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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하다” 퇴정 … 죄책감 없는 누온 체아

중앙일보 2011.06.29 00:12 종합 14면 지면보기



170만명 학살 ‘킬링필드’ 재판



고문과 대량학살 등 혐의로 기소된 누온 체아 전 캄보디아 공산당 부서기장이 모자를 쓰고 색안경을 낀 채 28일 프놈펜에서 열린 유엔 캄보디아 특별법정에서 첫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재판 도중 “불쾌하다”며 퇴정해 버렸다. [프놈펜 AP=연합뉴스]





모자와 색안경 차림에 수갑도 차지 않고 법정에 선 85세의 마오주의 이론가는 당당했다. 자신이 설파한 이론으로 인해 적어도 170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전혀 죄책감이 없어 보였다. 크메르 루주(Khmer Rouge) 공산정권(1975~79)의 2인자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은 기어이 “공판이 불쾌하다”며 퇴정해 버렸다. 그와 함께 크메르 루주 정권을 이끈 키우 삼판(79) 전 국가주석, 이엥 사리(85) 전 외무장관, 이엥 티리트(79) 전 내무장관은 지난 27일 유엔 캄보디아 특별법정(ECCC)에서 재판을 받았다. 크메르 루주 정권이 저지른 대량 학살에 대한 단죄가 32년 만에 시작된 것이다.



 이들이 캄보디아를 이끌던 당시의 비극은 영화 ‘킬링필드’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과격 마오주의 정파인 크메르 루주는 75년 권력을 잡은 뒤 사회 개조를 명분으로 지식인·전문직 종사자를 고문·숙청·살해했다. 집단농장에서 가혹한 노동을 시키는 등으로 전 국민의 4분에 1에 달하는 170만 명 이상을 학살하거나 질병·영양실조 등으로 죽게 했다.









왼쪽부터 키우 삼판, 이엥 티리트, 이엥 사리.



 이번 재판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끝에 이뤄졌다. 97년 캄보디아 정부는 유엔에 재판을 의뢰했다. 하지만 정작 훈 센 캄보디아 총리는 재정 부담과 내전 위험성을 들며 재판에 소극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재판 절차가 시작됐지만 캄보디아 관리들은 재판의 적법성을 문제 삼았다. 당시 장군 등에 대한 추가 기소도 훈 센의 반대에 부딪혔다. 현재 캄보디아엔 2만여 명의 크메르 루주 출신 군인·당원들이 자유롭게 살고 있으며 상당수는 현 정부에서 일하고 있다.



 결국 유엔이 1억1000만 달러(약 1200억원)의 재판 비용을 댔고 일본·인도 등이 재정을 추가 지원해 재판이 성사됐다. 홍성필(법학) 연세대 교수는 “캄보디아의 예는 한반도 통일 후 북한의 반인륜적 범죄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에 유엔 등 외부적 개입이 필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그럴 경우 중국의 반대가 재판소 설치에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대학살과 반인륜 범죄, 전쟁 범죄, 고문 및 살인 등 혐의를 적용하고 있다. 누온 체아의 변호인은 “재판부 조사가 그에게 불리한 증거 수집에 집중됐고 그가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증거는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재판은 삼엄한 경비 속에 열렸고 500여 명의 방청객이 몰렸다. 재판부는 지난해 7월 악명 높은 투올슬랭 교도소장을 지내며 1만5000명 이상을 고문·처형한 카잉 구엑 에아브(68)에게 징역 35년형을 선고한 바 있다. 정권의 1인자였던 폴 포트는 정권이 무너지자 잔당들과 태국 국경에서 숨어 살다 98년 사망해 이번 재판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번 재판은 ‘세기의 재판’으로 꼽힌다. 그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세르비아·1941~2006)·아우구스토 피노체트(칠레·1915~2006) 등 독재자들이 국제사회에 의해 법정에 섰지만 옛 정권 실세들이 한꺼번에 재판받기는 나치 독일 전범들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1945~46) 이후 처음이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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