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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접시에 콩알만 한 인공 씨감자 20개 주렁주렁

중앙일보 2011.07.15 00:10 경제 11면 지면보기
씨감자에 싹이 나면 4~5등분으로 쪼갠 뒤 짚을 태운 재를 묻혀 밭에 심는다. 재는 항균 역할을 한다. 이는 쌀과 밀·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주식 작물인 감자를 파종하는 우리나라 농촌의 모습이다. 미국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신기술 개발 생명연구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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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인공 씨감자 생산동’이자 연구실. 이곳은 감자 파종과 씨감자 생산 개념을 완전히 바꾸고 있는 곳이다. 그 공간은 99㎡(30평) 안팎에 불과했다. 연간 200만 개의 씨감자를 생산해 내고, 전 세계 감자 품종의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다. 호떡 크기의 씨감자 배양 접시와 그 접시를 10여 겹으로 포개 쌓아놓을 수 있는 선반, 책상 몇 개에 해당하는 작업대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공간이 넓어야 할 필요가 없어서다.









인공 씨감자 생산 공장에서 개발자 정혁 박사가 배양 접시 몇 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책꽂이 같은 선반에 배양 접시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인공 씨감자를 1991년 처음 개발한 정혁(55)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은 “연간 수천만 개의 씨감자를 생산하는 공장을 만든다고 해봐야 몇천㎡(수백 평)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통 방식으로 그만큼 많은 씨감자를 생산해 내려면 서울 여의도 면적보다 훨씬 더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인공 씨감자는 세계적인 연구 성과다. 지름 0.5~1㎝의 작은 구슬 크기로 씨감자를 시험관에서 대량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기술이다. 씨감자의 싹을 시험관에서 키우면서 계속 자라는 줄기만 잘라 다른 시험관에 꽃꽂이하듯 심어 번식시키면 되기 때문에 씨감자를 생산하기 위한 또 다른 씨감자가 필요치 않다. 씨감자의 싹을 한 번 시험관에서 번식시키기 시작하면 그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주식 작물의 종자를 별도의 종자 없이 무제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곳은 이곳을 제외하면 아직 없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씨감자 생산을 위해 별도의 씨감자를 파종한 뒤 수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바이러스에 오염되고, 품질이 들쭉날쭉해 생산성도 떨어진다.



 씨감자 배양 접시 안에는 청포묵 같은 영양분이 들어 있다. 씨감자 생산동에 들어서자 한 연구원이 작업대에서 배양접시 안에 가득 자란 씨감자 줄기를 잘라 새 배양 접시에 듬성듬성 꽂고 있었다. 이 접시는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도록 선반으로 옮겨 쌓아 놓는다. 책꽂이처럼 늘어선 선반에는 형광등이 각각 달려 있어 감자 싹이 잘 자라도록 해준다. 선반에는 그런 배양 접시가 동전 쌓여 있듯 가득 차 있었다.



 배양 접시 한 개에 콩알 크기의 씨감자가 10~20개 정도 달리면 수확한다.



 인공 씨감자가 이렇게 작기 때문에 운송이나 보관 등이 아주 용이하다. 기존 한 트럭분의 씨감자를 인공 씨감자로 대체할 경우 라면박스 한 개 공간이면 충분하다.



 크기가 작다고 얕볼 일은 아니다. 인공 씨감자는 통째로 파종한다.



 시중의 주먹만 한 씨감자 하나를 심은 것 보다 콩알만 한 인공 씨감자 하나를 심은 곳의 수확량이 1.5배 정도 많다. 그렇게 수확량이 많은 것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씨감자의 경우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적지 않아 생육이 더디고 수확량도 적다.



 정혁 박사는 인공 씨감자 생산을 전담할 회사를 지난달 연구소 기업으로 등록을 마쳤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기술을 출자하고, 민간 기업은 자본을 대는 형식이다. 그러면 지식경제부에서 자금과 행정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



 정 박사는 최근 중국 다롄(大連)시와 연간 1000만 개의 인공 씨감자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는 계약도 맺었다.



 그는 그동안 서너 번에 걸쳐 민간에 기술을 이전했으나 한국의 전통적인 종자 관리 방식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정부에서 전통 방식으로 종자를 생산해 싼값에 공급하고 있으며, 소규모 농사를 짓는 사람은 자체적으로 씨감자를 보관해 놨다가 사용한다.



 정 박사는 “국제협력기금의 극히 일부를 이용해 아프리카 등 기근에 허덕이는 나라에 인공 씨감자 공장과 기술을 이전해 주면 가장 효율적인 원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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