유분방한 측면이 많다. 맞벌이 저출산으로 애들 더 귀하게 키우려는 부모도 많고. 사실 우리나라 애들이 놀 줄 모른다. 매일 방구석에서 인터넷만 한다. 그러니 생각이 음지화된다. 문화를 바꿔보고 싶다. 공부하고 야구도 즐기는.”















나의 자랑은 ‘볼넷 왕(王)’



●그렇게 야구 좋아하는데 쉽게 헤어졌나.



“아까 사랑하는 여인과 같다고 했다. 일부러 정을 뗐다. 안 그러면 얼마나 보고 싶고, 찾겠나. 의도적으로 공을 쳐다보지 않았다. 참, 힘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야구 중계는 팬의 입장에서 하는 것이니 조금 다르고. 아무튼 야구에선 완전히 손 털었다.”



●구장을 떠났지만 기록은 남는다. 뭐가 제일 애착이 가나.



“프로야구 18년 생활에서 통산 최다안타(2318개), 통산 최다홈런(351개) 등을 수립했다.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사구(볼넷·1380개)다. 타자라면 누구나 다 때리고 싶어한다. 나라고 왜 욕심이 없겠나. 특히 득점 찬스 때면 더 그렇다. 하지만 참아야 할 순간도 많았다. 진루가 더 중요하니까. 뒤 타자에 이승엽 같은 선수들이 있으면 일단 내가 나가야 다득점을 한다. 사사구로 베이스를 밟는 건 팀을 위한 일이었다. 그건 나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살리는 길이었다.”



●쉽지 않은 일인데. 자기 몸값이 중요한 프로의 세계가 아닌가.



“내가 조연 역할을 한 거다. 알아서 말이다. 이승엽처럼 뛰어난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때는 그게 자존심이 참 상한다. 2인자라는 자리가 얼마나 서럽나. 특히 한국은 톱만 바라보는 문화가 있다. 뒤에서 아무리 찬스 만들고, 밥상 차려봐야 안 알아준다.”



●때리고 싶은 본능을 어떻게 눌렀나.



“나도 매번 크게 스윙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승엽 선수가 더 큰 선수로 성장하고 빛나면 다른 팀원들도 덕을 본다. 승엽이 올 때까진 내가 연봉 킹이었고 1억50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승엽이가 잘해서 3억 받으니 나머지 선수도 쉽게 연봉이 오르더라. 그런 원리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승엽이를 더 밀어준 거다.”



●이승엽을 질시하진 않았나.



“당연히 질투가 난다. 나도 사람인데. 하지만 기꺼이 2인자 역할을 자처했다. 팀에는 ‘중심 인물’이란 게 있다. 그를 위주로 돌아가야 된다. 다만 지도자가 있으면 그걸 빛나게 해주는 건 참모 아닌가. 지도자는 자기 혼자론 안 된다. 밥상도 혼자 안 서 있다. 네 다리가 받쳐줘야 비로소 튼튼하게 설 수 있다.”



●통산으론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연도별로는 타격왕이 주특기였다. ‘양대포’라는 별명엔 홈런이 더 어울리는데.



“홈런왕에 도전할까 해마다 고민도 많았다. 왜 그런 욕심이 없겠나. 내가 타격왕을 네 번 차지했는데 MVP는 모두 홈런왕한테 빼앗겼다. 우리나라는 한 방을 더 쳐준다. 그렇지만 나는 한걸음 한걸음 나가는, 그런 스타일을 추구했다.”



●겉으론 호방한 성격 같은데. 원래 그렇게 침착하고 생각을 많이 하나.



“실은 내 자신을 참 잘 들여다 본다. 뭘 할 때마다 ‘이건 아냐’ ‘저렇게 해야 돼’ 따진다. 말하자면 내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는 것이다. 난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다. 스스로 잘나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니 하루하루 고민을 무지 많이 할 수밖에. 1구 1구에 모든 걸 쏟아붓고 그랬다. 내일부터 잘해야지, 이런 건 없다. 오로지 그 한 게임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최배달과 만세 타법의 비밀



●인생의 위기도 있었을 텐데.



“2002년 슬럼프가 기억난다. 아주 심각한 위기였다. 당시엔 30대 중반 되면 은퇴할 때였다. 나도 10년차였다. 그간 3할대를 아홉 번 쳤다. 그러다 2002년에 한 번 놓쳤다. 사람인지라 한 해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2년 연속으로 2할대에 놓이면 변명이 안 통한다. ‘나이가 들었네’ ‘양준혁이 갔네’ 이런 비아냥이 나올 게 뻔했다. 그때 ‘타격 폼을 바꿔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랜 세월 굳은 게 금세 고쳐지나.



“결심하고선 하와이 캠프에 가서 처음 시도했다. 당연히 안 됐다. 수백 번 이유를 따져보고 실패를 거듭했다. 나는 그 실패를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어느 날 감이 딱 왔다. 우연히 10년 전 신인 때의 타격 사진을 봤다. 공을 치고선 만세 부르듯 했다. ‘그래 이거야’ 쾌감이 일었다. 그걸 면밀히 다듬어 탄생시킨 게 만세 타법이다. 타격 뒤 한 팔을 놓으며 투수 쪽으로 던져 주며, 체중을 실어 치는 것이다. 난 스스로에게 묻고 해답을 찾았다. 의사가 돼서 처방을 내린 것이다.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극진 가라테 창시자 최배달에게서도 한 수 배웠다고 들었다.



“만세 타법을 만들 때 응용한 게 있다. 최 배달 만화를 봤는데 격파를 할 때 치고 들어가는 순간보다, 때리고 나서 돌아올 때 더 빠르게 빼는 내용이 있었다. 검도로 치면 끊어서 친 뒤 빨리 나오는 것 같은…. 만세 타법에도 그런 노하우가 녹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똥폼’이라고 혹평도 했다.



“그 효과를 잘 모르는 것이다. 자기들 볼 때는 우스우니 혹평을 한다. 다른 선수들은 따라 하면 안 된다는 말도 하고. 그러나 생각해 봐라. 내가 3할대를 그렇게 많이 쳤으면, 그분들보다 더 잘 아는 것 아닌가. 겉모습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면 안 된다. 잘할 때면 분명 그 이유가 있다.”



●만세 타법에서 얻은 교훈은 뭔가.



“야구에도 획일화된 답은 없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노하우와 비법만이 있을 뿐이다. 사회의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그걸 찾아내야 한다. 자기 몸에 맞는 게 정답이다. 물론 타법에서도 꼭 지켜야 할 기본 수칙은 있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은 자기 역량에 달려 있다.”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다. 단무지 장사부터 파출부·식당일까지. 가난은 양준혁에게 어떤 것이었나.



“나한테는 강해질 수 있었던 동기가 됐다. ‘무조건 집안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머니가 워낙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사실 야구가 좋아서 한 게 아니다. 집을 잘살게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다 이겨내야 한다고 악물었다.”



●가난했는데 어려서부터 체격이 좋았나. 지금 1m88㎝, 95㎏의 거구인데.



“어릴 때부터 몸집이 크게 나쁜 건 아니었다. 다만 워낙 못 먹어서 코피도 많이 흘리고 약했다. 중학교 때 많이 컸다. 2학년 때부터 1년에 15㎝씩 크더라.”



●몸만 보면 두주불사일 것 같다.



“술은 한잔 먹으면 얼굴이 벌개진다. 그러면 추하게 보이지 않나. 먹으면 잘 먹을 수 있지만, 일부러 안 먹겠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술은 잘 안 한다. 술 잘 먹었으면 벌써 7~8년 전에 은퇴했을 것이다.”



●15세에 심장병 진단을 받았다는데 선수 생활을 오래 했다.



“그래서 담배를 멀리한다. 심장병 영향이 아직도 조금 있는지, 갑자기 찬 것을 먹으면 심장이 벌떡벌떡 뛴다.”



●강의도 많이 하는데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꿈이 있으면 묵묵하게 10년, 20년 밀고 나가라는 것이다. 평범한 소리 같지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 12년이 걸렸다.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나. 기계랑 싸우면 모를까. 야구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고.”



●앞으로의 꿈은. 지금은 인생 2루를 돌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는데. 양준혁의 홈은 어떤 모습인가.



“내 이름의 야구장과 야구학교를 짓고 싶다. 내 삶에서 홈을 밟는 순간은, 내가 키운 제자들이 대통령도 되고 시장도 되는 그런 날이다. 진짜 프로는 후계자를 키우는 사람이다.”





j칵테일 >>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꼭 건네는 질문이 있다. 기자도 그랬다.



Q. 노총각인데 결혼은 언제 합니까. 



A. 때가 되면 가야죠. 이상형도 따로 없어요. 그냥 마음 잘 맞고 그러면 되죠, 뭐.



Q. 그래도 많이 늦었는데. 



A. 사실 장가니 이런 얘기 안 좋아해요. 계속 그 얘길 들으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요. 인사치레로 다들 물어보니. 왠지 짜증나는 거죠. 그래서 대답도 잘 안 해요.











  인터뷰가 끝나고 촬영을 할 때 사진기자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급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양준혁의 내심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최근 그는 『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중앙북스·사진)이란 책을 냈다. 흥미진진한 야구 얘기로 ‘도전과 성취’란 화두를 맛깔나게 풀어놓았다.



  마침 에필로그가 결혼 얘기였다. 책에서 그는 혼자 회를 뜰 정도의 요리 실력에, 깔끔 독신남으로 살아온 삶이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오로지 스윙을 하고 1루를 향해 전력질주하던 쾌감에 결혼은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j 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그라운드가 사랑하는 여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양준혁은 그곳을 떠났다. 그러곤 책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다. “인연이 닿는 누군가, 선하게 예쁜 그녀를 만난다면 당장 전력질주할 준비가 돼 있다.” 괴물 별명까지 있는 양준혁도 천상 남자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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