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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포퓰리즘 다시 보기

중앙일보 2011.06.29 00:23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포퓰리즘(Populism)을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대중주의·인기영합주의로 번역되는 포퓰리즘은 나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념이자 운동이다. 포퓰리즘을 정치인들이 인기를 얻기 위해 즉흥적인 정책을 생산할 때 써먹는 버팀목 정도로만 봐서는 안 된다.



 포퓰리즘 하면 우리는 주로 중남미 포퓰리즘을 떠올리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우리 사회의 집단적 두려움 중 하나는 상당수 중남미 국가처럼 ‘포퓰리즘 때문에’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는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의 종류는 다양하다. 좌파 포퓰리즘도 있고 우파 포퓰리즘도 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포퓰리즘의 특색도 다르다. 포퓰리즘에 대한 평가도 각양각색이다.



 종류·평가는 다르지만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밀접하다. 포퓰리즘에서 권위주의만을 연상하는 것은 오류다. 민주주의와의 관계에서 포퓰리즘은 여러 가지로 이해된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한 단계, 민주주의의 속성 중 하나, 민주주의 그 자체, 민주 이념의 한 유형으로 파악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정치학자들의 수만큼 나올 수 있는 것처럼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포퓰리즘은 대체적으로 엘리트주의와 대칭을 이룬다. 포퓰리즘은 사회가 흔들릴 때, 부와 권력이 소수의 정치·경제 엘리트에게 집중될 때 등장한다. 특히 기존 정치권, 정당들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할 때 포퓰리즘은 제3의 정당이나 정치 운동의 흐름으로 등장한다. 포퓰리즘은 어떤 형태로든 부와 권력의 재분배, 재구성을 표방한다.



 오늘날 포퓰리즘은 전 세계적으로 득세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포퓰리즘이 등장한 유럽에서는 프랑스·이탈리아·노르웨이·핀란드 등 15개 국가에서 포퓰리즘 정당들이 의회 의석을 확보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국민의 포퓰리즘 정서를 수용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중남미 포퓰리즘 못지않게 유럽 포퓰리즘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반(反)이민·인종주의·반(反)유럽연합 정서 때문이다.



 시선을 미국으로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가 더 많다. 미국에는 포퓰리즘의 인기가 부침을 겪어왔다. 80년대 중반, 90년대 중반에 포퓰리스트로 인식되는 것은 정치인들에게 흉이라기보다 훈장에 가까웠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로널드 레이건, 지미 카터 등은 포퓰리스트로 인식되기도 한다. 지금은 포퓰리즘의 인기 상승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그 반대쪽 보수 유권자 단체인 티파티(Tea Party), 세라 페일린도 포퓰리즘의 범주에 들어간다.



 지금 미국 포퓰리즘은 분노를 먹고 자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재계를 공격하는 데 국민의 분노를 동원했다. 티파티는 전통적인 미국의 모습이 사라지는 데 분노하는 유권자들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공화당은 문화·사회 포퓰리즘, 민주당은 경제 포퓰리즘을 구사해 왔다. 미국 포퓰리즘은 ‘편가르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경제 포퓰리즘은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대기업의 갈등을 부추긴다. 사회·문화 포퓰리즘 또한 전통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골을 깊게 했다. 최근 추세 중 우려할 만한 점은 정부·대기업을 싸잡아 미워하는 포퓰리즘 기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포퓰리즘이 상륙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포퓰리스트가 된 사람들도 있다. 포퓰리즘의 단어장에는 보통사람, 민의, 민생, 민중, 대중과 같은 말이 등장한다. 이런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정치 수사의 측면에서는 포퓰리스트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정치 지형에서 포퓰리즘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상대편을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면 선거에 유리할 수도 있다. 반대로 ‘포퓰리즘이면 어때’라는 정서가 형성될 수도 있다. 어쨌든 앞으로 한국 정치에서 ‘포퓰리즘 대책’ 없는 대선·총선 승리는 없다.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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