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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구겐하임

중앙일보 2011.06.28 00:11 종합 31면 지면보기








예술가에게 재능 못잖게 필요한 게 후원자(patron)다. 밀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재능도 꽃피울 수 있는 법. 메디치 가문이 없었다면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단테, 갈릴레이 같은 사람도 무명으로 스러져 갔을지 모른다. 스위스 태생의 유대인 솔로몬 구겐하임(1861~1949)은 미국으로 이민 와 구리광산업으로 성공한 뒤 미술가들을 적극 도왔다. 192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의 가난한 작가들을 격려하며 그림을 사줬다. 수집한 그림을 혼자 즐기기 아까워 동네 주민들에게 뉴욕의 아파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성전(聖殿) 구겐하임미술관은 이렇게 시작됐다.



 현재의 건물은 1959년 완성됐다. 설계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술관을 지어 달라는 구겐하임의 편지를 받은 그는 16년간 고민한 끝에 달팽이 모양의 나선형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간 뒤 계단이 없는 경사로를 따라 걸어 내려오면서 감상하면 좋다. 비구상 작품을 주로 취급하는 이곳의 전시회를 보면 현대미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소장품은 회화·조각·그래픽아트 등 3000여 점에 이른다.



 이곳을 언급할 땐 이 사람 이름도 빠뜨려선 안 된다. 그의 조카딸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이다. 작가들을 후원하는 열정이 삼촌을 능가했다. 상속받은 엄청난 재산을 작품 수집하는 데 ‘탕진’했다. 피카소·칸딘스키·샤갈·클레 등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하게 된 배경이다. 그녀는 단순한 컬렉터가 아니었다. 작가들과의 폭넓은 교류가 연인관계로도 자주 발전하며 현대 미술의 신조류 형성에 일조하기도 했다. 구겐하임은 미술관의 글로벌 경영에서도 선구자다. 페기가 30년이나 살았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1979년 ‘페기 구겐하임’을 열었고, 97년엔 스페인 빌바오와 독일 베를린에도 ‘분점’을 냈다. 쇠락한 공업도시 빌바오는 미술관 하나가 생겨서 도시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 좋은 사례다.



 앞으로 석 달간 뉴욕 구겐하임의 주인공은 이우환(75) 화백이다. 9월 28일까지 이곳을 몽땅 차지한 채 ‘무한의 제시(Marking Infinity)’전을 연다. 아시아 작가로는 백남준(2000년), 중국의 차이궈창(蔡國强·2008년)에 이어 세 번째다. 뉴욕타임스는 “올여름 구겐하임은 피곤에 찌든 대중에게 고요한 오아시스를 선사한다”는 리뷰를 실었다.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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