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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5개년 계획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1.07.16 00:15 종합 35면 지면보기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원래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면서 ‘5개년 계획’을 처음 도입한 것은 일본이 세운 만주국 괴뢰정부로 보인다. 중일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만주의 산업화를 꾀하면서 당시 일본의 산업청 차장이었던 기시 노부스케가 1939년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 시행했던 때다. 전후 일본은 이케다 내각에서 ‘소득배가 계획’ 등을 추진한 적은 있어도 5개년 계획 같은 것을 세워 추진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1962년 시작된 제1차 계획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작성, 시행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중요한 동력으로 삼았다. 제4차 계획부터는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민주화 이후 특히 1992년 시작된 제7차 계획은 김영삼 정부가 신경제계획을 세워 추진하면서 흐지부지돼 버렸다.



 지금 와서 다시 ‘5개년 계획’이란 말을 꺼내면 구시대의 낡은 단어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새삼스레 필요성이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으로 된 것이 1987년 개헌 이후다. 5년이란 시간은 국정실험과 시행착오를 거듭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 아니다.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첫째, 지도자가 뚜렷한 비전을 가져야 하고, 둘째 그 비전이 시대적 요구와 맞아떨어져야 하며, 셋째 이를 구체적 정책으로 재단해낼 수 있는 유능한 참모진을 가져야 하며, 넷째 이를 밀어붙일 수 있는 충분한 정치적 세(勢)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민주화 이후 정부들에서 이 네 조건을 모두 갖춘 정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결과 국정은 자주 표류해 왔다.



 5개년 계획을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을 임기 중 5년간 어떻게 구체적 정책으로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 미리 제시하고, 이를 소속 정당 내에서 충분한 합의를 거친 후 국민의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 외교, 교육, 사회복지, 통일안보, 정치제도 개편 등 국가운영 전반에 대한 철학과 국정기조,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재임 중 일관성 있게 이를 실행해 나갈 수 있다. 정부의 규모를 임기 중 어느 정도로 늘리거나 혹은 줄이겠다든지, 주요 국책사업으로는 어떤 것을 추진하며, 개헌을 하면 언제 추진하고, 복지확대는 어느 계층을 주 대상으로 하며, 그 재원은 어떻게 동원하겠다든지 등을 미리 제시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집권 후 국정의 혼선을 줄이고 정책 추진의 힘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제도의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는 국회의 권한이 크고 광범위한 데 반해 정당의 정책기능은 약하고 여당과 대통령의 제도적 협력기반이 취약한 것이라 보여진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당 총재가 되어 공천권을 행사하고 당 운영비를 지원해 여당이 청와대에 종속적이 되었고, 다수당이 되면 자연히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특히 3김시대가 종식되면서 이러한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는 크게 달라졌다. 우리 헌법은 양자 간의 어떠한 제도적 협력 고리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서로 공유하는 가치와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국정은 표류하게 된다. 따라서 집권 후 계획은 후보 개인의 사조직을 넘어 소속 정당 내에서 준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후보와 소속 정당이 이를 공유하고 구체적 정책과제를 함께 개발하고 제시하지 않으면 집권 후 정책 추진에 대한 정부·여당의 긴밀한 협력과 공동책임 의식을 가지기 어렵다.



 과거 5개년 계획은 시작연도의 2년 전에 이미 실무적인 작업이 끝났다. 물론 5년간의 일을 미리 다 예측할 수 없고 대내외 상황 변화에 따라 계획이 수정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경부고속도로나 중화학공업 건설 등은 5개년 계획에 포함돼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정권 내 공감대와 추진력을 갖게 하고 국민들에게 향후 정책방향에 대한 예측성을 갖게 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이제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 대선주자들은 5년간 이 나라를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 내겠다는 집권 후 5개년 계획을 지금쯤 제시해도 이르다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를 당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함께 논의하고 당내에서 검증받고 공감대를 넓혀 당의 확실한 지지를 받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그나마 집권 후 국정 표류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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