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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패스트패션 빅3 CEO들, 철학이 달랐다

중앙일보 2011.07.15 00:30 경제 2면 지면보기
최근 몇 년 새 글로벌 패션 업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패스트패션. 일반 패션업체가 계절별로 신상품을 내놓는 것과 달리 보통 1~2주일 단위로 신상품을 쏟아낸다. 말 그대로 ‘초고속 패션’이다. 디자인·생산·유통·판매의 전 과정도 업체가 직접 소화한다. 그뿐 아니라 이 과정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면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돼 옷값도 싸다. 2006년 유니클로를 시작으로 글로벌 패스트패션 업체가 속속 상륙하면서 국내 시장도 급격히 성장했다. 업계에선 5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시장이 커지자 업체들은 차별화 전략으로 새로운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페르손 “기대 넘는 디자인”
다다시 “상식 깨는 품질”
가오나 “다양한 브랜드”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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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



9월엔 압구정동 명품거리에 매장




“파리 샹젤리제 매장 오픈, 유명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명품 브랜드 랑방과의 디자인 협업. 이 두 사건은 우리의 경영 이념을 잘 보여준다.”



 H&M 카를 요한 페르손(36) 대표이사가 지난해 경영을 정리하며 한 말이다. 그는 “2010년 면화 값이 2배가량 뛰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았다. 또한 동시에 기대 이상의 디자인을 선보이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가격과 품질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뛰어난 패스트패션 업체가 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오는 9월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매장을 여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맞은편으로 일명 ‘청담동 명품거리’가 시작하는 지점이다. 티셔츠 한 장에 1만원 안팎의 제품을 파는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압구정에 들어서는 것은 처음이다. “패션업체로서 샹젤리제·압구정 같은 ‘패션 메카’에 매장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H&M 측 설명이다.



 H&M은 올해도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와 디자인 협업을 진행한다. 패스트패션 업체가 명품 브랜드 또는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시도한 것 역시 H&M이 처음이었다. 2004년 당시 샤넬의 수석디자이너였던 카를 라거펠트와의 작업을 시작으로 꼼데가르송·스텔라 맥카트니·지미추 같은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와 긴밀히 손을 잡았다.



 하지만 페르손 대표이사는 “가장 의미 있는 디자인은 사내 디자이너들의 디자인”이라고 강조한다. H&M은 지난해부터 사내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자체 컬렉션을 제작해 매장 내 별도 공간에 선보이고 있다. 폐섬유 등을 활용한 재생 소재와 유기농 면·마를 사용한 제품이다. 지난해엔 여성복만 선보였지만 올해는 남성복·아동복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ZARA



인디텍스, 3개 브랜드 한꺼번에 론칭




8월 말 풀엔베어·스트라디바리우스·버쉬카의 국내 첫 번째 매장이 일제히 문을 연다. 이들 브랜드는 자라의 모그룹인 인디텍스그룹이 운영하는 하위 브랜드다. 지난해 12월 마시모두띠를 론칭한 지 7개월여 만에 새로운 브랜드를 선보이는 셈이다. 자라를 포함해 이들 5개 브랜드를 보면 인디텍스그룹의 비즈니즈 전략을 읽을 수 있다. ‘세분화된 시장에는 세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고객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겠다는 멀티브랜드 전략이다.



 실제로 자라에 이어 지난해 출시된 마시모두띠는 자라보다 가격대가 높고 세련된 도시 감각의 디자인을 내세운다. 다음 달 출시될 풀엔베어·스트라디바리우스·버쉬카는 기존 브랜드에 비해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다. 버쉬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남녀를 겨냥한 캐주얼 의류를 주로 취급한다. 또 풀엔베어는 같은 연령대를 타깃으로 하지만 중성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사실 일각에선 “인디텍스그룹이 다양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지만 개별 브랜드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고 깎아내리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인디텍스그룹은 세분화된 시장 접근이 필요하다는 전략을 바꾸지 않고 있다. 과거처럼 브랜드 충성심 하나만으로는 고객을 계속 붙잡기가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전략의 핵심에는 창업자인 아만시오 오르테가 가오나(75) 회장이 있다. 가오나 회장은 은둔자로 유명하다. 지난해 포브스가 뽑은 스페인 최고 부자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1936년 레온 지역에서 태어나 아코루나 지역으로 이주, 1975년에 자라 첫 매장을 열었다는 것 정도다. 이력에 대해서도 알려진 게 거의 없고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적도 없다. 하지만 91년부터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기존 의류 브랜드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브랜드를 적극 늘려 왔다.



유니크로



도레이와 첨단소재 공동 개발도




“H&M이나 자라는 유행에 맞춰 신속하게 제품을 내놓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우리는 유행보다는 기본적인 디자인에 충실하면서 품질이 뛰어난, 그런 옷을 만든다.”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62) 회장의 말이다.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그의 경영 철학은 기능성 옷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요즘 한창 인기인 UV(UltraViolet, 자외선)컷 제품이 대표적이다. 뜨거운 여름 햇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려면 자외선 차단 화장품을 바르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옷으로 자외선을 차단하겠다며 내놓은 것이 바로 유니클로의 UV컷 제품이다. 자외선 차단 기능을 갖춘 섬유로 만들어졌다.



 이뿐이 아니다. 유니클로는 계절별로 매출을 이끄는 기능성 제품군이 적지 않다. UV컷 제품과 더불어 여름 매출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제품은 사라화인. 땀과 습기를 빠르게 흡수해 쾌적함을 유지하는 기능성 속옷이다. 겨울철엔 히트텍이 단연 인기다. 2003년 최초 발매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누적 판매량이 1억 장을 넘어섰을 정도다. 인체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를 열에너지로 변환시키는 특수 소재로 만들었다. 히트텍 섬유를 청바지 안감에 대 보온성을 높인 히트텍진도 인기다.



 이렇게 옷으로 상식을 깨온 다다시 회장의 힘은 기술 개발에 있다. 일본 섬유회사 도레이와의 합작을 통해 신소재를 개발해 왔다. 히트텍·UV컷 같은 기능성 제품에 사용된 섬유 대부분이 도레이와 공동개발한 특수 소재들이다.



 다다시 회장은 “우리의 세계시장 전략의 핵심은 ‘글로벌원(Global One)’”이라고 강조한다. 국가별 상품 전략이 아니라 전 세계를 하나로 보고 상품 단일화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핵심에 바로 품질, 즉 기능성 의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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