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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전별금

중앙일보 2011.07.15 00:08 종합 31면 지면보기








정든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아쉬움이다. ‘떠나는 이 마음도 보내는 그 마음도/서로가 하고 싶은 말 다할 수는 없겠지만/그래도 꼭 한마디 남기고 싶은 그 말은/너만을 사랑했노라 진정코 사랑했노라…’. 1980년대 초 홍민이 부른 가요 ‘석별’의 한 대목이다. 석별(惜別)은 애틋하다. 떠나는 사람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는 전별(餞別)의 정(情)을 나누는 게 인심이다. 마음만으론 모자라 선물로 주는 물건이나 돈이 전별금이다. 맹자는 “길 떠나는 사람에게 반드시 전별금을 주는 것이 예의”라고 했다. 남은 사람이 십시일반의 순수한 정을 담아 전별금을 건네는 풍속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문제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절제를 잃게 한다. 여기서 거래라는 게 성립한다. 미국 인류학자 앨런 피스크는 거래의 형태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공동분배형(communal sharing)은 네 것과 내 것에 구분이 없다. 가족이나 소규모 집단에서 나타난다. 평등조화형(equality matching)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교환하는 형태다. 내 등을 긁어줬으니 나도 긁어주는 식이다. 시장가격형(market pricing)은 셈법이 복잡하다. 이익과 손실, 채권과 채무, 선물과 뇌물이 돈과 물건에 뒤섞여 오간다. 요즘 전별금의 속성은 선물과 뇌물의 경계선이 모호한 시장가격형 거래로 변질됐다.



 선물과 뇌물의 구분은 의외로 간단하다. 망각과 기억의 차이에서 온다. 선물은 주는 행복이다. 반대급부가 없어 머릿속에서 잊어버린다. 뇌물은 대가를 바란다. 채권 의식이 있어 돌아올 뭔가를 기다리며 기억한다. 프랑스 사상가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선물은 교환 관계, 대응 선물, 부채 의식이 없어야 존재한다. 견득사의(見得思義), 즉 얻은 것을 보면 옳은가를 생각하라는 공자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75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전별금 명목으로 받은 국토해양부 고위 간부가 엊그제 직위해제됐다. 200만원대의 황금 열쇠 1개와 현금 100만원은 부하 직원 한 명에게서, 250만원짜리 진주 반지 1개는 업체 관계자에게서 각각 나왔다고 한다. 특혜를 노리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낸 ‘보험용’이라는 냄새가 풍긴다. 전별금을 치부와 뇌물의 수단으로 만든 이들 때문에 세상이 각박해진다. 순수한 마음의 선물마저 삐뚤어진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불신의 세태가 안타깝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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