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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감 넘치는 주행감 2.9초 만에 ‘정지→시속 100㎞’

중앙선데이 2011.07.10 03:02 226호 22면 지면보기
10기통 5.2L 엔진을 얹은 최고시속 350㎞의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쿠페’는 거친 승차감과 단단한 하체를 자랑한다. [람보르기니 제공]
지난달 경기도 화성의 자동차성능연구소에 황소 그림 수놓은 깃발이 나부꼈다. 람보르기니 시승회를 알리는 신호였다. 람보르기니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수퍼카 브랜드다. 같은 국적의 페라리와 라이벌 관계다. 수퍼카의 명확한 기준은 없다. 통상 스포츠카 가운데 성능과 가격이 ‘압도적’으로 높은 차를 일컫는다. 희소성과 브랜드 가치 또한 뒷받침돼야 한다.

수퍼카 세계의 악동,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쿠페

람보르기니는 이 같은 조건과 고스란히 겹친다. 우선 가격이 2억9000만원에서 시작된다. 1년에 2000대 정도만 만든다. 대부분의 공정은 수작업이다. 성능은 화끈하다 못해 초현실적이다. 최근 선보인 ‘아벤타도르’의 경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을 2.9초 만에 마친다. 최고 속도는 시속 350㎞로 보잉 747이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를 때보다 빠르다.

람보르기니는 소와 인연이 깊다. 엠블럼을 장식한 것은 물론 차종 이름도 투우에서 악명 떨친 싸움소에서 따왔다. 창업자인 페루초 람보르기니의 생일이 황소자리인 데서 비롯된 전통이다. 그 밖에 람보르기니엔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시작은 트랙터 회사였다. 그런데 홧김에 자동차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파란만장한 뒷이야기의 중심에 페루초 람보르기니가 있다.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1916년 4월 28일,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 인근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볼로냐 공대를 졸업한 뒤 견습공으로 취직해 속칭 ‘기름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즈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그는 공군에 입대해 기술자로 근무했다. 1946년 전쟁이 끝나고 그가 귀향했을 때 이탈리아의 농촌은 트랙터가 없어 허덕였다.

람보르기니 본사 직원이 시승행사에 나온 ‘가야르도 쿠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발 빠르게 트랙터 회사를 차렸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으뜸가는 업체로 키웠다. 60년엔 공업용 히터와 에어컨을 만드는 회사까지 차려 돈을 벌었다. 성공한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삶에서 세 가지 즐거움을 좇았다. 음식과 와인, 빠른 차였다. 그런데 당시 소유했던 페라리 스포츠카의 고장이 잦았다. 골머리를 앓던 그는 트랙터 부품으로 직접 고쳐서 탔다.

이후 페라리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사과는커녕 “가서 트랙터나 몰아라”라는 모욕을 당한다. 자존심이 상한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직접 스포츠카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돈과 명예를 거머쥔 그에게 걸림돌이 될 건 없었다. 63년 5월, 산타가타에서 ‘아우토모빌리 페루초 람보르기니’가 문을 열었다. 페라리 본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페루초 람보르기니의 목표는 명료했다. ‘페라리 타도’. 페라리를 꺾기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치를 작정이었다. 페라리와 같은 12기통 엔진을 쓰는 것은 기본이요, 배기량은 1㏄라도 더 커야 했다. 페라리가 실린더마다 밸브가 두 개면 람보르기니는 네 개씩 달았다. 페라리의 변속기가 4단이면 람보르기니는 하늘이 두 쪽 나도 5단을 고집했다. 못 말리는 경쟁의식이었다.

파격도 서슴지 않았다. 66년 내놓은 ‘미우라’는 양산차 가운데 최초로 엔진을 좌석 뒤에 얹었다. 이른바 ‘미드십’ 방식으로, 무게중심을 앞뒤 바퀴 사이에 묶을 수 있어 몸놀림이 민첩했다. 74년엔 카운타크를 통해 가위 벌릴 때처럼 위쪽으로 비켜 열리는 도어를 선보였다. ‘미드십’과 ‘가위도어’는 오늘날 수퍼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70년 밤낮없이 승부욕을 불태우던 페루초 람보르기니가 별안간 자동차에서 손을 뗐다. 창업자의 품을 떠난 람보르기니 앞엔 모진 풍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람보르기니는 미국과 동남아를 10여 년 떠돈 끝에 유럽으로 되돌아왔다.

아우디의 품에 안긴 이후 람보르기니의 재도약이 시작됐다. 99년 264대로 시작한 판매는 3년 만에 곱절로 늘었고, 2003년엔 1357대로 수직 상승했다. 2007년 2580대로 정점을 찍은 뒤 지금은 금융위기 여파로 위축된 상태다. 람보르기니의 차종은 V12 6.5L 엔진을 얹은 아벤타도르 LP700-4와 V10 5.2L 엔진을 얹은 가야르도 시리즈로 구성된다.

이번 시승회의 주인공은 ‘가야르도 쿠페’다. 람보르기니의 연간 판매를 네 자릿수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다. 시승차는 LP550-2와 LP560-4로, LP는 세로 배치 엔진, 550과 560은 최고 출력, 2는 뒷바퀴 굴림, 4는 네바퀴 굴림을 뜻한다. LP560-4의 운전석에 앉았다. 역시 람보르기니였다. 거칠었다. 운전대에 붙은 손잡이를 당겨 기어를 바꿀 때마다 목덜미가 뻐근했다. 운전대와 페달은 돌덩이처럼 무겁다. 승차감은 달구지 뺨치게 딱딱하다. 그래서 엉덩이로 아스팔트의 균열과 단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람보르기니의 막내라지만 가속은 눈물 찔끔 날 만큼 화끈하다. 시속 100㎞ 가속을 3.7초 만에 해치운다.

차체가 워낙 낮은 데다 하체마저 딱딱하니 어지간해선 기울임조차 느낄 수 없다. 게다가 사륜구동이어서 파워는 괴팍할지언정 몸놀림은 반듯했다. 괜한 호기와 그릇된 욕심을 너그럽게 감쌌다. 이날 시승회는 최고 속도를 시속 190㎞로 못 박았다. 람보르기니의 한계와는 한참 차이가 났다. 하지만 그 오붓한 영역 안에서 뛰노는 것도 충분히 짜릿했고 또 힘겨웠다.

고막이 얼얼한 사운드와 온몸을 타고 흐르는 진동 때문에 시속 60㎞도 120㎞처럼 박진감 넘쳤다. 이처럼 격렬한 운전감각은 수퍼카를 단지 빠른 차와 구분 짓는 경계다.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는 수퍼카란 점만 빼면 성격이 극과 극이다. 페라리는 경주차에 가깝다. 진지하고 섬세하다. 반면 람보르기니엔 한량 기질이 다분하다. 으쓱대고 거들먹거린다. 나아가 이 같은 성향을 당당히 드러낸다. 자연스레 ‘튀고 싶은’ 오너가 모여든다.

한 외지와 인터뷰에서 람보르기니 사장, 슈테판 빙클만은 이렇게 말했다. “람보르기니는 최고의 수퍼카를 지향합니다. 라이벌(페라리)보다 덩치가 크고 시끄러울 뿐 아니라 강력해야 합니다. 람보르기니는 수퍼카 세계의 ‘악동’으로 영원히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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