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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첫 단추’ 잘 채워야 한다

중앙일보 2011.07.13 00:17 종합 38면 지면보기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한국사 교과서를 새로 만들기 위한 ‘2011년 역사 교육과정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이다. 새 교과서는 교과부가 8월께 고시할 ‘교육과정’의 원칙에 따라 서술된다. 교과서의 전반적인 틀과 서술 방향을 규정하기 때문에 교육과정은 ‘교과서의 헌법’으로 간주된다. 국어와 국사의 경우엔 국민 의식에 미칠 영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다른 과목에는 없는 세부 규칙을 하나 더 정해 놓았다. 교육과정의 원칙을 보다 자세하게 풀어 놓은 ‘집필기준’이 그것이다.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에 따라 만든 ‘교과서 후보’는 최종적으로 검정 심의를 통과해야 정식 교과서의 지위를 얻는다.



 그러니까 한국사 교과서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경우 교과서 집필자만의 문제는 아닌 셈이다. 교과서 집필자들은 교육과정·집필기준에 맞춰 쓰고 검정 심의에 통과하는 게 목표다. 좋은 교과서를 만들려면 ‘교육과정-집필기준-교과서 집필-검정 심의’ 전반에 걸쳐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모두 6종)도 몇 겹의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이념적 편향성 문제가 계속 나온다. 대한민국의 성취는 폄하하고 오히려 북한에 온정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현행 고교 교과서는 2009년 개정된 교육과정을 따랐다. 2009년의 교육과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관련하여 이렇게 규정해 놓았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정부 수립 과정 및 그 의의를 파악하고, 농지개혁과 친일파 청산이 추진되었음을 안다.” 이는 현행 교과서가 대한민국과 북한의 현대사를 나란히 대비시켜 서술하는 방식의 근거로 지목된다.



 대한민국과 북한을 대등하게 병렬 서술하는 게 옳은가. 이는 대한민국의 시각에서 현대사를 볼 것인가, 아니면 ‘민족 통일’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사관(史觀)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사관의 차이라고 방치할 순 없을 것이다. 일반 역사책이라면 몰라도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근대국민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시각이 우선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선 독재라는 표현을 수시로 사용하면서 북한 세습정권의 인권 탄압 문제는 외면하는 이중 잣대도 문제다. 우리 교과서 속 현대사의 주요 흐름은 민주화 운동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뤄낸 대한민국 60여 년의 성취를 세계가 놀라워하고 많은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데, 정작 그런 종합적인 성취의 역사를 현재 교과서 속에선 잘 찾아볼 수 없다.



 좋은 교과서의 성패는 1차적으로 교육과정에 달렸다. 그러나 이번 교육과정 한 번으로 역사 교육의 모든 숙제를 다 풀 순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우선순위를 매겼으면 한다. 우선순위의 앞자리에 대한민국 건국과 발전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냉소해온 관행을 끊는 일이 놓였으면 한다. 이번 개정의 주요 목적인 그 일만 제대로 해내도 ‘2011년 개정 교육과정’은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애매모호한 규정으로 혼란이 반복되게 해선 안 된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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