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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틀에 갇힌 소재·형식 싫다면 … 통통 튀는 단편 9편 모음집

중앙일보 2011.07.16 00:12 종합 25면 지면보기








누가 말렝을 죽였는가

안성호 지음, 문학과지성사

247쪽, 1만원




엉뚱하고 알쏭달쏭한 내용의 단편 9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문장은 짧고 평이한 편이다. 크게 어려운 이야기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하지만 전개방향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사건들이 엉뚱하게 튀기 일쑤다. 사건들이 인과관계로 묶이거나 있을 법한 일, 즉 개연성(蓋然性)의 비좁은 테두리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작품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현실을 훌쩍 뛰어넘어 환상적인 설정으로 흐르는 작품이 여럿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첫 머리에 실린 ‘검은 물고기의 밤’은 집단적인 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한 두 가족의 이야기다. 어느 날 ‘나’의 집에 괴한이 침입한다. 강도의 돈가방은 뜻밖에도 ‘3-4반 19번’이라는 글씨가 적힌 초등학생 신발주머니. 하지만 강도는 정작 돈 터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 역기로 형의 허리를 부숴놓고는 도망간다. 소설 말미에 드러나는 진실은 괴한이 아내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침입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활어 운반차가 연루된 교통사고에서 아내를 잃었다. 당시 넙치가 아스팔트 바닥을 덮었었다. 과거를 잊어버린 나의 가족이 이제는 친구가 된 괴한(괴한 역시 과거를 기억 못한다!)의 집을 방문했을 때 신발주머니의 주인인 꼬마 아이가 손님 접대를 위해 냉장고 문을 연다. 히죽, 하는 웃음과 함께. 냉장고에서 쏟아진 건 바로 시꺼먼 넙치들이다. 묘하게 섬뜩한 장면이다.



 ‘돼지가 사라졌다’와 ‘쥐’, ‘텔레비전’ 등은 그나마 평이한 작품이다. 표제작 ‘누가 말렝을 죽였는가’나 ‘대추나무에 걸린 개’ 같은 작품은 메시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을 우의적(寓意的)으로 빗댄 작품이라는 점이 짐작되는 정도다. 하지만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핵심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가령 ‘누가 말렝을…’에서 한국 여성 소라의 남편 말렝이 미친 이유는 다음 문장쯤으로 압축된다. ‘코끼리만 하던 삶이 토마토 씨앗만 하게 됐다면 그 고통을 이해하겠냐’는. 이런 전언(傳言) 또한 곱씹어봐야 할 것이긴 하다. 알쏭달쏭 예측 불가능한 의외성이 이 책의 매력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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