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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나는 약이다’ 프로그램 있다면 …

중앙일보 2011.06.27 05:34 건강한 당신 6면 지면보기
‘나는 가수다’(나가수)라는 TV 프로그램이 화제다. 가수의 본질인 가창력을 최우선으로 해 출연진을 섭외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 여겨진다. 모처럼 실력 있는 가수들의 경연을 감상하면서 기자는 ‘나는 약이다’(나약)라는 프로를 머릿속에서 기획해봤다.



 ‘나가수’처럼 일곱 후보를 모은다면 누구를 불러야 할까? 최근 의약외품으로 재분류돼 유명세를 탄 박카스·마데카솔…? 대중적인 약이지만 난치병을 고쳐 생명을 구한다는 의약품의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국내에서 개발한 의약품 중엔 대상이 떠오르지 않아서다.



 전 세계에서 후보를 찾기로 했다. 기준은 ‘나가수’의 가창력에 해당하는 약효다. 많은 생명을 구한 약에 대해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데뷔한 지 7년은 지난 약을 대상으로 한다는 선발기준도 세웠다. 출시 뒤 7년은 지켜봐야 효과와 안전성을 논할 수 있다고 봐서다.



 ‘나약’의 오프닝 주자는 얀센사의 ‘벨케이드’다.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하겠지만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다. 국내에서만 수백~수천 명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벨케이드’와 약효가 비슷한 경구약(레블리미드)이 있지만 한 해 늦게 나와 이번 무대에선 제외시켰다.



 다음엔 화이자사의 ‘엔브렐’이 출연한다. 류머티스 관절염·강직성 척추염 환자에게 처방되는 이 주사약은 관절 염증을 유발하는 종양괴사인자의 작용을 억제하는 신개념 약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바이오의약품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국내 제약계의 화두인 ‘바이오시밀러’(biosimilars, 복제 생물의약품)의 상당수가 ‘엔브렐과 닮길(similar) 희망하는 제품’이다. 경쟁 약인 레미케이드·휴미라가 나와 있지만 이들은 다음 번에 부르기로 했다.



 이어 릴리사의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 ‘시알리스’를 무대에 올리겠다. “생명을 구하는 약이 아니고 해피 드러그(happy drug)일 뿐인데…”라며 야유하는 관중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성의 삶을 바꾸는 데 기여했고 주사약이 아닌 먹는 약이란 점이 높이 평가됐다. 이보다 앞서 나온 ‘비아그라’는 소속사(제약회사) 배분 원칙 때문에, 그리고 1960년에 개발돼 ‘성의 혁명’을 이끈 먹는 여성 피임약 ‘에노비드’ 는 ‘시알리스’의 탈락을 대비해 남겨뒀다.



 네 번째는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바이엘사의 아스피린이다. 조용필이 ‘나가수’ 무대에 선 것과 다름없다. 이 ‘세기의 명약’이 ‘나약’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고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원래 해열진통제로 개발됐으나 요즘엔 용량을 줄여 심장병 예방약으로 주로 쓰인다는 점도 높은 평점을 받았다.



 뒤 이어 서양에서 아스피린 이후 최고의 신약으로 칭송받는 스타틴계 고지혈증 치료제의 일종인 아스트라제네카사의 크레스토를 내보낸다. 같은 스타틴계 약인 리피토·조코 등도 있지만 ‘1사(社) 1제품’ 원칙 때문에 일단 배제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인 스타틴은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을 막아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여섯 번째 출연자는 인류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상용화된 이 약이 군인 등 수많은 사람을 감염병으로부터 구해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대미(大尾)는 노바티스사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장식한다. 10년 전에 개발된 이 약은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최초의 표적항암제다. 약을 복용한 환자의 평균 기대수명은 25년에 달한다.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제니퍼’, ‘가을동화’의 ‘은서’가 앓은 병이므로 배경음악으론 ‘러브스토리’·‘가을동화’의 OST가 제격일 것 같다.



  가상 캐스팅을 하고 나니 힘이 빠진다. 우리 국적의 약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의사·약사·생명공학자와 혜안을 가진 제약회사 CEO가 있어야 ‘위대한 탄생’은 가능하다. 수퍼마켓 약 판매 등 ‘지엽적인’ 문제로 의사·약사가 다툼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힘을 합해 ‘나약’에 내보낼 만한 스타 하나쯤 발굴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아닐까.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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