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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iz] 선구적 기술, 파격적 디자인의 프랑스 ‘푸조’…CEO 뱅상 랑보

중앙일보 2011.07.09 00:21 주말섹션 8면 지면보기



“CEO서 말단까지 앙상블이 중요하다”





유리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자 갈색 구두와 갈색 정장 바지 사이의 양말이 시선을 붙잡았다. 점잖은 최고경영자(CEO)의 초록색 양말-. 색채의 자유를 즐기는 프랑스인다웠다. 유려한 빛깔로 멋을 낸 푸조(Peugeot) 자동차도 떠올랐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 푸조의 CEO 뱅상 랑보(Vincent Rambaud·51)를 만났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에서 라데팡스로 향하는 그랑 아르메 대로변에 있는 이 회사 본사에서였다. 대형 유리로 전면을 꾸민 1층의 차 전시장 옆에 미리 인터뷰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5m 앞에 푸조 508의 검은색 차체가 반짝반짝 빛났다. 인터뷰는 대개 그곳에서 한다고 했다. 푸조의 차들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린 듯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인사를 주고받은 뒤 “인터뷰 이후에 비즈니스 미팅이 잡혀 있어 시간이 충분치 않을지도 모르겠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푸조 차처럼 ‘콤팩트’하게 대화하자”고 대꾸했다. 푸조의 주력이 207 또는 308 모델의 소형 또는 준중형 차량이라는 점에 빗대 약간의 장난기를 섞은 발언이었다. 그러자 그는 “푸조 차를 ‘콤팩트’로 묘사할 때는 반드시, 그 앞에 ‘하이 퀄리티(고급)’나 ‘럭셔리(호화)’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고 응수했다. 이후의 인터뷰에서 그는 508 모델과 같은 중형차도 인기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랑보 사장은 46%의 지분으로 경영권을 쥐고 있는 푸조 창업자 가문과 혈연 관계가 없는 전문경영인이다. 컨설팅 회사와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등에서 일하다 2002년 이 회사로 옮겨와 지난해 8년 만에 사장 자리를 낚아챘다. 푸조는 비행기를 만드는 에어버스, 고속 기차를 만드는 알스톰, 원전 건설 업체 아레바 등과 더불어 프랑스의 대표적 기술집약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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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해 400명의 수재만 선발되는 프랑스 최고의 이공계 그랑제콜 에콜 폴리테크닉(Ecole Polytechnique)을 졸업했다. 이 학교 재학생들은 7월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 때 파리 시내에서 펼쳐지는 퍼레이드의 선두에 선다. 현역 군인들보다도 앞자리다. 이들이 곧 부국강병의 원천이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나폴레옹 시절부터의 전통이다.











공학도 출신답게 그의 입에서 연료 효율성을 높인 기술 혁신과 같은 기계적 성능에 대한 자랑이 주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자동차 회사는 타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언제나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는 등 푸조 특유의 기업정신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했다.



그는 CEO로서의 자신의 역할은 “직원들의 말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모든 사원이 진정으로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과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앙상블(ensemble·함께)’이라는 단어에 특히 힘을 줬다.



●푸조의 경영을 책임지는 자리에까지 어떻게 이르게 됐나. 경력을 설명해 달라.



“자동차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인생이 묘하게 자동차와 관련된 일로 계속 얽혔다. 에콜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2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다. 산업부에서 일하게 됐는데 맡은 일이 르노 자동차의 자문관이었다(르노는 1996년 민영화되기 전까지 공기업이었다. 현재도 프랑스 정부가 1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푸조의 최대 경쟁 업체다). 그 뒤 컨설팅 업체에서 2년쯤 일하고 창업투자회사로 일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가 자동차 엔진의 알루미늄 틀을 만드는 주조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 업체의 운영책임을 맡았다. 그 뒤 푸조-시트로엥 그룹(푸조는 76년 경쟁사였던 시트로엥을 인수합병했다. 랑보는 푸조의 CEO며, 시트로엥의 CEO는 따로 있다)의 자회사로 군용 특수차를 생산하는 파나르 르바소에서 스카우트돼 이 회사를 매각하는 일을 책임졌다.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자동차의 생산과 경영 분야를 모두 경험한 이력을 갖게 됐다.”



●CEO로 발탁된 배경은 뭐라고 생각하나.



“파나르 르바소를 매각한 뒤 푸조-시트로엥 그룹의 남미시장 책임자로 발령을 받았다. 브라질에서 2007년부터 3년 동안 근무했다. 이러한 유럽 밖 시장에 대한 경험이 CEO에까지 이르게 한 것 같다. 서유럽의 자동차 시장은 성장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지금 모든 자동차 회사가 아시아, 러시아를 포함한 동구권, 남미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남미에서 특별한 성과를 보였던 것 아닌가.



“현지 문화를 반영한 자동차 디자인과 마케팅을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내기는 했다. 예를 들면 호가르(Hoggar)라는 주로 남미에서만 파는 소형 픽업 생산을 이끌어냈다. 6개월 전에 이 차의 판매가 시작됐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이 차는 206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픽업이다. 브라질에 서핑 보드를 차에 싣고 다니는 젊은이가 많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었다. 농촌에서도 화물 운반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아시아 등 새 시장 공략의 전략은.



“나라마다 도로 사정이 다르고, 소득 수준이 다르고, 푸조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가 다르다. 이에 따라 각지에서 차별화된 전략을 써야 한다. 유럽적 시각을 일방적으로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신념이다.”



●자동차 회사 CEO는 어떤 자리인가.



“나는 자동차와 관련해 관리·제조·마케팅 등 여러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자동차 사업은 아주 정교한 산업이다. 이 복잡한 산업에서 그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따라서 각 분야 종사자들이 모두 진정으로 협력을 해야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내가 할 일은 모든 직원이 함께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모든 사람의 얘기를 성심껏 들어야 한다. 그리고 각 분야의 말단 직원까지 만나서 얘기하고 듣는 것을 즐겨야 한다. 내가 엔지니어 출신이라 기술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안다는 게 모두 함께 일하자고 외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현재 CEO로서의 최대 고민은 무엇인가.



“첫째는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푸조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둘째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다. 고급 차로서의 푸조 이미지가 잘 부각되지 않은 곳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세대 전에 한국에 처음 도입된 푸조는 505 모델의 중형차였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 중대형 수입차는 주로 독일산이 차지하고 있고, 푸조는 소형이나 준중형급만 주로 팔린다. 한국 젊은 층 사이에서의 푸조 이미지는 ‘예쁜 차’ 정도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도 그 점을 고민하고 있다. 전체적 시장의 수요는 분명히 고급 콤팩트 승용차 쪽으로 점점 더 옮겨가고 있다. 그 점에서 푸조의 미래는 밝다. 하지만 중형급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브랜드 이미지에도 중요하다. 다행히 우리의 중형급 새 모델인 508이 세계 시장 전체로 볼 때 기대치보다 30% 이상 더 팔리고 있다. 앞으로 계속 경쟁력 있는 중형차들이 생산될 것이다.”











●푸조가 주로 디젤 차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도 한국 시장에서 장벽으로 작용한 면이 있다. 물론 한국 시장도 요즘은 변하고 있다. 앞으로 디젤 차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프랑스에서는 디젤 승용차가 시장 점유율 75%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 유럽 시장에서는 66%다. 508 모델 등에 이미 우리는 디젤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해 호평을 받고 있다. 올 하반기에 3008에는 더욱 새로워진 디젤 하이브리드 엔진을 장착해 내보낼 것이다.”



●세계 승용차 시장에 대한 전망은.



“지역에 따라 추이가 조금씩 다르다. 유럽 시장은 전체 규모에서 큰 변동을 보이지 않지만 소형차를 몰던 사람들이 그보다 약간 큰 차로 옮겨 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러시아·브라질이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는 준중형급인 408과 508이 인기다. 전체적으로 보면 세계 승용차 시장은 매우 낙관적이다.”



●전기 차가 어느 정도나 시장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나.



“가까운 미래에 시장에 큰 변동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예측한다. 유럽 시장에서 2020년에 약 5%를 차지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보다도 점유율이 낮을 것이다.”



●한국 시장에서 외국산 승용차 판매 비중이 점점 커가고 있다. 푸조의 판매 상황은.



“지난해부터 한국에서 외국산 승용차의 판매 비율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받았다. 올해 5월 말까지 한국에 수입된 외국산 승용차는 총 4만2700여 대로 파악하고 있다. 푸조도 올해 현재까지의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크게 불어났다. 특히 새로운 유형의 크로스오버차인 3008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



●향후 푸조의 목표와 전략은.



“2015년까지 판매 수량 면에서 세계 7위에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는 9위권이다. 우리는 기술력 면에서도 독일이나 일본 차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 위에 뛰어난 디자인과 스타일이라는 우리 특유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항상 고객이 차에서 받는 정서적 느낌을 고민한다는 것이 푸조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푸조의 색다른 고집



200년 된 후추 분쇄기 생산

지금도 꿋꿋이 유지해










1896년 푸조 자동차를 설립한 아르망 푸조(1849~1915).



푸조의 뿌리를 알아 보려면 18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작은 장프레드릭과 장피에르 푸조 형제가 세운 철강공장이었다. 톱날과 시계용 용수철 등으로 시작해 나중엔 후추 및 커피 분쇄기·재봉틀, 심지어 엽총까지 만들었다. 돈이 되면 뭐든 손대던 시절이었다. 1819년엔 ‘푸조 형제 회사’라는 간판을 걸고 ‘푸조’ 상표에 대한 특허도 냈다.



 1889년 직원 1100명 규모로 성장한 푸조는 자동차 제작에 나선다. 창업자의 손자인 아르망 푸조가 이끌었다. 1871년 자전거사업 진출에 이은 창업 3세의 두 번째 도전이었다. 푸조의 첫 자동차인 ‘타입1’은 삼륜차로 증기기관을 얹었다. 그런데 너무 시끄럽고 덜덜거려 4대만 만들고 접었다. 이듬해 독일 다임러의 엔진을 얹은 ‘타입2’가 나왔다. 부잣집 도련님이던 아르망 푸조에게 모터스포츠는 지나칠 수 없는 흥밋거리였다. 그는 타입2를 장거리 레이스에 출전시켰다. 푸조 타입2는 2212㎞의 코스를 거뜬히 완주했다. 1894~95년 잇따라 경주에서 우승하면서 주문이 쏟아졌다. 1896년 아르망 푸조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푸조 자동차를 설립했다. 로열티를 아끼기 위해 엔진 개발에도 나섰다.



 이후 푸조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발상으로 ‘세계 최초’를 여러 개 이끌었다. 1912년 DOHC 엔진, 29년 독립식 앞 서스펜션, 34년 철판 지붕을 씌운 컨버터블이 대표적이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 만든 차답게 디자인도 늘 앞서 나갔다. 헤드램프를 그릴 속으로 넣는 파격도 서슴지 않았다. 유행에 개의치 않고 푸조만의 스타일과 방식을 고집한 것도 특징이다. 이후 푸조는 시트로엥·르노와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며 사세를 키워 갔다. 70년대는 푸조에 ‘확장’의 시기였다. 76년 시트로엥을 품에 안은 데 이어 78년엔 크라이슬러 유럽 부문까지 인수했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91년엔 무리한 사업 확장의 여파로 미국 시장에서 발을 빼기도 했다.



 창업 후 푸조는 고비가 닥칠 때마다 신차를 히트시키며 위기를 헤쳐 나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불황으로 푸조는 한때 자동차 생산을 중단했다. 그러나 48년 내놓은 ‘203’이 성공하면서 벌떡 일어섰다. 55년 선보인 ‘403’은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시트로엥과 한 지붕 식구로 거듭난 과도기엔 ‘205’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5년 연속 적자에 마침표를 찍었다. 고성능 버전인 ‘205T16’은 각종 랠리의 우승컵을 싹쓸이하면서 회사의 명성을 높였다.









푸조가 생산한 커피 및 후추 분쇄기.



오늘날 푸조의 경쟁력은 매끈한 승차감과 경쾌한 회전 감각, 정교한 친환경 기술에서 찾을 수 있다. 서스펜션에 공을 들인 결과 푸조는 앞바퀴 굴림 차의 핸들링 성능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2000년엔 디젤미립자필터(DPF)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직분사 디젤엔진(HDi), 수동과 자동변속기의 장점을 합친 MCP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이 회사의 차 이름은 가운데 ‘0’이 들어간 숫자로 구성된다. 첫 번째 숫자는 차의 크기, 마지막은 세대를 뜻한다. 포르셰가 1963년 신차 이름을 ‘901’로 정했다가 푸조의 특허권 소송에 못 이겨 ‘911’로 바꾼 일화가 유명하다.



 한국엔 87년 처음 들어왔다. 하지만 97년 철수했다가 6년여의 공백을 거쳐 한불모터스가 수입을 재개했다. 현재 국내에선 ‘207(해치백·컨버터블)’과 ‘308(해치백·왜건·컨버터블)’, ‘508(세단·왜건)’, 크로스오버 차 ‘3008’, 스포츠 쿠페 ‘RCZ’ 등이 팔리고 있다. 올 하반기 국내에 들어올 예정인 ‘3008 하이브리드4’는 세계 최초의 디젤 하이브리드 자동차다. 2.0L 직분사 디젤터보엔진이 앞바퀴, 전기모터가 뒷바퀴를 굴리는 사륜 구동차이기도 하다.



 푸조는 고집이 대단한 회사로도 유명하다. 200년 전 사업을 지금까지 꿋꿋이 이어오고 있다. 후추 분쇄기가 대표적. 유럽의 번듯한 레스토랑에서 테이블 위에 놓인 후추 분쇄기를 뒤집어 보면 ‘푸조’란 글자가 선명히 각인돼 있는 경우가 많다. 1889년 이래 모터사이클(스쿠터)도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엠블럼은 예외다. 푸조를 상징하는 사자는 상당히 자주 ‘성형수술’을 받은 편이다.



김기범 중앙SUNDAY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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