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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 (4) 건축가 황두진

중앙일보 2011.06.27 00:18 종합 22면 지면보기



홍대·가로수길 매력 있잖아요…저층에 보행자 중심이니까요



건축가 황두진(오른쪽)씨는 서울에 관심이 크다. 대도시를 떠나 살기 힘든 게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빌딩숲도 요즘 아이들에게는 자연과 같다고 했다. 그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서울 통의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만나 “앞으로 사회의 건축은 짓고 팔고 사는 논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아파트 평수로 사람을 평가되던 시절이 있었다. 성장과 속도의 개발 시대 얘기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것은 극소수의 열망에 그쳤다. 집은 있었지만 집에 대한 논의는 일천했다. 요즘 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획일화한 아파트 문화에 대한 반성이 높아졌다. 나아가 쾌적한 도시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집과 학교, 관청과 공원, 사무빌딩 등 일상공간의 질(質)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여유를 갖고 세상을 둘러보기 시작했다는 뜻이 있다. 건축가 황두진(48·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씨는 스스로 ‘동네건축가’라 부르며 서울과 도시 건축의 가능성을 얘기해왔다. 그를 만나 우리 시대 건축과 도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재승=서울 얘기부터 해보죠. 건축가로서 서울을 어떻게 보나요.



 ▶황두진=서울만큼 여러 일이 복합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일어나는 도시가 없어요. 혹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빨리 노화되고 있는 곳’이라고도 하죠. 건축가에겐 매우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다양한 가능성이 잠재돼 있으니까요. 600년 역사를 기억하는 곳이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정=삶과 공간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죠. 우리 건축에 반영된 삶은 어떤 것일까요.



 ▶황=고도성장기를 거친 우리 사회는 성찰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물량 공급만 있었죠. 양(量)의 건축은 있었으나 질(質)의 건축은 아니었죠. 아파트는 급속히 팽창하는 인구를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었죠. 그 역할은 훌륭히 해냈지만, 우리 삶을 성찰하지는 못했어요. 이젠 원점으로 돌아가야 해요. 개개인의 삶의 질은 물론, 사회 자체가 에너지를 적게 쓰고,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죠.



 ▶정=좋은 도시란 어떤 곳인가요.



 ▶황= 적절한 밀도를 유지 하는 것, 건물에 복합기능을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20세기에는 단일 용도의 건물만 지었어요. 일, 공부, 살림 이렇게 공간의 역할이 정해져 있었죠. 하지만 앞으로는 주거, 건물, 사무실을 잘 담아낸 복합건물이 필요합니다. 직장과 집의 거리를 단축시켜야 해요. 구도심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에 서울시청 이전 얘기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이전하지 않은 건 아주 잘한 일 같아요.



 ▶정=왜 그렇죠.



 ▶황=구도심이 움직이면, 도시 기능이 쇠락하거든요. 역사가 있는 곳이 바로 구도심입니다. 구도심이 몰락한 도시는 미래가 없어요. 20세기에는 도시 거주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있었지만 요즘 신세대에게 빌딩숲은 제2의 자연입니다. 지금부터 도시에 재미있는 걸 만들어낼 수 있어요. 도시에서 자연을 접할 수 있도록 작은 공원이 많아져야 하고요.



 ▶정=흔히 많은 인구를 수용하려면 고층화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황=고층화하려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어요. 요즘 대단위 아파트의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건물 연면적의 비율. 연면적은 바닥 면접의 합계)을 보면, 160% 밀도를 맞추면서도 오랜 골목길을 망가뜨리지 않고 적절하게 개별 필지 단위로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큰 규모의 재개발이 불가피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런 대안을 생각해 봐야 해요.



 ▶정=예를 든다면요.



 ▶황=사람들이 홍대와 가로수길에 매력을 느끼는데, 두 곳의 공통점은 저층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선 곳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형태를 미리 계획해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걸어 다니면서 일상의 대소사가 해결될 수 있다면 삶의 질이 굉장히 높아질 거예요. 그래서 세계 많은 도시가 보행자 중심의 도시를 만들려고 하는 거고요.



 ▶정= ‘디자인 서울’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황=건설의 시대에서 건축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찰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성찰이라는 단어를 사회에 적용하는 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성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죠.



 ▶정=개발만으로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겠죠.



 ▶황=그렇죠. 앞으로는 좋든 싫든 조금 더 섬세하게,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대해야 해요. 국내에서는 턴키(turn-key: 건설회사가 설계부터 시공까지 한 번에 수주 받는 방식)라는 방식으로 대형건축물을 지었기 때문에, 10명의 건축가가 10개의 중소규모 건설회사와 할 일을 하나의 대형건축사가 하나의 대형건설사와 했죠. 좋은 도시가 뭐냐는 질문보다 ‘개발하고 짓고 사고 판다’는 시장의 논리만 있었죠. 그게 너무 아쉬웠어요.



 ▶정=그 동안 우리가 놓친 게 무엇일까요.



 ▶황=사람이 살아가는 바람직한 환경은 어떤 것일까 하는 화두일 거에요.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관찰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지금까지는 너무 관념적이었죠.



 ▶정= 한옥을 주제로 한 책을 쓰셨는데, 그런 차원에서 한옥을 바라본다면요.



 ▶황=지금의 한옥은 요즘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이 강하게 투사돼 있는 공간이에요. 한옥은 단층이기 때문에 밀도의 문제는 해결 해주지 못하는데, 다층 한옥이 필요합니다.



 ▶정=조금만 개조를 하면 진정한 한옥이 아니라고 보는 시선도 있죠.



 ▶황=맞아요. 한옥은 기술적으로는 많이 발전될 가능성이 잠재돼 있어 아주 재미있거든요. 그런데 개념적으로 한옥에 대해 닫힌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기본 입장은 상실감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죠. 좋은 것들이 사라지는 걸 많이 보아온 거에요. 그런 점에서 보면, 전통건축물을 보수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충분히 이해되죠.



 ▶정=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역으로 역사적 맥락이 풍부한 곳에서는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반면, 많은 걸 허물고 개발해온 한국 사회에는 상실감이 커졌다는 말씀이네요.



 ▶황=그렇죠. 그 상실감이 사회적 차원으로 폭발했던 계기가 숭례문 화제사건이에요. 이렇게 하루아침에 허물어질 수 있구나! 그 상실감이 얼마나 컸어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았죠. 숭례문이 없어졌을 때, 개인에게 내재되어있었던 상실감이 사회적으로 드러났죠.



 ▶정= 저도 집짓기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황=먼저, 집을 짓는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유명 건축가를 찾는 것보다 가족과 이야기를 많이 하시라고요.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부부에게 필요한 공간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죠. 집을 짓는데는 결과물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를 고민할 땐 반드시 ‘어떤 이야기’로 집을 짓고 싶은가를 물어 보세요. 또 큰 집을 짓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집이 가족 수에 비해 너무 크면 온기가 없어요. 마당도 클 필요가 없어요. 10평 넘어가는 마당은 상전이에요.



정재승

정리=이은주 기자, 김민영 프리랜서 작가





◆황두진=1963년 서울생. 서울대 건축과 학·석사. 미국 예일대 석사. 2000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창립. 주요작품으로 서울 통의동 전 열린책들 사옥(2001), 동교동 해냄출판사 사옥(2002), ‘무무헌’(2006) 등 북촌 한옥 작업, 재동 레스토랑 ‘가회헌’(2006), 낙원동 한의원 ‘춘원당’(2008), 이천시 휘닉스스프링스 골프클럽 게스트하우스(2009),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2010) 등. 서울시 ‘한강르네상스 계획’의 하나로 동작대교 남단에 한강 교량 보행자 시설을 설계했다.





황두진의 책·책·책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해냄)= 서울이라는 도시에 담긴 이야기, 미래 도시로의 가능성을 일상 건축물을 매개로 풀어간 건축 에세이. 황두진씨는 “서울은 나의 텍스트”라고 단언한다. ‘아직도 강북에 사십니까’ ‘집에 나를 맞추기’ 등 우리 사회의 건축문화와 그 속에 숨겨진 내면을 찾아 나섰다.



◆한옥이 돌아왔다(공간사)=서울 북촌에서 시도한 현대한옥 작업 경험을 담았다. 우리에게 한옥이 어떤 의미인지, 한옥 진화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등을 탐색했다. ‘보존이냐 개발이냐’ ‘한옥사랑의 사회적 배경’ ‘기와집은 비싸다’ 등 한옥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짚었다.













※정재승 교수와 건축가 황두진씨의 대담 동영상과 내용 전문은 중앙일보·예스24가 함께 하는‘희망의 인문학’ 캠페인 홈페이지(http://inmun.yes24.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QR코드로도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싶은 집 이야기를 7월 17일까지 홈페이지 기사 댓글로 남겨주시거나, 분야별 추천 도서에 대한 서평을 올려주세요. 선정된 독자에게 도서지원금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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