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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워싱턴 정쟁에 속 터지는 세계 경제

중앙일보 2011.07.16 00:17 종합 2면 지면보기






정경민
뉴욕 특파원




13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대화와 타협의 ‘달인’이라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와의 협상장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오바마는 “이 문제로 대통령직을 끝내버릴 수도 있지만 나는 양보하지 않을 것”이란 험악한 말까지 입에 담았다.



 미국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표면적 이유는 재정적자를 어떻게 줄이느냐를 둘러싼 이견 때문이다. 공화당은 오바마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사회보장비를 확 깎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바마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건강보험개혁법을 무력화하자는 계산에서다. 이에 맞서 오바마는 2013년부터 부자 감세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양쪽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이유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서다. 여기까진 어디까지나 미 국내 문제다. 그런데 공화당이 재정적자 감축 이슈를 미 정부의 빚 한도 증액과 연계시키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미국은 정부가 낼 수 있는 빚 한도를 의회가 정하게 하는 독특한 제도를 두고 있다. 정부가 마구잡이로 빚을 늘리지 못하게 의회가 견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위기 때마다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의 발목까지 잡고 있다.



 현재 14조3000억 달러인 한도는 지난달 이미 다 찼다. 2008년 금융위기 뒤 경기부양책과 월가 은행 및 ‘빅3’ 자동차회사에 구제금융으로 펑펑 쓴 결과다. 한도를 늘려주지 않으면 미 정부는 차입을 할 수 없게 된다. 각종 편법으로 버틸 수 있는 시한이 다음달 2일이다.



 이를 갚지 못하면 미 국채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가 된다. 중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3조 달러에 이르는 중국 외환보유액 중 최소 1조1525억 달러는 미국 국채다. 이날 백악관 소동에 중국이 즉각 “미국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책임 있는 정책을 취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건 이 때문이다. 세계의 안전자산이라는 미 국채와 달러의 신뢰가 무너지면 국제금융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국제금융가에선 볼멘소리도 나온다. 대선을 의식한 미국 여야의 정쟁에 국제금융시장이 볼모로 잡혔다는 것이다. 다행히 오바마와 야당 지도부는 14일 다시 머리를 맞댔다. 막판 극적인 타협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오바마는 물론 미국 정치권이 기억해둬야 할 게 있다. 국내 정쟁으로 시간을 끌면 끌수록 미 국채와 달러의 신뢰엔 더 심각한 균열이 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결국 미국의 리더십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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