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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이미지 정치로는 부족하다

중앙일보 2011.06.29 00:21 종합 35면 지면보기



현장 목소리 듣는 건 좋으나
한쪽만 들으면 정책 왜곡
개인 민원보다 큰 틀에서
규제 풀고, 일자리 만들어야



김진국
논설실장




‘부자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굴까. 당연히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의 오너들이다. 미디어리서치가 최근 이런 뻔한(?) 설문조사를 했다. 재미있는 건 이명박(MB) 대통령이 3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에서 재산이 많은 건 사실이다. 2009년 7월 331억원을 출연해 청계재단을 만들고도 올해 54억9600만원을 신고했다. 그래도 이걸 다 합쳐봐야 대기업 오너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런데도 ‘부자 MB’로 인식되는 건 이미지 때문이다.



 정치인에게는 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미지다. 부자라는 낙인이 찍히면 무슨 일을 하건 부자 정책이라는 오해를 사게 된다. 더구나 MB는 집권 초기부터 ‘고소영’ ‘강부자’ 내각에 ‘부자 감세’ 딱지까지 붙었다. 이런 선입관을 털어내는 게 참모들의 큰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택배 박스까지 나르는 건 뭔가. 지난주 MB는 한 택배회사를 찾아 상자들을 날랐다. ‘삶의 체험 현장’에서 서민들과 함께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통령이 택배 창고를 찾기 전 벌어졌을 소동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물류 흐름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호 때문이다. 대통령 경호는 0.01%의 위험도 용납할 수 없다. 현장의 기사들 신원조회는 물론이고 창고에 있는 박스들도 모두 보안검색을 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 옮긴 상자들은 철저히 뒤졌을 것이다. 친(親)서민 대통령을 TV에서 보여주기 위한 비용이다.



 MB는 취임 이후 수시로 시장을 찾았다. 무 시래기·붕어빵·뻥튀기를 사고, 국수와 떡볶이를 먹고, 노점 할머니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기도 했다. 비록 정치 이벤트라 해도 MB 역시 잠시나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서민들 가까이 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MB는 앞으로 매달 이런 행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 직종을 찾아가 현장 목소리를 듣고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택배기사들의 산재보험 혜택 부여, 운송료 배분, 주차단속 완화 등의 건의를 듣고 즉석에서 검토를 지시했다. 어려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벤트의 달콤함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맹자는 이런 행동을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를 모른다(惠而不知爲政·혜이부지위정)’고 했다.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자산(子産)이라는 재상의 이야기다. 그가 수레를 타고 진(溱)과 유(洧) 두 강을 건널 때 옷을 벗고 맨발로 강을 건너는 백성을 보았다. 마음이 아팠던 그는 백성들을 모두 태워주라고 했다. 맹자의 생각은 재상이라면 다리를 놓아 백성들이 강을 건너는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야지 자기 수레로 건네주는 일은 평생 해도 다 건네줄 수 없으니 미련한 짓이란 것이다. 수레를 태워주는 걸 위정자의 역할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 다리를 놓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수레를 태워주면 당장 어진 재상이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다. 정치인은 이런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대통령의 힘이라면 어려운 사람들 소원을 매달, 아니 매일 들어주며 선심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간단해 보이는 일에도 이해가 얽히고설켜 어느 한쪽만 도와주다가는 더 많은 사람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또 그럴 때마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



 MB의 정책도 따지고 보면 이런 경우가 의외로 많다. ‘반값 아파트’는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시민에게 세금으로 돈을 안기는 ‘로또’가 되고, 매매 대기 수요 증가로 전셋값만 올려 서민을 괴롭히는 정책이 되고 말았다. MB는 “대기업 캐피털이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으면 나쁘다”며 이자율을 낮추게 했지만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돈을 빌리기는 더 어렵게 만들었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한마디로 정유회사의 손목을 비틀어 인기를 얻을 것 같았지만 내린 효과는 미미했는데 오를 걱정이 더 크다. 어느 것 하나 오랫동안 걱정을 덜어줄 튼튼한 다리는 되지 못했다.



 MB는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란 말을 곧잘 한다. 하지만 그는 수백만, 아니 수천만 분의 1명꼴인 성공한 사람이다. 열에 아홉은 실패하는 일반인에게 그런 말은 오히려 좌절을 가져다줄 수 있다. 길을 가다 시간이 나면 힘든 백성을 수레에 태워줄 수 있다. 그렇지만 다리 놓는 걸 잊으면 안 된다. 핵심은 일자리다. 그러기 위해선 서비스업 규제를 풀어야 한다.



김진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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