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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왜 이겼느냐고? 진화하는 끈기에 감동했다”

중앙선데이 2011.07.10 01:44 226호 1면 지면보기
“올림픽 정신(Olympic movement)? 평창의 끈기와 집념이야말로 그 자체다. 국적을 떠나 모든 IOC 위원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평창의 감동적 승리는 올림픽 유산(legacy)으로도 남을 것이다.”

IOC 위원들이 말하는 ‘2018 평창’ 비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압도적인 표차로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선택한 지난 6일 오후 7시(현지시간), 더반 힐튼호텔에서는 비공개 IOC 리셉션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한 IOC 위원은 평창의 승리를 그렇게 정의했다. 유럽에서 온 이 위원은 “평창의 상대가 공교롭게도 모두 유럽이라 내 이름을 밝히긴 곤란하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실제로 독일·프랑스 측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다 못해 비통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평창의 승리 원인에 대해 국내 언론에서 다양한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IOC 위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기자는 그 대답을 듣기 위해 6일 저녁 열린 비공개 리셉션과 7일 오전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이어진 집행위원회 회의를 취재했다. 안으로 들어가는 게 통제돼 있어 밖에서 기다리다가 나오는 IOC 위원들에게 질문했다. 지난해 2월 캐나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부터 17개월간 10여 차례의 IOC 관련 행사를 빠짐없이 취재하면서 얼굴을 익혀왔기 때문에 그들은 비교적 순순히 답을 해줬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평창의 승리가 확정됐다는 사실이었다. 그 전까지는 극도로 발언을 아끼던 IOC 위원들도 긴장이 풀어진 듯, 활짝 웃는 얼굴로 축하와 충고의 말을 쏟아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건 인내였다. “두 번이나 떨어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평창의 인내가 우리를 움직였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우리를 울리고 웃긴 프레젠테이션이 화룡점정이었다”거나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보증한 것과 수영연맹에서의 스포츠 관련 경험을 역설한 것이 주효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미국 IOC 위원인 앤절라 루지에로(사진)는 겨울올림픽 아이스하키 은메달리스트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그는 올 2월 IOC 조사평가단 일원으로 평창 현지 실사에도 참여했었다. 루지에로는 “한국 국민이 실사단을 열렬히 환영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찌나 우리를 열심히 환영해 주는지 그들의 열정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창의 승리 원인을 ‘진화’에서 찾았다. “평창은 세 번째 유치를 시도하면서 확실한 진전을 보여줬다. 무작정 끈기 있게 계속 신청한 게 아니라 발전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IOC는 최근 몇 년간 러시아의 소치(2014년 겨울올림픽), 브라질의 리우(2016년 여름올림픽)와 같은 새로운 지역에 표를 던져줬다. 루지에로는 그 이유가 그저 그동안 올림픽을 열지 못한 나라들이라서 된 것이 아니라 올림픽이라는 대형 행사를 감당해낼 수 있다는 설득력을 갖췄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평창도 우리에게 스스로의 잠재력을 충분히 설득시켰다. 왜 지금 평창이 돼야 하는지 맥락을 잘 짚어냈고, IOC가 낸 숙제를 해냈다”라고 강조했다. 루지에로는 따끔한 충고도 했다. 그는 “겨울올림픽은 기반시설과 다양한 설상·빙상 종목에 대한 스포츠 저변이 중요하다”며 “평창 올림픽은 한국만의 축제가 아니라 국제적 감각을 갖고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축제로 빚어내야 할 과제가 남았다”고 말했다. “올림픽의 중요한 역할은 다양한 계층의 아이들에게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저변을 건설해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아시아에서의 겨울스포츠 기반 확대의 책임이 평창의 어깨 위에 있다.”

호주 IOC 위원인 리처드 케반 가스퍼(사진)는 “평창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겨울 스포츠의 중심이 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건 올림픽을 잘 치러낼 경우의 얘기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평창이 세 번의 도전을 통해 보여준 끈기와 신뢰를 볼 때 올림픽 개최도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우루과이 출신 훌리오 세자르 마글리오네(사진) 위원은 “평창이 이번에 내세운 ‘새로운 지평(New Horizons)’이라는 슬로건이 유효했다. 겨울올림픽도 새로운 지평을 찾아갈 때가 됐다는 걸 말뿐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보여준 것이 동료 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짚었다.

아시아 위원들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7일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만난 대만의 IOC 위원 우칭궈(吳經國·사진) 국제복싱협회장은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평창이 자랑스럽다. 평창의 메시지도 힘이 있었고 최종 프레젠테이션(PT)은 흠잡을 데 없었다”고 밝혔다. 우 위원은 이어 “아시아의 겨울 스포츠 발전에 평창이 지렛대가 되길 희망한다”며 “1924년부터 열린 겨울올림픽 중 14번은 유럽, 5번은 북미가 독식해왔다. 평창이 이런 역사에 새로운 물꼬를 트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응세르미앙(사진) IOC 부위원장도 6일 IOC 리셉션에서 기자에게 “유치전의 꽃인 최종 PT에서 평창이 유머·감동·휴먼스토리를 각각 버무려 맞춤 PT를 해낸 것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6일 개최도시 기자회견을 마친 후 기자와 따로 만나 “파티는 그만하고 다시 일을 해야 할 때”라는 주문을 했다. “유치에 성공했으니 이젠 개최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시 열심히 일을 해야 할 때다. 7년은 그리 길지 않다.” 평창 관계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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