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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중국 도시 이야기 ⑧ 광저우(廣州)

중앙일보 2011.06.29 00:03 경제 14면 지면보기



한때 황제의 남녘 금고 역할 … 명품·식도락에 목숨 거는 ‘제국의 시장’





올해는 2133년간 이어진 중국의 황제 지배체제를 무너뜨린 신해혁명 발발 100주년이다. 신해혁명은 우한(武漢) 신군의 봉기로 시작됐지만 주역은 쑨원(孫文·손문·1866~1925)이었다. 광저우(廣州)가 고향인 그의 동상을 앞에 두고 ‘천하위공(天下爲公)’ 현판이 걸려 있는 중산기념당은 광저우의 중심이다. 제국의 상점이자 혁명의 고향이며 요리의 천국 광저우로 떠나보자.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바다와 마주해 외부세계 문물 다양하게 향유



광저우(廣州)는 다유(大庾), 치톈(騎田), 멍주(萌渚), 두팡(都龐), 웨청(越城) 등 다섯 준령(五嶺)의 남쪽, 즉 영남(嶺南) 요지에 위치한 도시다. 중원 문화의 세례를 받은 한인(漢人)들에게 광저우는 지나친 변방이었다.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었다. 제국의 변방 광저우는 죄인의 유배지이기도 했다. 황제로부터는 멀었지만 바다를 마주했기에 외부 세계와는 가까웠다.









광저우는 독특하다. 남월(南越)의 땅 광저우는 중원의 문화를 취사선택해 독자적인 남방문화를 창조했다. 사진은 지난 6일 단오절을 맞아 광저우 리즈( 枝)만에서 열린 용선(龍船) 축제 현장이다. 사진 왼쪽에 광저우 특유의 월극(越劇) 배우들이 노래하고 있다. [중앙포토]






『품삼국(品三國)』이란 독특한 삼국지 해설서를 쓴 이중톈(易中天)은 『독성기(讀城記)』란 저서에서 중국의 도시들을 품평한 바 있다. 그는 베이징은 성(城)이요, 상하이는 탄(灘)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은 정치의 도시, 상하이는 여울과 개방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3대 도시 광저우는 뭘까? 이중톈에 따르면 광저우는 ‘시(市)’다. 장사하는 도시란 뜻이다. 성(城)은 우아하지만 시장은 세속적이다. 중국인은 몐쯔(面子)라는 체면을 중시한다. 광저우 사람들도 체면을 중시하지만 베이징 사람들과는 약간 다르다. 그들은 몐쯔 대신 페이스(菲士)라는 말을 쓴다. 영어 face를 음차한 말이다. 북방의 체면이 정치적이라면 광저우의 체면은 경제적이다. 얼굴이 없을 수 없듯이 광저우 사람은 명품 시계와 명품 안경을 써야 한다. 페이스를 위해서다. 가장 페이스가 있는 사람은 보스(波士)다. 이 역시 영어 boss의 음역이다. 사장, 지도자, 상사는 아랫사람에게 지시를 내린다. 위엄이 넘치니 페이스가 충만하다.



시장으로서 광저우의 역사는 길다. 광저우는 진시황이 점령 후 남해군(南海郡)을 설치하면서 제국에 편입됐다. 한(漢)·당(唐) 시절에는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지로 번성했다. 당나라 시절 광저우항에는 하루 평균 11척, 한 해 4000여 척의 외국 선박이 입항했다. 1년간 연인원 80만 명이 광저우 시장을 누볐다. 멀리 페르시아에서 온 상인들의 집단 거주지 번방(蕃坊)이 설치됐다. 명(明)·청(淸)대에 들어 황제는 바다로 향한 중국의 문을 닫아 걸었다. 쇄국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중국 남해의 대항구 광저우에 시련이 닥쳤다. 청나라 황제는 영리했다. 광저우는 특별대우를 해줬다. 13행(行·독점 상점)을 설치해 외국인과의 교역을 허가했다. 제국의 상점이 부활했다. 광저우 13행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전 중국의 재정수입이 800만 냥 정도였던 청 가경(嘉慶) 10년(1805) 광저우가 걷어들인 관세는 164만 냥에 이르렀다. 천자의 남녘 금고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광저우 상인들은 “우리에게 신이 있다면 그것은 곧 돈이다”라고 외칠 정도의 배금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고통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특유의 츠쿠(吃苦) 정신과 서구 상인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쟁과 개척정신을 한데 녹여냈다. 뼛속까지 장사치가 광저우 상인들이다. 광저우 13행 가운데 이화행(怡和行)의 창시자 오병감(伍秉鑒·1769~1843)은 대표적인 광저우 상인이다. 2001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10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50인을 선정했다. 오병감은 여기에 포함된 중국인 6명 가운데 한 명이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최대 채권자였으며, 동인도회사가 자금이 부족하면 그에게 급전을 요청할 정도의 큰손이었다. 그는 각종 국내 부동산, 차 농장, 점포 등을 경영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철도에도 투자했고, 증권·보험업까지 손을 뻗쳤다. 요즘으로 치면 다국적 문어발 기업의 오너였던 셈이다. 1840년 아편전쟁이 광저우에서 발발하면서 13행의 독점 무역이 끝났다. 오병감의 타고난 재운도 시운을 이기지는 못했다.



오랜 침체기를 거친 제국의 시장 광저우는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에 의해 부활했다. 1992년 초 남순강화(南巡講話)에 나선 덩샤오핑은 광저우 인근 선전(深?)·주하이(珠海) 등을 돌며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며 사회주의 시장경제 도입을 선언했다. 일부 보수파 원로를 향해서는 개혁·개방에 반대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실각시킬 것이라고 외쳤다. 그의 ‘혁명’ 같은 실험은 성공했다.



캔톤 페어(Canton Fair)로 불리는 중국 수출입상품교역회는 제국의 시장 광저우의 부활을 알리는 상징적인 행사다. 1957년부터 봄·가을 두 차례 열리고 있는 캔톤 페어는 지난 5월 4일 109회 행사가 성황리에 끝났다. 전 세계 209개 국가에서 20만7103명의 바이어가 몰려들었다. 캔톤 페어의 규모는 이제 세계 경제의 바로미터로 자리 잡았다. 캔톤 페어는 광저우가 제국의 시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화했다는 증거다.



아편전쟁 이후 혁명의 고향으로









지난 4월15일 광저우에서 열린 109차 캔톤 페어(Canton fair)의 전자제품 부스를 한 바이어가 지나가고 있다. [중앙포토]





중국의 역사를 둘로 나눈다면 어디서 나눠야 할까. 대부분 역사학자들은 아편전쟁이 발발한 1840년을 꼽는 쪽이다. 찬란했던 G1 중화제국이 여타 식민지만도 못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 차(次)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진 기점이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공산당이 재현하고자 하는 부흥(르네상스)의 시점도 1840년 이전이다.



‘바꿈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易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이다. 광둥인들은 독특한 변통(變通)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들은 아편전쟁을 겪으면서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봤다. 강유위(康有爲·1858~1927), 양계초(梁啓超·1883~1929) 같은 걸출한 사상가가 광저우에서 나왔다. 계몽의 고향이 됐다. 광저우는 산맥을 등지고 바다를 향하고 있다. 그들이 모험정신을 갖게 된 이유다.



화려한 제국의 상점이었던 광저우는 아편전쟁 이후 혁명의 고향으로 탈바꿈했다. 천지회(天地會) 반란, 홍수전의 태평천국, 쑨원의 신해혁명, 국민당의 황푸군관학교와 북벌전쟁, 중국공산당의 광저우 기의(起義)를 비롯해 덩샤오핑의 체제 ‘혁명’까지 수많은 변혁이 광저우에서 시작돼 북방을 향했다.



광저우 출신 혁명가인 국부 쑨원은 최고의 혁명 영웅이다. 여기서 문제 하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도로 이름은 뭘까? 정답은 바로 쑨원의 호를 딴 중산로(中山路)다. 총 187개다. 중산로를 포함해 쑨원을 기념하는 이름을 딴 도로는 대만과 중국을 합쳐 도합 326개로 조사됐다. 마오쩌둥로가 없는 것에 비하면 쑨원의 위상은 독특하다. 게다가 각 도시의 중산로는 번화한 도심의 남북을 가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광저우의 중산로는 1925년 그가 서거한 해에 명명됐다. 5·30운동으로 불리는 대파업이 열린 혁명의 발원지다. 베이징에는 지금 중산로가 없다고? 그렇지 않다. 1920년대 천안문 앞 남북 축선이 바로 중산로였다. 신중국 수립 이후 천안문 광장이 조성되면서 중산로가 사라졌다.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 … “메뉴가 5457개”









광저우는 음식문화가 발달한 도시다. 지난 7일 단오축제장 한 편에서 광저우 요리사가 푸짐한 광저우식 바비큐 요리를 만들고 있다. [중앙포토]



‘음식은 광저우에서(食在廣州)’라는 말이 있다. 광저우 사람들은 먹는 것을 무척 중시한다. 먹을거리의 천국이다. 베이징·상하이·쓰촨 요리와 함께 중국 4대 요리로 꼽힌다.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재료가 다양하다. 심지어 거머리까지 먹는다. 뱀 요리도 발달했다. 삵과 뱀을 싸우게 한 뒤 진 쪽을 잡아 요리한 용쟁호투(龍爭虎鬪)란 요리까지 있을 정도다. 하늘을 나는 것, 땅을 기는 것, 물속에 헤엄치는 것 모두 식탁 위에 오른다. 고양이·개·원숭이·뱀·비둘기 모두 먹는다. 그러다 보니 메뉴의 수도 무궁무진하다. 1965년 열린 광저우 요리전람회에서 소개된 메뉴가 5457개에 달했다. 광저우에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유행했던 이유를 무분별한 먹을거리 문화에서 찾기도 한다.



둘째, 요식업의 천국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광저우에 소재한 요식업체 수가 수만 개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대다수가 ‘삼차·양반·일소야(三茶兩飯一宵夜, 모닝 티·애프터눈 티·나이트 티·오찬·만찬·야참)’식 영업을 한다. 24시간 경영을 한다는 뜻이다.



셋째, 전 세계 요리의 집산지다. ‘광저우 음식을 먹는다(食廣州)’가 아니다. ‘광저우에서 먹는다(食在廣州)’는 말이 적확하다. 개혁·개방 이래 무수한 세계적인 유명 레스토랑이 광저우에 분점을 냈다. 한국·일본·베트남·인도·이탈리아 요리 등 전 세계 요리가 한데 모여 있다. 광저우의 요식업 총 매출액은 한 해 수백억 위안을 능가한다. 1인당 연평균 외식비는 중국 넘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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