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벌 아이] 프랑스 한류 열풍 뒤안길

중앙일보 2011.06.28 00:14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상언
파리 특파원




“그곳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며?” 요즘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다. 한국의 지인들이 프랑스를 생각하면 맨 먼저 지난 10, 11일의 K팝(한국 대중가요) 공연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답은 통상 “그게 애매하다”로 시작한다. 그러고는 “인기가 있는 것은 맞는데 한국에서 기대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러면 신문이나 방송의 보도를 열심히 본 인사들은 “프랑스 주요 언론들도 대서특필했다고 하던데…”라고 되받는다. 답변하는 측이 애국심이 부족해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깔고 있는 눈치다.



 소녀시대·동방신기 등 SM타운 소속 K팝 그룹의 공연 중 둘째 날에 3시간30분 동안 무대와 객석을 지켜봤다. 첫날엔 다른 지역에 출장 중이었다. 한국 아이돌 스타들이 등장하자 프랑스 관객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순간 가슴을 ‘찡’하는 울림이 파고들었다. 한국인 또는 한국의 것에 프랑스인 또는 유럽인들이 그처럼 열광하는 것을 난생 처음 본 데서 오는 일종의 감격이었다. 외국 청소년들이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것에 묘한 자부심도 생겼다. 혼신을 다해 춤추고 노래하는 한국의 미남·미녀 동생들이 자랑스러웠다. 이방인, 아주 먼 극동에서 온 동양인으로서 겪는 소외감을 단박에 날려주는 듯했다.



 그 뒤 프랑스 언론을 꼼꼼히 살폈다. ‘주요 공연장 중 하나인 ‘르제니트’의 6700개 객석을 꽉 채운 열광적 공연이 있었는데…’라는 생각에 반응을 기대했다. 하지만 주요 신문·방송에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공연 전에 르몽드와 르피가로가 한류에 대한 기사를 실었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 이 기사들은 각각 도쿄 특파원과 서울 특파원이 주로 한국의 아이돌 스타와 대중가요의 생산 과정에 대해 쓴 것이었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서운해 할 일도 아니다. 지난주 미국의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어스는 파리의 축구장에서 세 차례 공연을 했다. 매번 8만 석의 객석이 가득 찼다. 며칠 뒤에는 미국 가수 프린스가 같은 축구장에서 콘서트를 연다. 8만 석이 이미 매진이다. 이쯤 되니 콧대 높은 프랑스 방송과 신문에서도 약간의 관심을 보인다.



 SM타운의 첫날 공연 인터넷 예매가 15분 만에 다 팔려 표를 구하지 못한 K팝 팬들이 공연 연장을 요구하는 이벤트까지 벌이기도 했지만 아직은 프랑스 인기 가수들이 주로 공연하는 2만 명 규모의 베르시 공연장도 다 채운다는 보장이 없는 게 현실이다. K팝을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 즐기는 프랑스인이 많아야 3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담할 일도 아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의 말처럼 “이제 시작”일 뿐이다. KBS 관계자에 따르면 프랑스의 지상파 방송 중 하나가 올가을에 한국 드라마 ‘아이리스’를 방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한국 가요와 드라마가 ‘한류 시너지’ 효과를 내며 저변을 넓힐 가능성도 있다. 영화를 통해 한국 영상물에 관심을 가진 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는 곳이 프랑스다. K팝 8만 관객 시대, 실현 불가능한 환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상언 파리 특파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