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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오바마의 독백

중앙일보 2011.06.29 00:23 종합 34면 지면보기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내가 2년 반 전 취임할 당시 MB(이명박 대통령)가 축하전화를 걸어왔어.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그가 맘에 들었어. 그는 내가 어린 시절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소상히 알고 있었어. 또 내가 시카고에 살던 당시 만났던 한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어. 알고 보니 그는 나와 통화하기 전 『담대한 희망』 같은 내 저서들을 숙독하며 ‘열공’을 했다고 해. 100개 넘는 나라 정상들과 만나봤지만 MB처럼 내게 세심하게 관심을 갖고 친구로 대한 이는 드물었어.



 MB는 내 전임자(부시) 시절 ‘이혼 직전의 왕과 왕비’란 말까지 나왔던 한·미동맹을 복원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어.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에 한국군 수백 명을 파병했고, 한국엔 큰 시장인 이란에 경제제재를 가해 나의 세계전략에 큰 도움을 주었어. 정파를 달리했던 전임자(노무현)의 작품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자기 자식인 양 매달려 국회 비준만 남겨둔 상태야.



 나도 이런 그의 노력에 화답해 워싱턴이 독점해온 북핵 협상 주도권을 서울에 넘겨줬어. 이러다 보니 나와 MB는 ‘MBAMA (MB+OBAMA)동맹’이란 말을 들을 만큼 끈끈한 관계가 됐어. 사실 엄연히 나라가 다른데 한·미 사이에 왜 갈등이 없겠어. 그래도 나는 내 부하들에게 “MB를 불편하게 할 일은 아예 하지 말라”고 못 박았어. 그 뒤로 한·미 관리들은 어떤 현안에서도 ‘동맹 우선’ 원칙 아래 원만히 타협하는 기조를 지켜왔어.



 최근 나와 MB의 우정을 또 한번 시험대에 올리는 이슈가 등장했어. 북한과의 대화 문제야. 우리 내부에서 “북한과 대화가 끊긴 채 2년 반이 흘렀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어. 어떻게든 북한과 말문을 트라는 거야.



 그래서 일단 북한이 우리에게 요청해온 식량 지원에 응하면서 간접적이나마 대화를 재개하는 방안을 택했어. 올 하반기엔 내 임기 중 처음으로 미·북 관리가 마주 앉아 핵 문제를 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하지만 분명한 전제가 있어. ‘MB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틀 안에서만 북과 대화할 것이란 점이야. 일본이 추락하고 중국이 급부상한 동북아에서 산업화·민주화를 고루 이룬 경제강국 한국은 우리의 핵심 파트너가 돼 있어. 이런 한국을 따돌리고 어설프게 북한과 대화에 나섰다간 그들의 특기인 사술에 휘말려 핵 문제 해결 대신 한·미동맹 약화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그러면 우리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내년 대선에서 내 재선에 빨간불이 켜지는 거지. 그렇다고 북한과 대화를 포기할 수도 없어.



 나의 해결책은? MB가 유연성을 보여주리란 기대야. 한국의 지도자로서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공격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걸 이해해. 하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한국만이 아닌 국제적인 관심사야. 그가 더욱 슬기를 발휘해 한편으론 북한의 만행을 해소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들을 6자회담에 복귀시킬 묘책을 찾을 것으로 믿어마지 않아. 우리도 이런 그의 노력에 최대한 협조할 거야.”



강찬호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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