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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1.06.28 00:02 경제 8면 지면보기






박태욱
대기자




지난달 말, 가까운 미래 우리 사회의 모습을 예견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보고서가 나왔다.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는 정부 관련부처 의뢰를 받아 내놓은 ‘100세 시대’에서 ‘보수적으로 잡아도 2020년이면 최빈사망연령(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연령대)이 90세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전 주 한 생명보험사의 고위 임원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그가 ‘58년 개띠’의 최빈사망연령은 얼마쯤 될 것 같은지 아느냐는 질문을 던져왔다. ‘글쎄 90쯤’이란 대답에 그가 일러준 추정치는 ‘96세’였다. ‘58년 개띠’라면 이른바 1차 베이비붐세대 중에서도 가장 숫자가 많다는 1958년생을 이르는 속칭. 나와 몇 살 터울 안 나는 터라 얼핏 어림해 보니 내 또래라면 95세는 족히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남녀의 평균기대수명 편차를 감안할 경우 사고만 없다면 남자 92세, 여자 98세(물론 만 나이로)가 최빈사망연령이라는 얘기다. ‘그렇게나? …’ 이게 당시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앞서 경사연의 보고서에서 나온 설문조사도 이런 추이에 대한 당혹스러운 느낌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10명 중 4명(40.1%)이 ‘100세 시대(최빈사망연령이 90대가 되는 시점으로 정의)’는 ‘축복이 아니다’라고 대답했고 ‘축복’이라는 응답은 32.9%에 그쳤다. 무엇보다 불안한 것(중복응답)은 건강(89.2%)과 생활비(76.8%)였고, 63.2%는 국가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21세기 벽두 77세였던 최빈사망연령이 2008년 기준 85세, 2020년엔 90세로 늘어나는 현실 속에 ‘제대로 대비한다(7.5%)’는 응답이 나온 게 기이할 정도였다.



 지난 2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서울에서 발표한 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66세 이상 빈곤위험(중간소득의 절반 이하)은 OECD 평균보다 2~3배 높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날 나온 정부 재정정책 자문단의 보고다. ‘재정수입을 늘리거나 다른 것을 줄이지 않으면 고령화 관련 지출로 재정은 지속적으로 악화될 것’이라며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령화 관련 지출은 2010년 6.0%에서 2050년 17.8%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도 복지 선진국들에 미치지 못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80세쯤을 생각하고 짠 제도가 90세를 넘어 100세로 치닫는다면. 그 것도 머지않은 장래에.



 예상을 능가하는 고령화는 예상을 뛰어넘는 부담으로 직결된다. 지난해 ‘노인대국 일본이 옆에 있는 건 행운’(2010.8.16)이란 글을 이 난에 쓴 적이 있다. 그때 빗대 말하고 싶었던 건, 나이가 적을수록 자신이 낸 돈에 비해 적게(연금·의료 등) 돌려받는 구조가 지속 가능하겠느냐는 것, 그리고 그 갈등이 일어나선 안 될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될 소지가 너무 크다는 것, 그러니 일본의 예를 보면서 자중할 필요가 있겠다는 것들이었다. 받아서 싫다 할 사람 없다지만, 그게 결국 국민이 영속적으로 부담할 돈이라면 정도와 선후를 따져 문제 커지기 전에 생각해보잔 얘기였다.



 자꾸들 돈이 있는 듯 말한다. 이른바 보편적 복지가 핫 이슈가 되면서 요즘 걸핏하면 재원으로 들먹거리는 것이 ‘4대 강 예산’과 ‘부자감세 철회’다. 눈앞만 본다면 그게 재원으로 보일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상당 부분 일회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대한 몰이해나, 증감을 조삼모사(朝三暮四) 식으로 헤아리는 숫자놀음, 또는 사회적 갈등을 부추겨 판짜기에 써먹으려는 저급한 정략에 불과하다. 내가 보는 한 현재 우리가 가진 장기적 재원 확보 수단은 부가세 인상밖에 없다. 10%의 부가세를 선진국 평균인 19%까지 끌어올릴 때 현 가치로 연 50조원 정도가 생긴다. 그건 말도 못 꺼내면서 쓰자는 데는 자꾸 불어난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말 그대로 생존과 직결된 노령화는 물론, 통일 부담도 시시각각 다가온다. 분명히 선택이어야 할 대학 과정까지 보편적 복지의 일환으로 몰아대는 저간의 행태를 보면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그게 현 시점에서 최선의 재정투여 대상이냐고, 근데 그 돈은 누가 댈 거냐고.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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