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년 전 자살한 아이돌 여가수,삼촌팬들이 털어 놓는 비밀은 

중앙선데이 2011.07.10 01:56 226호 5면 지면보기
아이돌을 사랑한 아저씨들의 미스터리한 만남-. 일본에서 2003년 초연 이래 앙코르 공연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이 국내 상륙해 연극부문 예매율 1위를 오르내리며 선전 중이다. 2005년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하고 영화와 드라마·연극을 넘나들며 활동 중인 인기 극작가 고사와 료타 각본을 우리 연극계 최고의 이야기꾼 이해제가 각색, 연출했다. 2007년에는 ‘꽃보다 남자’의 오구리 슌 등 꽃미남 톱스타와 연기파 배우들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작품이다. 2007년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각본상·우수작품상을 수상해 흥행성·작품성을 고루 인정받은 탄탄한 스토리를 우리 정서에 무리 없이 녹여냈다.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다락방에서 두 시간 동안 주고받는 대화 속에 모든 의문이 발생하고 또 해결되는 독특한 형식의 논스톱 시추에이션 코미디. 시작부터 끝까지 추리와 코믹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숨가쁘게 펼쳐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해답을 향해 치닫는 전개, 유쾌한 웃음 뒤에 남는 정서적 여운까지 섬세하고 치밀하게 짜인 각본의 힘을 과시하는 듯하다.

1년 전 자살한 신인 아이돌 ‘미키짱’을 추도하기 위해 그녀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공무원 ‘이에모토(의역하면 ‘미키짱 종결자’쯤 되겠다)’를 중심으로 시골뜨기, 변태 스토커, 양아치 등 ‘미키짱을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음’을 주장하는 삼촌팬들이 모여든다. 원작에선 미키짱이 ‘그라비아 아이돌(일본에서 성인잡지 화보촬영 위주로 활동하는 B급 연예인)’이지만 국내에선 우리에게 익숙한 ‘섹시 아이돌 여가수’로 설정됐다. 노래도 춤도 어설픈 성형미인이지만 오직 몸매로 끝내주는 영원한 삼촌들의 연인 미키짱. 이에모토가 준비한 미키짱 퍼펙트 컬렉션을 감상하며 그녀를 추억하는 그들의 철없는 대화는 어느새 그녀의 죽음에 대한 서스펜스 넘치는 추리로 흘러가고… 등장 인물들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차례로 용의선상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초반부터 무심한 듯 던져진 대화 속 무수한 복선들이 기막히게 맞물려 돌아간다.

하찮은 ‘오타쿠’인 줄만 알았던 인물들이 알고 보니 모두 미키짱과 모종의 접점이 있었던 ‘관계자’들이었고 ‘종결자’를 자처하던 자신만이 일개 팬에 지나지 않았다는 아이러니에 이에모토는 좌절한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결국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인물로 인한 것임이 밝혀지고, 죽음을 매개로 노출되는 인간 대 인간 관계의 아이러니가 꼬리를 무는 한편 점차 윤곽을 드러내는 감동적인 휴머니즘의 실체. 그것은 평범한 소시민의 ‘하찮은’ 행위, 또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소박한 마음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다.

초딩 응원가 수준의 어설픈 미키짱의 노래를 틀어놓고 하나되어 춤추는 아저씨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아이돌 댄스를 흉내 내는 그들의 춤사위 또한 어설플지라도, 제법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은 유난히 신나고 흥에 겨워 보인다. 애초부터 이들에게 미키짱의 죽음을 슬퍼하는 기색은 없었다. 남겨진 흔적들에 대한 각자의 기억으로 만들어낸 그녀의 허상을 즐기고 있었을 뿐, 어차피 미키짱은 손에 잡히지 않는 현실 밖의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머나먼 구름 위의 존재인 것 같지만 아이돌도 결국 지상의 일반인들의 응원과 사랑을 먹고 산다는 것, 미키짱처럼 팬들의 사랑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아이돌이 있어 즐거운 우리도 그들을 좀 더 순수하게 응원할 수 있지 않을까.

누가 아이돌의 가창력을 논하는가. 누가 아이돌의 발연기를 탓하는가. 누가 아이돌의 졸업앨범을 들추는가. 우리가 아이돌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노래나 연기를 잘해서도, 얼굴이 잘나서도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현실 바깥쪽에서 언제나 나를 보고 웃어주며’ 온갖 시름을 잊게 하는 마법과 같은 비현실성 때문일지도. 비록 가창력과 연기력이 ‘안습’이고 원판과 생얼이 ‘굴욕’일지라도, S라인을 뽐내며 노래하고 춤추는 그들이 있어 ‘삼촌들’이 하나 되고 찌질한 현실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는데, 삶의 무게로 처진 어깨를 위로받을 수 있다는데, 누가 그들에게 악플을 달 권리를 주장하는가. ‘오빠 함께 달려요 내 숨이 다할 때까지 오빠를 위해 달릴게요… 오빠만이 내게 힘을 주었죠’. 삼촌팬들을 하나 되어 춤추게 한 미키짱의 노래처럼, 아이돌이여 쉬지 말고 달려주기를. 악플이 너를 힘겹게 할지라도.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