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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하늘 향해 통통 튀는 소릿결 역사상 가장 자연스러운 음성 소유자

중앙선데이 2011.07.10 02:30 226호 31면 지면보기
갑자기 가요 CD를 100여 장이나 구입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신보 중고 가리지 않고 감각으로 긁어 모았다. 방송사에서 팝이나 클래식 음악 DJ할 때 매니저들이 갖다 바쳐도 거들떠보지 않던 가요 음반들이다. 내가 미쳤나? 조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바비 킴, 드렁큰 타이거, 부가킹즈, 엄인호와 박보, 자우림, 체리필터, 브로콜리 너마저, 리쌍(메인 곡명이 조까라마이싱이라니!), 루시드 폴, 델리스파이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검정치마, 십센치, 야광토끼, 장기하 2집… 으하하하하!

詩人의 음악 읽기 옛 가수들①-아멜리타 갈리 쿠르치

그냥 듣고 싶어졌다는 말이 정확한 것일 텐데, 조금 부연을 하자면 k팝 유럽 진출 난리통을 유튜브로 지켜보며 무척 재미있었다는 것. ‘나가수’를 찾아보게 됐다는 것. 수십 년간 거의 날마다 외국음악을 들어왔던 내게 요즘 가요가 무척 새롭고 독특한 것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일 것이다. 구입 음반 목록 중에 ‘추억의 쎄시봉 음악 감상실’이라는 석 장짜리 모음집도 끼어들었는데 이장희, 송창식, 조영남 등등의 친근하고 낯익은 노래들이 어찌나 지겹고 ‘구리구리’하게 느껴지던지. 검정치마가 부른 ‘좋아해줘’의 감각성 앞에서 ‘한번쯤’이나 ‘그건 너’ 같은 추억의 멜로디는 도무지 맥을 출 수 없었다. 가요 듣는 걸 ‘타락’으로 여기던 어릴 적 정서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건만 이 무슨 변덕일까.

나는 언제나 집중한다. 머리가 얼얼할 만큼 여러 날 동안 홀로 한국음악축제를 벌였다. 홍대 앞 작은 무대나 봉천동 쑥고개 연습실을 전전하면서 음악 좀 해보겠다고 몸부림치는 날라리 청춘들의 피를 수혈 받는 느낌을 받았다. 연예기획사의 맞춤상품 같은 아이돌 댄스음악까지 즐기기는 힘들었지만 가요 전체의 질적 향상은 명확했다. 관객의 인지 수준을 넘어서는 영화가 등장했을 때 한국영화가 도약했듯이 가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날마다 축제’를 지속할 수는 없다. 음악을 유행이나 쾌락 충족 도구로 접하지 않으려는 내 고집에도 존중이 필요하다.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어쨌든 누구에게나 모태로 여겨지는 자기 자리가 있지 않던가.

목젖으로 노래하는 옛 가수들 신선
나의 한국음악축제와 포개지면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징검다리 역할로 뜻밖에 옛날 가수들이 찾아왔다. 옛날이란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한 100년 전쯤을 말한다. 카루소 시대를 지나 1925년 최초로 전기 작동 마이크로폰이 출현해 레코딩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비교적 들을 만한 음질로 그때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는데 참 다르다. 파바로티의 시원함도 도밍고의 중후함도 없지만 복부 대신 목젖을 사용해 부르는 듯한 옛날 가수들의 노래는 신선하고 새로웠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것은 중요한 예술적 충동이다.

이름들, 지금은 낯설지만 그 옛날의 수퍼 히어로, 헤로인의 이름들. 넬리 멜바, 갈리 쿠르치(위 사진), 로자 퐁셀, 루크레지아 보리 등은 여신이었다. 타마뇨, 카루소, 샬리아핀, 질리 등은 영웅이었다. 아날로그의 장점은 각각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 개성 강한 목소리들 가운데 특별히 오랫동안 귀를 잡아당긴 인물은 창밖에 들리는 종달새 소리를 모방해 노래를 연마했다고 주장하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아멜리타 갈리 쿠르치였다.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 탓에 온 세상 미움을 다 받았다고 한다(그런 면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선배다).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인데도 그곳을 대표하는 라 스칼라 무대에 한 번도 서지 않았다. 신인 때 원하는 배역을 주지 않았다고 그런 식으로 복수한 것이다. 대단한 성격 아닌가. 하지만 그 소릿결은 흡사 청명한 하늘을 향해 통통 튕겨 올리는 듯 정녕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녀가 부른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의 아리아 ‘저는 신부의 드레스를 입은 귀여운 처녀랍니다. 4월 백합처럼 순결하지요’를 이 활자 너머 들려주고만 싶다. 역사상 가장 자연스러운 음성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갈리 쿠르치는 1920년대의 헤로인었다. 애호가들의 기본 컬렉션 대상이어서인지 음반도 많고 쉽게 구할 수 있다.

‘조까라마이싱’이 수록된 리쌍의 1집 음반.
‘으허 으허 조까라마이싱!’이라고 외치는 요즘 가요의 자극성과 100년 전 성악가의 청아함은 참으로 먼 거리에 있다. 양 끝의 거리가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내력이라면 함께 소화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옛것이 새것으로 다가오는 디지털의 놀라운 기록성 앞에서 한 영화제목이 떠오른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우리 모두 이미 충분히 사이보그인 것 아닐까. 갈리 쿠르치를 듣다가 곧장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로 넘어가는 엽기적 음악감상 속에서 나는 괜찮아, 괜찮아를 반복한다. 인생은 본래 뒤죽박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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