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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 개인·공동체가 상호작용하는 혁명 통해 발전

중앙선데이 2011.07.10 02:38 226호 29면 지면보기
남북관계 패러다임의 변화 야구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신문을 장식하는 기사 제목들이다. ‘패러다임’이라는 단어의 용법은 토머스 쿤에서 나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국·프랑스·미국에서 발생한 정치 혁명, 17세기 과학 혁명, 18세기 산업 혁명과 같은 혁명을 통해 자리 잡았다. 오늘날 선진 민주 국가에서 정치 혁명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다. ‘선거 혁명’과 같은 구호에 혁명 전통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기존의 정치·경제 체제를 위·아래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된다. 반면 과학·기술·산업·비즈니스 분야에서는 IT 혁명, 나노 혁명, 바이오 혁명 등 혁명이 당연시된다. ‘집사람·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는 혁명을 촉구하는 표현에도 설득력이 있다. 정치가 아닌 영역에서 혁명을 구가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과학사학자·과학철학자 토머스 쿤(1922~96)이 쓴 과학 혁명의 구조(1962·이하 SSR)가 있다. 그는 과학이 혁명을 통해 전진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25> 토머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

20세기 지성사의 ‘랜드마크’
SSR은 ‘지성사의 랜드마크’로 불린다. SSR통합과학국제백과사전(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Unified Science)의 일부분으로 집필돼 62년 시카고대학 출판부에서 발간됐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과학은 점진적·누적적·연속적·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SSR에서 토머스 쿤은 과학이 혁명적인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과학 혁명이라는 말은 러시아계 프랑스 철학자인 알렉상드르 코이레(1892~1964)가 1939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과학 혁명은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에서 뉴턴 과학으로 전환한 과학의 대격변이다. 18세기에 종결된 혁명이다. SSR이 분석한 과학 혁명은 과학의 각 분과별로 계속되는, 대문자(Scientific Revolution)가 아니라 소문자(scientific revolution)로 써야 할 과학 혁명이다. 또한 SSR의 영문 제목(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혁명이 단수(revolution)가 아니라 복수(revolutions)로 돼 있다.

『과학 혁명의 구조』의 영문판 표지.
과학은 개개의 과학적 발견들이 차츰 쌓이면서 발전하는 것 같지만 쿤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새로운 과학이 등장하면 구체제(ancient regime)가 무너지듯 예전의 과학도 무너진다. ‘혁명적 과학(revolutionary science)’의 승리로 과학 혁명이 끝나면 과학은 ‘정상과학(正常科學·normal science)’이 된다. 혁명이 끝나면 과학도 정상적인 평상을 되찾는 것이다.
‘정상 과학’을 특징 짓는 것은 패러다임(paradigm)의 존재다. 패러다임은 현실에 대한 전제들(assumptions)의 집합·모델·패턴, 기초 개념의 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패러다임은 공동체를 이룬 과학자들이 집단적으로 믿고 있는 아이디어·원칙의 집합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쿤에 의하면 정상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과학자들은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들(puzzle-solvers)’이다. 정상과학의 시대엔 수수께끼를 푼 과학자들이 수많은 논문들을 쏟아낸다.

아리스토텔레스 읽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정상과학은 언젠가 한계에 도달한다. ‘치즈가 사라진 것’처럼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게다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잘 설명이 안 되는 ‘이상현상들(anomalies)’이 발생한다. 정상과학은 두 가지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하나는 이상현상들을 무시하는 것, 다른 하나는 기존 패러다임에 따라 억지로 설명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상현상의 누적은 정상과학의 위기를 상징한다. 패러다임이 교체(paradigm shift)되고 새로운 정상과학이 탄생해야 할 국면이 전개된다.

정치 혁명에 혁명가가 있듯, 과학 혁명에도 코페르니쿠스·뉴턴·아인슈타인과 같이 혁신적인 결과를 내는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기존 패러다임에 매몰되지 않은 젊은 과학자들이다. 이들이 혁신적인 업적을 이루면 이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동참하는 추종자들이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상현상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수수께끼들을 제시한다. 과학자들에게 ‘일감’이 많아진다.

쿤에 따르면 경쟁하는 패러다임들, 새로운 패러다임과 낡은 패러다임은 같은 기준으로 잴 수 없다(incommensurability). 패러다임의 장단점을 비교하거나 어느 쪽이 우월한지 판단할 수 있는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는 주장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옛 패러다임에 비해 보다 정확하거나 타당하고 보다 진리에 가까운 게 아니라 보다 유용한 것일 뿐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새로운 사고법을 요구한다. 새로운 정상과학의 일원이 되는 것은 무신론자가 유신론자, 유신론자가 무신론자가 되는 것과 같은 ‘개종 체험(conversion experience)’을 겪게 한다. 쿤에 따르면 정상과학과 다른 정상과학 사이에 소통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일종의 ‘번역자(translator)’로 정상과학과 정상과학이 서로 이해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쿤이 SSR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있다. 쿤이 47년 하버드대 물리학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총장인 제임스 B 코넌트(1893~1978)는 쿤에게 학부의 인문사회과학 전공학생들을 위한 강의인 ‘자연과학 4’를 맡겼다. 역사 사례에 집중하는 과목이었다.

강의를 위해 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읽었다. 그는 물리학을 읽고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체험했다. 책을 읽어보니 운동이나 물질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운동은 ‘상태의 변화’, 뉴턴에게는 ‘상태’를 의미했다. 쿤이 깨달은 것은 한 명은 맞고 한 명은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르다’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근대·현대 물리학을 기준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을 ‘원시적’이라고 재단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쿤은 박사학위를 물리학으로 받았으나 ‘자연과학 4’·SSR 집필을 계기로 과학사가·과학철학자로 학자 생활을 하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창조설도 쿤을 수용
SSR은 20여 개 언어로 번역돼 100만 부 이상 팔렸다. 20세기 연구 논문·단행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 중 하나가 됐다. 얄궂게도 과학보다는 오히려 사회과학·인문과학·예술·문학 분야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쿤은 자연과학과 같은 ‘성숙한 과학(mature science)’에만 정상과학·패러다임이 생성된다고 봤다. 그러나 자연과학 수준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인문사회과학에 SSR은 위안을 주고 희망을 줬다. SSR은 과학에도 전통(傳統)과 정통(正統)이 중요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과학이 반드시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도 밝혀냈다.

SSR의 이런 측면은 쿤의 주장을 포스트모더니즘이 수용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정상과학끼리의 문제는 ‘다르다’의 문제이지 ‘맞고·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쿤의 관점은 문화적 상대주의, 다문화주의, 학파들끼리의 ‘평화 공존’에 힘을 실어주는 측면까지 있었다.

쿤은 창조설(creationism)은 과학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창조설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까지 SSR을 근거로 자신들을 정당화했다. ‘적어도’ 창조설이 진화론과 다를 뿐 틀린 과학은 아니라는 논리를 SSR에서 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쿤의 SSR은 우리의 언어 생활 속으로도 들어왔다. 패러다임은 우리말이 됐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패러다임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다.

쿤은 자신의 지지자들보다는 반대파들이 더 편하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SSR은 쿤의 손을 떠났다. 쿤의 일부 지지자들은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 의견(opinion)이다” “과학 패러다임은 객관성이 아니라 권력 관계가 규정한다”라는 등 극단적인 결론을 도출해 냈다. 그때마다 쿤은 당혹감을 느꼈다.

쿤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각도에서 제기됐다. 패러다임 개념의 모호성도 도마에 올랐다. 논리학자들은 쿤이 패러다임을 22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패러다임이 이것 저것을 담는 보자기 같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수사학적 관점에서는 장점이지만 학문적으로는 단점일 수밖에 없었다.

과연 과학자들의 실제 연구 활동이 쿤이 그리고 있는 것처럼 진행되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쿤의 전공인 물리학의 경우, 패러다임의 변화가 뚜렷하지만 다른 과학 분야는 그렇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니 물리학마저도 쿤의 주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게 지적됐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판도 나왔다. 사회학자인 영국 워릭대학의 스티브 풀러 교수는 쿤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쿤은 ‘함량 미달’의 학자이며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것이다. 쿤이 학자로서 성공한 것은 하버드대 제임스 코넌트의 든든한 후원 덕분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SSR이 출간됐을 때 쿤은 40세의 UC버클리 역사학 교수였다. 그의 개인적인 삶은 ‘혁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드라마는 없었다. 그는 하버드대·UC버클리·프린스턴대·MIT 교수로서 평탄한 학자 생활을 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재치 있는 유머를 구사한 ‘매력남’이었으며 싸우는 것을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잠시 과학연구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다. 두 번 결혼한 쿤은 2녀1남의 자식과 4명의 손자·손녀를 뒀다. 취미는 롤러코스터 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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