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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그리스 문명이 동양과 관계없다? 그건 서구인들의 독선

중앙일보 2011.07.16 00:11 종합 25면 지면보기








문명 이야기

윌 듀란트 지음

왕수민 등 옮김

전 11권 22책

각 책 600쪽 내외

2만5000원 내외




총 11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의 첫 회분만 봐도 실로 거대한 프로젝트이다. 1권 『동양문명』, 2권 『그리스 문명』, 5권 『르네상스』는 각각 두 책씩인데, 각 책은 600쪽 내외로 꽤 두툼하다. 완간될 경우 22책인데, 이 정도라면 당신의 서가 한쪽을 꽉 채울 듯하다. 인터넷에 밀려 오래 전 치웠던 백과사전을 다시 들이는 셈이다. 저자는 『철학이야기』로 유명한 윌 듀란트(1885~1981). 방대한 저술을 남긴 그는 알고 보니 100세 가까이 살았다.



 요즘의 핏기 없는 철학책과 달리 철학자별로 풍부한 일화와 함께 삶과 철학을 녹이는 데 성공했던 『철학이야기』는 한 때 요긴한 읽을거리였다. 지금 읽어도 매력적인 그 책을 펴낸 것은 1926년의 일이다. 이후 듀란트는 반세기 동안 아내의 조력을 받아가며 『문명 이야기』시리즈 저술에 매달렸는데, 그의 장기가 여전하다. 즉 ‘이야기로서의 문명’에 충실하다. 연대기의 나열이나 짜깁기식일 리 없고, 인류의 삶 1만 년을 그만의 방식으로 보듬어낸다.



 비유컨대 큰 붓과 세필(細筆)을 함께 구사하는 방식이다. 일단 큰 붓을 들어 문명의 윤곽을 잡은 뒤 섬세한 터치로 디테일을 완성해나가는데, 하나하나가 리얼하게 다가온다. 이를 테면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인 남녀의 외모 지상주의 풍토 묘사가 그러하다. 여성은 계란 흰자위와 암모니아 고무를 섞어 속눈썹을 올리는 마스카라 용도로 썼고, 남자들도 반지를 하나씩은 꼈는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여러 개를 꼈다는 식으로 구체성이 살아있다.



 그때 그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시대의 울림으로 연결하는 솜씨도 눈여겨봐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두통거리였던 여성해방과 산아제한, 기득권의 보수주의와 정치부패 이야기를 읽노라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느낌을 새삼 준다.



 『문명 이야기』의 미덕은 균형 감각. 즉 지금도 논란거리인 서구 중심주의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다. 시리즈의 첫 권이 『동양문명』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유럽과 미국은 아시아의 응석받이 아이이자 손자”(『동양문명』1-2책 685쪽)이라고 지적할 정도다.



 “유럽이 야만인으로 있을 때 이집트인과 바빌로니아인은 인간 본성에 대해 숙고했고, 삶과 죽음에 대해 불멸의 주석을 달았다”는 게 듀란트의 시선이다. 즉 『문명 이야기』시리즈는 동양문명의 영향과 무관했던 고대그리스 문명이 스스로 탄생했고, 그 고전문명이 로마를 거쳐 중세로 연결돼 근대를 낳았다는 식의 서구적 독선에서 멀찌감치 거리를 두는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첫 권 『동양문명』이 선보인 것은 태평양전쟁이 터지기 전인 1935년이다.



 슈펭글러의 명저 『서구의 몰락』이 완간됐던 1922년 이후에 문명의 흥망성쇠를 구체적으로 짚어낸 건 윌 듀란트가 아닌가 싶다. 사실 그는 철학자로서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철학저술가였고, 그것도 계몽적 저술에 그쳤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보니 문명사가이자 사상가로 새롭게 자리매김을 해야 할 듯하다.



 세 권 외에 나머지는 『카이사르와 그리스도』『신앙의 시대』『종교개혁』『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다』『루이 14세의 시대』『볼테르의 시대』『루소와 혁명』『나폴레옹의 시대』 등이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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